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꽃이 피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 와서 가장 처음 놀랐던 건, 바나나 나무였다.(나무라고 해야하는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무라고 하자.) 우리 집 바로 옆에 공터가 있었는데, 그 공터에 바나나 나무가 떡하니 있었다. 감사하게도 이미 바나나가 달려있었는데 한국에서는 많이 사봐야 한 다발 바나나를 사는 게 전부였던 우리에게 그렇게 주렁주렁 달린 바나나는 엄청난 컬처쇼크였다. 그것도 그걸 바로 집 우리 집 마당에서 볼 수 있다니 말이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바나나가 열렸고, 바나나 다발을 한번 따면 족히 10집은 나눠 먹을 수 있었다.
아이들키만큼 자란 바나나 한 다발을 톱으로 베어와서 신기해하며 봤던 첫해를 지나고, 해가 지날수록 흥미는 떨어져 갔다. 그리고 집 옆에 야생으로 자란 바나나는 씨가 있는 경우도 있고, 당도도 높지 않아서 보통 튀겨먹거나 죽을 끓여 먹는 용도로 많이 사용하는데 한국에서 나고 자란 우리는 그저 관상용일 뿐이었다.
다른 나라에 가면 가장 재밌는 곳이 그 동네 사람들이 다니는 마트다. 한국에선 팔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그 지역 사람들은 뭘 먹고 사는지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마트에도 재밌는 것들이 많다. 망고나 용과가 산더미 만큼 쌓여있기도 하고 두리안 냄새가 진동하기도 한다. 육류 코너에 가면 저렴한 소고깃 거리나 닭머리와 닭발을 팔기도 한다. 가끔 소혀를 큼지막하게 팔고 있기도 한다.(소혀는 생각보다 맛있다 ㅋㅋ)
야채들도 너무 신기한 것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신기한 야채는 바로 바나나 꽃이다.
처음엔 죽순같이 생기기도 한 것이 무엇일까 신기했는데, 바나나 꽃이었다. 바나나 나무에서 바나나가 자라기 전에 바나나 꽃이 먼저 자란다. 바나나 꽃이 꽃잎을 하나 떨어뜨릴 때마다 그 안에 바나나가 한 다발씩 모습을 드러낸다. 그 꽃잎이 다 떨어지면 비로소 바나나 전체의 모습이 보이고, 몇 개월을 기다리면 포동포동한 바나나가 열린다.
바나나 꽃이 몽우리를 지면 그 꽃을 따다가 먹기도 한다. 이 바나나 꽃을 JANTUNG PISANG [잔뚱피상] - 바나나 심장이라고 부른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이 바나나 꽃을 볶아 먹기도 하고, 국 끓여 먹기도 한다. 한국사람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음식인데, 집 마당마다 바나나 나무가 있는 인도네시아에서는 정말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이기에 흔하디 흔한 음식이다.
생선 알을 먹으면 몇백 마리의 생선을 먹는 것 같다고 하는 것처럼, 바나나 꽃을 먹으면 그 안에 수백 송이의 바나나가 들어있다. 물론 단맛이 나는 것도 아니고 바나나 맛이 나는 반찬도 아니지만, 비유하자면 그렇다.
미지의 세계의 음식 같다고 해야 하나.. 인도네시아 6년 차, 아직도 생소한 바나나의 심장이지만 마트에서 마주할 때마다 내가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재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