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13평 빌라를 운동장 삼아 온종일 육아
(밤) 1.3평 독방에서 밤샘 수유
달콤한 신혼의 보금자리가 두꺼운 철문의 감옥으로 돌변하는 데에 걸린 시간, 단 일주일.
사람이 될 수 없어 비참하고,
사람을 볼 수 없어 힘겨웠던 1년 12달.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인생의 암흑기를 고르라면 저는 주저 없이 얘기할 거예요. 출산 후부터 첫돌까지 만 12개월. 그때 그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힘겨웠던 시간이라고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를 24시간 내내 돌본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극한의 노동이에요. 이걸 함께 나눌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노동의 강도는 다시 한번 조정되는데, 그 누구와도 분업할 수 없는 독박 육아는 엄마의 존엄성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극단의 세계입니다.
장기간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씻지도, 심지어 혼자서 마음 편히 싸지도 못 하는 환경에 처했을 때 인간이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지는지 직접 경험해 보고 싶은 이에게 저는 독박 육아를 추천합니다. 더도 덜도 말도 딱 일주일이면 알게 될 거예요. 나는 인간이 아니라 짐승일 뿐이라는 것, 아니 금수만도 못 한 존재라는 사실을요.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외딴 지방의 작은 빌라에서 아침에 출근하면 새벽 1-2시가 되어야 퇴근을 하는 남편과 보낸 1년. 들어오면 씻고 자고, 일어나면 씻고 나가기 바쁜 그를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매달렸어요. “나랑 마주 보고 앉아서 딱 5분만 얘기 좀 해주라. 사람이랑 대화를 해 본 게 언젠지 모르겠어. 전화 말고, 문자 말고, 면대면으로 바라보면서, 내 두 귀로 직접 사람 목소리를 듣고 싶어.”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그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요. 부럽고 부러워 샘이 나고, 질투가 나고. 나중엔 억울하고 원통해서 견딜 수 없는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왜 나만 이렇게 갇혀 있어야 해? 나도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고! 같이 일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고!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혼자서 편하게 화장실도 가고 싶어!! 나도 저놈처럼 자유롭고 싶다고!!!!’
현관문을 바라보면서, 창문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해야 저 문을 열고 훨훨 날아갈 수 있을까 궁리하던 반년을 지나 아이가 목을 가눌 수 있게 되자마자 아기띠를 하고 집을 나섰어요. 공장과 창고만 가득한 지방 변두리. 유모차를 끌고 다닐 인도 하나 갖춰지지 못 한 곳이었지만 아이를 안고 나가 나가 콧바람을 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였습니다.
비가 오지 않는 한 매일 두세 번씩 나가 산책을 했는데, 아이를 안고 20분씩 걸어 다녀도 사람 구경 한 번 하지 못 하는 날이 많았어요. 어쩌다 누군가를 마주쳐도 모두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뿐.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그림자도 보기가 어려웠는데, 버스를 타고 50분을 달려 소아과에 방문한 날에는 가뭄의 단비 같은 만남이 이루어지곤 했어요.
사실 소아과 대기실에도 엄마들보다는 엄마를 대신해 아이를 돌봐주시는 할머니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어쩌다 비슷한 개월 수의 아기를 안고 온 엄마와 눈이 마주친 날에는 진료가 끝나도, 약을 받아도, 타야 할 버스가 도착해도 서로 눈을 떼지 못하고 아쉬워하곤 했어요.
푸석푸석 지치고 고단한 얼굴에 드리워진 깊은 외로움. 두 눈동자 속에 자리한 처절한 고독이 어찌나 애절한지… 말없이 눈빛만 봐도 네 맘이 내 맘이고, 내 맘이 네 맘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을 안고 9개월부터 문화센터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가는 데 한 시간, 오는 데 한 시간. 왕복 두 시간의 무리한 여정이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빠지지 않고 악착 같이 버스에 올랐습니다. 강좌의 목적은 아이의 감성과 신체발달 촉진이었지만, 엄마의 목적은 오로지 단 하나. 어떻게든 이 숨 막히는 고립에서 벗어나 사람들 속에 들어가고 싶다는 열망뿐이었습니다.
+ 엄마가 엄마에게 선물하는 그림책,
독박 육아의 늪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