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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나를 붙잡아 줄 철학이 필요해

by 김슬기

+ 이전 편에서 이어집니다.



‘어머 이건 꼭 사야 해!’


개월별로, 연령별로 넘쳐나는 육아/교육용품들. 수십 만 원은 기본이오 수백 만 원을 호가하는 수많은 제품들이 육아 예능 속에서, SNS 계정 속에서 넘실거립니다. 좋은 것만 해주고 싶은 엄마 마음, 남 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은 아빠 마음은 아주 쉽게 시장의 먹잇감이 되어 버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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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장난감과 교구, 교재와 도서는 반드시 갖춰주어야 하는 필수품일까요? 온 집안을 책으로 가득 채우면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랄까요? 창의력을 키워준다는 값비싼 교구들의 시작은 바깥 활동을 할 수 없는 지체장애아를 위한 재활교육이었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우리가 때마다 갖춰줘야 할 물건들을 정신 없이 사다 나르는 사이, 우리 아이들은 결핍과 필요를 경험하지 못 한 비틀어진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학용품을 선물 받으면 “전 됐어요. 집에 잔뜩 있어요. 들고 가기만 무거워요.” 말하는 아이들. ‘100억 모으기’와 ‘건물주 되기’, ‘호화 빌라에 사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아이들. 여름 휴가에 어느 나라를 갔다 왔느냐, 아빠 차종이 무어냐, 사는 집이 어디냐를 따지고 줄 세우는 아이들. 이 아이들은 돈의 가치를, 물건의 가치를, 소비의 가치를 진정 알고 있는 것일까요?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 물질중심주의, 소비만능주의, 경제력을 기준으로 한 차별과 무시. 이는 더 이상 어른들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1학년 아이들의 교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건 바로 우리 어른들이에요. 아이들은 부모의 작은 말 한 마디도 흘겨 듣지 않으니까요. 아이들은 아빠 엄마가 보고 있는 텔레비전 속 대사 한 마디, 광고 카피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복사해 저장합니다. 아이가 세상을 인식하고 판단 • 평가하는 틀은 부모의 가치관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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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용품을 준비하는 정성 이상으로 양육가치를 정립하셔야 해요.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이 되는 삶의 가치관을 세워야 합니다. 어떤 물건을 사용할 것인가는 그야말로 1차원적인 문제일 뿐이에요. 어떤 태도를 가지고 어떤 가치를 전달할 것인지를 먼저 고민해봐야 합니다.


‘내 아이에게 이거 하나만큼은 꼭 전해주겠다’ 다짐한 양육관이 있으신가요? 먼 훗날 내가 세상을 떠날 때, 우리 아이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해주길 바라시나요? 부모는 입이 아니라 행동으로 말하는 사람. 부모가 자식에게 전해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유산은 부모 자신의 삶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아이에게 어떤 삶을 보여줄 예정이신가요?


여자아이들의 필수품이라는 근사한 주방놀이 하나 없는 아이 방, 기본 중에 기본이라는 영어 전집 하나 없는 우리 집 책장이 초조해질 때마다 저는 <엄마의 의자>를 떠올립니다. 나는 아이에게 어떤 물건을 사주고 싶은가? 내가 전해주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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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쳐나고 넘쳐나서 없어져도 없어졌는지 알 수 없는 물건들 속에 파묻혀 사는 삶. 남들이 다 가진 걸 나도 갖기 위해 아등바등 돈만 벌기 바쁜 삶. 나에게 꼭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세상이 강요하는 욕망에 끌려 다니는 삶. 이런 삶을 살지는 않겠다, 이런 삶을 남겨주지는 않겠다 다짐합니다.


그래서 읽고, 읽어줘요. 내가 처한 현실의 부족함을 원망하는 대신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성실한 태도, 세상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 가족의 행복에 집중하는 자세, 돈을 모아 물건을 고르고 구입해 그것을 누리며 소유하는 즐거움을 오롯이 누리는 경험. <엄마의 의자>에는 제가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들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잊지 마세요. ‘어떤 물건을 구입하느냐’보다 중요한 건 ‘어떤 가치를 전달하느냐’ 입니다. 넘쳐나는 정보와 광고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반드시 지키고 싶은 중심을 잡아두세요. 가치관과 양육관이 탄탄할수록 정말 중요한 가치를 놓치지 않고 전해줄 수 있습니다.




그림책 활용 TIP


<엄마의 의자>는 글밥이 많고 가벼운 내용이 아니라 유아보다는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추천하는 책인데요, 어찌된 일인지 우리 집에서는 18개월부터 36개월까지 1년 6개월간 뜨겁게 사랑을 받았어요. 말도 못 하는 꼬맹이가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닌데 그 긴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집중을 하고 한 번은커녕 두 번 세 번씩 반복해서 읽어달라고 졸라대니 엄마는 목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참아가며 읽어주면서도 언제나 고개를 갸웃거렸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할까? 아니 이 책을 왜 이렇게 자꾸 읽어달라고 하지?’


수채화 느낌의 그림이 좋은 건지, 강렬한 색감이 좋은 건지, 문장의 울림이 좋은 건지, 이 책의 어떤 부분이 두 돌도 안 된 아기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저는 끝내 알 수 없었어요. 하지만 분명한 건 아이가 이 책을 좋아한다는 것. 읽고, 읽고, 또 읽고 싶어한다는 것!


이것 말고 또 알아야 할 게 무어냐는 생각이 들어요. 왜 좋아하는지 이유를 모르면 어때요? 내용을 이해하지 못 하고 들으면 어때요! 어떤 이유에서든 이 책을 읽는 게 즐겁고 재미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어줄 가치가 충분하잖아요?!


그림책에 흔히 붙는 권장연령에 얽매이지 마세요. 어차피 엄마가 읽어주는 책이니 글이 많아도, 어려워도 괜찮아요. 3-4세의 유아라고 해서 글이 많은 그림책을 열어보지 못 하게 막을 필요가 없고, 글을 읽을 줄 아는 초중고생이라는 이유로 애기들이나 보는 그림책을 왜 보냐 구박해서는 안 될 일! 그림책은 전 연령이 즐기는 예술 작품이잖아요~ 나이에 상관없이 아름다운 작품을 마음껏 자유롭게 만날 기회를 주세요.




나를 위한 태교의 시간


1. 우리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시나요?
아이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가치, 나의 양육관을 세워보세요.



2. 아이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길 바라시나요?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의 삶을 그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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