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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귿 Sep 04. 2024

완생인 아이들과 미생인 나.

 길고 긴 방학의 문턱을 넘어섰다. 전업주부에게나 워킹맘에게나 방학이 고되긴 매한가지이다.

아빠가 퇴근하시기 전까지 1시간 남았던 어느 날 아이들의 끝이 없는 다툼으로 나는 저녁밥과 1시간 동안 엄마의 역할 파업을 했다. 에라 모르겠다. 침대에 누웠다. 안방문을 닫고 나를 찾지 말기를 공포했다.

거실에서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정말 배 고파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앞서나갔지만 1시간이다. 1시간. 하루종일 고됐던 철없는 엄마는 막무가내정신으로 방문을 닫았다. 

 아빠가 퇴근하기 15분 정도 남았을까? 방문을 두드리고 밥을 해서 먹었다고 엄마 것도 만들었다고 침대에 앉아있는 나에게 쑥스럽게 내민다.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하는 아빠를 위한 것도 유리그릇에 잘도 담아놨다. 

 우리 집은 냄비밥을 해 먹는다. 물을 조금 붓고 약불에 살짝 데워먹는 걸 알았던 첫째가 잘 기억해 뒀다가 쉽지 않았을 텐 데 따라 했나 보다. 데워진 밥과 참치캔과 달걀을 꺼내 야무지게 볶았다. 마지막에 참기름도 둘렀단다. 꽤 맛이 좋았다. 

 "너네 한 번 당해봐라." 하고 나름대로의 벌을 주며 막무가내로 파업을 선언했던 철없는 엄마를 비웃듯이 아이들은 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자식 맘대로 안 된 다더니...


아이들은 신이 났다. 특히 첫째는 개학하면 엄마가 아침에 밥 차려주려면 힘드니 본인이 한 번 차려보겠다고 큰 소리를 쳤다. 그러고 며칠이 지난 뒤 개학을 했다. 개학이 이틀 지나고 바로 오늘 아침이었다. 아침 평소에도 일찍 깨는 아이라 인기척이 있었지만 시간을 확인하고 둘째와 다시 잠이 들었다. 알람이 울릴 즈음 신나게 침대로 뛰어와서 " 엄마, 내가 파스타를 만들었어!!!!"라고 한다. 그때서야 개학하고 아침밥을 한 번 차려보겠다고 큰소리쳤던 것이 생각났다. "파스타라니... 대체 뭘로?" 아이는 한 껏 해낸 것에 대해 충만한데 나는 잠결에 들린 뚱딴지같은 소리에 불안감이 먼저 들었다. 냉장고에 있던 버섯소스로 했단다. 면도 삶고 채반에 물기도 빼서 소스와 면을 다시 팬에 볶았단다.

'내 자식이지만 참 대단하다'




머시룸오일 쫀득 파스타




소스를 많이 넣었다는데 가늠이 될 리가. 안위에 관한 것들에 대해 누구보다 조심스러운 성격의 아이라 혹여나 잘못될 까봐 굉장한 중불로 오래 오버쿡 된 오일 듬뿍 파스타는 고무줄같이 쫀득쫀득 참 맛있었다.

 아이가 이제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인지 흔히 말하는 말대답, 버릇없는 행동이 정도가 지나쳐서 대해 얼마 전 남편과 고심을 했었다. 더 나아가 자식이 성장할수록 커지는 부모의 무력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내가, 우리가 하루하루 뜻밖의 놀라움을 선물 받고 너희들에게 배우고 깨닫는다. 너희들보다 어른이고 나이가 경험이 많다 한들 여전히 다듬을 것 투성인 미성숙한 내가 너를 얼마나 평가하고 재단할 수 있을까 반성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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