세상 그 어떤 음식도
#1. 한국인에게 인도네시아 음식이란
인도네시아에서 20년을 사셨던 지인께서 한 번도 인도네시아 음식을 사 먹어본 적이 없었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었어요. 처음엔 그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는데 저희도 한인들이 많은 지역에서 살다 보니 인도네시아 음식을 안 먹고도 충분히 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사실 인도네시아에 처음 오면서 저희도 인도네시아음식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처음 3년은 정말 인도네시아 음식을 1년에 2-3번 먹을까 말까 했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보다 한국음식을 더 많이 먹게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었습니다. 처음엔 위생을 못 믿어(티푸스에 걸릴까 봐) 극도로 조심했던 부분도 있었고 남편과 딸내미가 인도네시아 음식을 어려워하는 이유도 있었어요.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먹는 인니음식에는 다양한 향신료가 사용되어서 생각보다 입맛에 안 맞는 음식도 많아요. 워낙 종류가 많으니 그중에서 한국인 입맛에 딱 맞는 음식도 있지만, 향신료에 예민한 경우는 선뜻 먹기 꺼려지는 음식도 많습니다. 5년이 지난 지금은 사실 많이 적응해서 한국음식보다 인도네시아 음식을 더 잘 먹게 되었네요^^ (전 원래부터 잘 먹었던 건...ㅋㅋ 비밀 ㅋㅋ)
#2. 인도네시아인에게 외국 음식이란
그러다 교육의 도시인 이곳, 족자카르타에 이사 오게 되면서 현지 친구들과 자주 만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멀리까지 와서 공부하는 친구들에게 좋은 카페,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 초대했었는데.... 보통 카페는 빵이나 스파게티 등등 웨스턴식이나 퓨전 음식이 대부분이다 보니 생각보다 현지 친구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다른 섬에서 족자카르타로 유학 온 시골 친구들에게 웨스턴 음식이라든지 한국 음식, 일본 음식은 낯설기 그지없었죠. 저희 동네 친구에게 스파게티를 만들어준 적이 있었는데 들어는 봤지만 먹는 건 처음이라고 말하더라고요. 평생을 인도네시아 음식만 먹어본 친구들에게 다른 나라 음식은 정말 생소한 음식이었습니다. 가끔은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은 초밥을 왜 좋아하냐고 묻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계속 더운 인도네시아에선 '회'를 먹는 문화가 아니다 보니 상당히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인도네시아 친구들에게 외국 음식은 새로운 맛, 새로운 식재료를 사용하는 낯선 음식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몇 번 시행착오를 거쳐... 이번에는 친구들을 저희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요리를 잘하는 동네 지인에게 부탁해 인도네시아 음식을 만들어달라고 했죠^^ 아침부터 뚝딱뚝딱 만들더니 이렇게나 맛있는 음식들을 만들어 주었어요. 아얌케첩(달콤 간장닭요리), 짭짜이(야채볶음), 뜰루르 푸유 발라도(매콤 메추리알)에 템페와 두부, 바꽌(야채튀김) 등 튀김을 하고 라라판이라는 생야채에 이어 삼발(고추양념)까지.. 족자카르타에 유학 와서 공부하는 친구들에게 맛있는 한 끼를 대접하고 싶었는데 낯섦 때문에 불편함을 주지 않으려는 저희의 마음을 말했더니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요리를 해주었습니다.
#. 안 먹어본 음식은 어렵다
다행히도 오늘 식사는 저희도 현지 친구들도 편안하게 먹을 수 있었어요. 저희도 인도네시아 음식에 많이 적응했고, 현지 친구들도 인도네시아 음식으로 대접하니 편하게 먹을 수 있었네요. 어쩌면 그보다 대접하는 입장에서 안 먹어본 음식이 입맛에 안 맞는 건 아닌지 걱정하지 않아도 돼서 제 마음이 더 편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인이나 인도네시아인이나 누구나 다 안 먹어본 음식은 어렵습니다. 새로운 향, 새로운 식감, 새로운 식재료를 사용한 음식들을 마주할 때면 기대감보단 낯섦이 우리를 지배하는 경우가 있죠. 그것이 한국음식이든 인도네시아 음식이든 영국음식이든 그것을 처음 마주하는 사람들에게는 다 똑같은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평가하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음식들과 친해지며 그 문화에 젖어들어가야 하는 것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