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 편에서 이어집니다.
엄마가 엄마에게 선물하는 그림책 여섯
<뒷집 준범이>의 준범이네 가족은 시장 골목 낮은 집, 작은 방으로 이사를 왔어요. 이 방의 바로 앞에는 중국집과 슈퍼, 미용실이 나란히 있는데, 세 가게의 다섯 아이들은 매일 붙어 다니며 뭐든지 같이 하고 함께 놀아요.
“야, 너도 이리 와. 같이 놀자.”
앞집 아이들은 새로 이사 온 준범이를 부르지만 준범이는 나갈 수 없어요. 늦은 밤이 되어야 돌아올 할머니께서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서 놀라고 당부하셨거든요. 준범이는 마당에서 시끄럽게 놀아대는 앞집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캄캄한 방에서 씩씩하게 혼자 놉니다.
너희들 거기서 뭐 하니? 밥 먹고 놀아.” “엄마, 우리 자장면!” “나도, 나도!”
준범이는 다 같이 마당에 둘러앉아 자장면을 먹을 앞집 아이들을 창문으로 빼꼼 내다봅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마당에는 아이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아요. 갑자기 모두들 어디로 가버린 걸까요?
“형아, 땡이 좀!” “너, 준범이 맞지?” “언제 이사 왔어?” “엄마, 여기.”
앞집 아이들은 준범이에게 묻지도 않고 문을 벌컥 열고 우르르 들어와 탁자를 창문 앞으로 옮겨놓아요. 그리고 자장면 그릇으로 꽉 찬 쟁반을 받아 준범이네 집을 점령합니다.
방바닥 여기저기에는 자장 면발이 굴러다니고, 입가가 시커메진 아이들이 바글거리는 준범이네. 자장면을 손으로 먹느라, 강아지에게 면발을 먹여주느라, 블록을 쌓느라, 슈퍼맨 놀이를 하느라 바쁜 아이들로 정신없는 준범이네 집이 저는 언제나 사무치게 뭉클합니다.
원래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 양 신나게 어울려 먹고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잊고 있던 기억을 불러왔어요. 갈수록 심해지는 산후 우울증과 젓가락도 들지 못할 만큼 악화된 손목을 치료하기 위해 친정행을 결정했던 늦가을. 끝도 없는 아기 짐을 꾸리고 내리느라 열어놓은 현관문으로 오열하며 소리치는 아기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몇 주 전에 이사 온 윗집 엄마인가 보다. 밤마다 애가 엄청 울던데, 힘든가 보네. 당신이랑 알고 지내면 서로 의지도 되고 좋을 텐데… 우린 이제 떠날 준비를 하니 어쩌나…” 남편은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를 한 번 본 적이 있다고 했어요. 백일이 겨우 된 것 같았다고, 밤마다 우는 걸 보니 우리 애처럼 예민한 아기인 것 같다고 했지요.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 엄마의 울음소리가 가슴을 후벼 팠어요. 당장 계단을 올라가 현관문을 두드리고 얘기해주고 싶었어요. 나도 안다, 나도 그렇다, 나는 이해한다, 나는 안다. 그리고 손잡아 주고 싶었습니다. 나도 있다고, 여기 있다고, 당신은 이제 혼자가 아니라고요.
하지만 저는 계단을 오르지 못했습니다. 나는 이제 친정으로 떠날 거고, 새로운 집을 구해 이사를 할 거고, 이 집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요. 그럴 수가 없었다고 나를 위안했어요. 그럴듯한 핑계가 있어서 다행이었지요. 그게 아니었다 해도 저는 <뒷집 준범이>의 앞집 아이들처럼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했을 게 분명하니까요. 나는 한 가지 행동을 하기 전에 수백 가지 경우의 수를 계산하고 발을 빼는 못난 어른이거든요.
