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사 모두는 당연하지 않은 누군가의 노력으로 돌아간다.
매일매일 수도 없이 반복하는 먹고, 자고, 싸고의 당연함 속에 감춰진 정성을 나는 알았던가.
30년이 지나서야 마주한 그녀의 처절한 수고를 그녀 아닌 그녀에게 반복하는 나.
우리는 언제쯤 당연함을 당연하게 만들어주는 손길을 바라보며 어루만질 수 있을까.
출산과 육아의 처절함과 고단함.
듣고 또 들어도 가늠할 수 없는 세계.
경험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세계.
“네가 좀 예민했냐? 밤마다 잠을 안 자고 어찌나 울어대는지, 매일 업고 나가서 새벽까지 축동을 걸어 다녔어.“, “아이고, 어릴 때는 입이 얼마나 까다로웠다고. 한 입이라도 더 먹이려고 과일이고 뭐고 죄다 한 입 크기로 자르고 빚어서 대령을 했는데. 내가 버릇을 잘못 들였지.”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들었던 이야기인데, 매번 “그랬어? 엄마 진짜 힘들었겠다.” 대꾸를 하면서도 알지 못했어요. 그저 어렴풋하게 그려보는 고단 함이었을 뿐, 그게 어떤 어려움이고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 했습니다.
으레 듣는 레퍼토리로, 엄마들의 흔한 넋두리쯤으로 취급했던 그 말의 무게를 비로소 알게 되었을 때, 저는 하늘을 원망했어요. 내가 받은 노고에 대한 감사보다 내가 해야 할 수고가 서러워 한탄했던 숱한 밤들... ‘내가 엄마를 힘들게 한 벌을 이렇게 받는구나. 내 죗값을 이렇게 치르는 거야.’ 잠 못 자는 아기를 안고 달래느라 지새워야 하는 매일 밤은 내가 저지른 업보를 치르는 속죄의 밤이 되었습니다.
아이는 백일이 될 때까지 평평한 바닥에 누워서는 5분도 자지 못 했어요. 바운서를 흔들어주어야만, 유모차를 밀어주어야만 잠을 자는 아이를 재우는 게 24시간 내내 반복되는 일상. 7개월이 지나면서 뒤집기를 시작하니 제 몸을 뒤척일 수 있는 바닥을 찾기 시작했지만, 30분 이상 통잠을 자지 못 하고 깨서 칭얼대는 아이를 다시 재워 눕히느라 딱 2시간만 등을 대고 누워 잠을 자보는 게 소원인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어디 재우기뿐 인가요? 6개월부터 시작된 이유식은 수면 부족으로 지친 엄마를 더욱 고단하게 만들었지요. 두 숟갈을 먹이기 위해 매일 1시간씩 싱크대에 서서 다지고, 갈고, 끓이고, 휘젓고. 엄마의 정성을 알아주듯 넙죽넙죽 먹어주는 아이가 마냥 예뻤지만 아이의 몸은 대부분의 음식을 거부하며 극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아토피와 알레르기의 불편한 동거 속에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시뻘건 발진. 화상을 입은 듯 온몸을 뒤덮는 발진이 찾아오는 날에는 소리 없는 눈물만 쏟아야 했습니다.
먹일 수 있는 야채의 종류는 다섯 손가락을 넘지 못하고, 먹일 수 없는 식재료의 목록만 갈수록 늘어가던 반년의 시간. 하루에도 수십 번식 아이의 몸을 샅샅이 훑어보고 기록하며 이유식을 만들고 버리고 또 만들고 버리면서 내뱉은 한숨은 아직도 가슴속에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엄마가 엄마에게 선물하는 그림책 일곱
파릇파릇 녹음이 우거진 어느 여름날. 매끈한 잎사귀 사이사이, 노오란 대추 꽃이 피어났어요. 꿀벌 여섯 마리는 새끼손톱보다 작은 꽃의 향기도 놓치지 않고 찾아와 꿀을 빨고, 꿀벌이 다녀간 자리에는 아기 대추가 방울방울 맺히기 시작합니다.
대추나무 옆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고, 잔디 같던 벼가 자라 바람결에 흔들리는 사이, 초록빛 방울의 아기 대추는 단단하고 씩씩하게 제 몸을 키워갑니다. 밤이 오고, 아침이 오고, 먹구름이 지나가고 태풍이 지나가고. 몇 번의 천둥과 몇 개의 벼락이 지나간 자리에 우수수 떨어진 대추알에는 어느새 붉은색 얼룩이 한창입니다.
물웅덩이 위에 널브러진 흙투성이 대추 알을 뒤로한 채 바닥에 풀썩 누운 벼들을 일으켜 묶는 농부들의 손길은 분주하고, 새빨간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거미줄에 걸려드는 가을이 찾아옵니다. 지평선 아래로 숨어드는 노을의 붉은빛이 대추를 물들이고, 어두운 밤하늘의 은은한 초승 달빛이 대추에 녹아드는 날들이 지나가고… 울창하게 자란 대추나무 아래에는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대추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펴고 앉은 아이들. 기다란 장대로 나뭇가지를 툭툭 건드려 대추비를 만드는 어머니. 탐스러운 대추는 커다란 함지박 위로 수북이 쌓여가고, 거칠고 투박한 아버지의 손 위에서 반짝이는 대추 한 알은 눈물겹도록 선명한 빨강입니다.
대추 한 알을 보면서 궁금해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게 어떻게 붉어졌을까? 이걸 누가 둥글렸을까? 이 달콤한 맛이 어디서 왔을까?
이 작은 알 안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