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독박 육아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법

by 김슬기




(낮) 13평 빌라를 운동장 삼아 온종일 육아

(밤) 1.3평 독방에서 밤샘 수유


달콤한 신혼의 보금자리가 두꺼운 철문의 감옥으로 돌변하는 데에 걸린 시간, 단 일주일.







사람이 될 수 없어 비참하고,
사람을 볼 수 없어 힘겨웠던 1년 12달.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인생의 암흑기를 고르라면 저는 주저 없이 얘기할 거예요. 출산 후부터 첫돌까지 만 12개월. 그때 그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힘겨웠던 시간이라고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를 24시간 내내 돌본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극한의 노동이에요. 이걸 함께 나눌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노동의 강도는 다시 한번 조정되는데, 그 누구와도 분업할 수 없는 독박 육아는 엄마의 존엄성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극단의 세계입니다.


장기간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씻지도, 심지어 혼자서 마음 편히 싸지도 못 하는 환경에 처했을 때 인간이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지는지 직접 경험해 보고 싶은 이에게 저는 독박 육아를 추천합니다. 더도 덜도 말도 딱 일주일이면 알게 될 거예요. 나는 인간이 아니라 짐승일 뿐이라는 것, 아니 금수만도 못 한 존재라는 사실을요.




alex-boyd-262019.jpg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외딴 지방의 작은 빌라에서 아침에 출근하면 새벽 1-2시가 되어야 퇴근을 하는 남편과 보낸 1년. 들어오면 씻고 자고, 일어나면 씻고 나가기 바쁜 그를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매달렸어요. “나랑 마주 보고 앉아서 딱 5분만 얘기 좀 해주라. 사람이랑 대화를 해 본 게 언젠지 모르겠어. 전화 말고, 문자 말고, 면대면으로 바라보면서, 내 두 귀로 직접 사람 목소리를 듣고 싶어.”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그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요. 부럽고 부러워 샘이 나고, 질투가 나고. 나중엔 억울하고 원통해서 견딜 수 없는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왜 나만 이렇게 갇혀 있어야 해? 나도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고! 같이 일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고!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혼자서 편하게 화장실도 가고 싶어!! 나도 저놈처럼 자유롭고 싶다고!!!!’





aricka-lewis-208108.jpg


현관문을 바라보면서, 창문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해야 저 문을 열고 훨훨 날아갈 수 있을까 궁리하던 반년을 지나 아이가 목을 가눌 수 있게 되자마자 아기띠를 하고 집을 나섰어요. 공장과 창고만 가득한 지방 변두리. 유모차를 끌고 다닐 인도 하나 갖춰지지 못 한 곳이었지만 아이를 안고 나가 나가 콧바람을 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였습니다.


비가 오지 않는 한 매일 두세 번씩 나가 산책을 했는데, 아이를 안고 20분씩 걸어 다녀도 사람 구경 한 번 하지 못 하는 날이 많았어요. 어쩌다 누군가를 마주쳐도 모두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뿐.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그림자도 보기가 어려웠는데, 버스를 타고 50분을 달려 소아과에 방문한 날에는 가뭄의 단비 같은 만남이 이루어지곤 했어요.





nathan-dumlao-287713.jpg


사실 소아과 대기실에도 엄마들보다는 엄마를 대신해 아이를 돌봐주시는 할머니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어쩌다 비슷한 개월 수의 아기를 안고 온 엄마와 눈이 마주친 날에는 진료가 끝나도, 약을 받아도, 타야 할 버스가 도착해도 서로 눈을 떼지 못하고 아쉬워하곤 했어요.


푸석푸석 지치고 고단한 얼굴에 드리워진 깊은 외로움. 두 눈동자 속에 자리한 처절한 고독이 어찌나 애절한지… 말없이 눈빛만 봐도 네 맘이 내 맘이고, 내 맘이 네 맘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을 안고 9개월부터 문화센터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가는 데 한 시간, 오는 데 한 시간. 왕복 두 시간의 무리한 여정이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빠지지 않고 악착 같이 버스에 올랐습니다. 강좌의 목적은 아이의 감성과 신체발달 촉진이었지만, 엄마의 목적은 오로지 단 하나. 어떻게든 이 숨 막히는 고립에서 벗어나 사람들 속에 들어가고 싶다는 열망뿐이었습니다.



+ 엄마가 엄마에게 선물하는 그림책,

독박 육아의 늪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흔들리는 나를 붙잡아 줄 철학이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