오해를 만들까 봐, 상처를 받을까 봐, 지레 먼저 겁을 먹고 물러서서 벽을 쌓는 우리들. 갈수록 공고해지는 벽에 갇혀 고립되는 우리들. 옆집에 누가 사는지, 윗집에 아랫집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 우리들… 지금 이 시간에도 깜깜해져야 들어올 단 한 사람을 기다리며 캄캄한 방에서 나 홀로 영원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엄마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우리에겐 이웃이 필요해요. 문을 두드려주고, 얼굴을 마주해주고, 안부를 물어주는 누군가. 서로의 고단함을 공감하며 위로하고, 으쌰 으쌰 격려하며 응원하는 연대의 힘이 필요합니다. 책상 밑에 들어가 훌쩍훌쩍 울고 있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줄 이웃을 갖고 계신가요? 마을에, 지역에, 사회 곳곳에 엄마들의 모임과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상처가 두려워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던 제가 임산부 모임과 엄마 모임을 만들고 주최하는 이유는 나와 우리,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서예요. 내가 먼저 용기 내어 손을 내밀어야 나에게 손을 내밀어줄 이웃을 만날 수 있고, 그런 이웃이 있어야 내가 일어설 수 있고, 우리가 서로 손을 맞잡고 더불어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아이들 역시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내가 준범이가 되었을 때, 내 아이가 준범이가 되었을 때, 우리 집 문을 열고 들어와 함께 해줄 앞집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요. 그래서 노력합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보는 연습, 지레 물러서기만 하던 발걸음을 한 발짝 내디뎌 보는 연습, 눈을 질끈 감고 용기 내어 도전해보는 연습을 야금야금 조금씩 실천합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외딴곳에서 외롭게 육아를 하는 엄마들이 사라지는 그 날, 독박 육아의 고단함이 전설로 전해지는 그 날을 꿈꿉니다. 함께, 같이, 연대의 힘을 장착해봐요. 함께라서 행복한 우리가 같이 있어 즐거운 아이들을 만듭니다.
그림책 활용 TIP
<뒷집 준범이>는 색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연필 스케치만으로 표현한 그림책이라 아이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기도 할 거예요. 아주 어린 아기들도 자기만의 취향이 있기 때문에 특별히 좋아하는 색감과 그림체, 스타일이 분명하게 존재한답니다.
엄마는 언제나 아이가 열광하며 좋아하는 책(흔히 ‘대박책’이라고 표현하지요^^)을 골라주려고 노력하지만 열에 아홉은 실패합니다. 아이의 반응은 언제나 예상을 빗나가고, 엄마는 너무 감동해서 읽어주었는데 아이는 전혀 관심이 없거나 시큰둥한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지요.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어요. 엄마가 아이에게 전해주어야 할 것은 아이가 열광하며 좋아할 책이 아니라 마음으로 감동하며 책을 읽는 경험이거든요.
재미있는 책을 골라 읽어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동화구연 전문가처럼 다양한 목소리로 생생하게 읽어주지 않아도 좋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책을 읽는 엄마의 마음이에요. 마음으로 읽고 마음으로 감동하는 경험을 먼저 해보세요. 책을 읽고 가슴이 떨려본 경험, 눈물이 왈칵 차오른 경험, 아픈 마음을 위로받고 힘을 얻어 본 경험. 이런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과 감동은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집니다. 아이들은 엄마 자신보다 엄마의 마음을 더 선명하고 강렬하게 느끼니까요.
좋은 책을 읽고, 마음껏 감동하세요. 그림책의 힘과 가치를 직접 체험한 엄마가 읽어주는 모든 책은 보물입니다.
나를 위한 태교의 시간
1. 나는 지금 어디에?
어떤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게 될지 내 주변을 둘러보세요. 아기를 데리고 자유롭게 산책을 할 수 있는 공원이 있는지, 외롭고 우울할 때 찾아가 이야기 나눌 이웃이 있는지,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기관이 있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어요. 아이는 결코 엄마 혼자 키울 수 없어요. 엄마를 도와줄 누군가, 엄마를 감싸줄 누군가를 찾아 반드시 함께 해야 합니다. 아직은 많이 미흡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다양한 육아지원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어요. 지자체의 출산장려•육아지원 사업을 알아보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들을 미리미리 준비해두세요.
2. 나는 지금 누구와?
엄마의 인간관계는 출산을 기점으로 급격한 변화를 맞이해요. 외출의 제약이 극심해지는 데다가 24시간 내내 아기를 향한 안테나를 세우고 있다 보니 모든 관계가 아기를 중심으로 재편됩니다. 아무리 가깝고 친한 친구였다 한들 출산과 육아의 경험이 없는 친구와는 자연스레 멀어지고, 아이의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교의 엄마들과 가까워지는 인맥 제2장.
전혀 다른 세계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들과 어떤 시간을 함께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계획이 필요합니다. ‘어떤 학습지가 좋은지, 어느 학원이 괜찮은지. 누구네 아빠 연봉이 얼마라더라, 누구네 집은 몇 평이라던데, 누구네 시댁은 그렇다더라’로 가득한 모임에 함께 할 수도, 그림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며 ‘진정 가치 있는 교육이 무엇인지, 우리 아이와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모임을 함께 할 수도 있어요.
엄마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걸어갈 나를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시간을’ ‘어떻게’ 보내게 하시겠어요?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만든다는 사실을 꼭 간직한 채 엄마라는 나를 키워갈 환경을 계획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