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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슬기 May 22. 2017

산후 우울증, 차라리 죽고 싶었던 그 때

깨달음 한 잔 (1) 엄마 자격도 없는 뚱뚱한 몸뚱이가 꼴보기 싫을 때

                                                                                       

                     


엄마를 위한 마법카페, 깨달음 한 잔.
엄마 자격도 없는 뚱뚱한 내 몸뚱이가 꼴보기 싫을 때

(1)



                                                                                                                            



“인생은 살이 쪘을 때와 빠졌을 때로 나뉜다.” 


제가 다니는 헬스장 화장실에 이런 글귀가 붙어 있어요. 길거리에서도, 웹 상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명언인데요, 저는 이 글귀를 볼 때마다 콧방귀를 뀌며 생각합니다. 



"웃기시네. 인생은 출산 전과 후로 나뉜다."


아직 그리 긴 인생을 살아보지는 못 했지만, 그걸 굳이 둘로 나눠보라면 저는 주저 없이 선택할 거예요. 여자의 인생은 엄마가 아니었을 때와 엄마가 되었을 때로 나뉜다고요.  




출산 전과 후의 가장 큰 변화


출산 전과 후의 차이점은 너무도 많지만 그 중 가장 큰 변화는 ‘나에 대한 평가’에요. 출산을 기점으로 ‘나’라는 인간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가 완전히 뒤집혔거든요. 아이를 낳기 전까지, 엄마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기 전까진 나에게 꽤 만족했어요.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아니 좀 많이 괜찮지? 멋진 편이란 말이야.’ 으쓱거리는… 자아도취형 인간이었지요. 그게 진실이었든 착각이었든, 높은 자존감은 당당하고 행복한 삶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고고함이 무너지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요. 병원에서 일주일, 조리원에서 2주일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밤새 수유를 하던 어느 날 새벽, 저는 삼킬 수 없는 눈물로 꺽꺽거리며 소리쳤습니다. “나는 젖소야, 젖소.. 나는 젖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존재라고!!!!”
   



영아 산통과 극한의 잠투정, 잠 못 자는 고문의 나날들


물론 내 존재의 이유가 ‘모유 공급’ 단 하나로 느껴지던 시기는 금방 지나갔어요. 하지만 그보다 더 혹독한 시기가 찾아왔으니 생후 50일경부터 시작된 영아 산통이었지요. 시계가 자정에 가까워지면 시작되는 끝없는 울음. 자지러질 듯 울어대는 아이의 울음은 새벽 서너시가 되어야 잠잠해졌고, 아이는 낮이고 밤이고 바닥에 누워서는 단 1분도 자지 못 하는 초특급 예민 베이비였습니다. 


만 24개월이 될 때까지 1시간 이상 통잠을 자지 않고 밤새 깨서 울어대는 아이를 재우느라 저는 늘 밤을 새우다시피 보내야 했어요. 유일하게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신랑은 매일 새벽 1시가 되어서야 퇴근을 했고, 저는 하루 24시간 먹고 자는 기본적인 생활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한없이 추락했습니다. 


잠을 잘 수 없는 고통이란, 직접 당해보기 전까지는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이더라고요. 인간이 지속적인 수면 부족 상태에 놓이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를 지독하게 경험하면서, 신혼의 달콤한 향기를 내뿜던 우리의 보금자리는 13평의 훌륭한 감옥이 되었습니다. 우리집 창문이 창살처럼 느껴졌고, 굳게 닫힌 대문은 교도소의 철문처럼 보였어요. 


저는 매일 현관문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저 문을 열고 도망칠 수 있다면. 나 혼자 훨훨 사라질 수 있다면..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팔겠어.’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오열, 절망.


그때의 나는 인간이 아니었어요. 끝없이 울어대는 아이를 안고 “도대체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소리치며 아이보다 더 크게 울어댔고, 온몸을 비틀며 괴로움을 호소하는 아이를 이불 위에 거칠게 내던지고 돌아선 날에는 베란다에 주저앉아 오열했습니다.

‘나는 인간도 아니야. 아이를 소파에 던져 죽인 여자와 내가 다를 게 뭐야? 뉴스를 보며 혀를 찼던 내가 가증스러워. 나는 운이 좋았을 뿐이야. 하필 그 순간 그 곳이 소파의 딱딱한 모서리였으면 나도 살인자가 되지 말란 법이 없는 거잖아! 나는 아이를 낳지 말았어야 해. 나는 엄마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엄마가 되면 안 되는 사람이야. 아니 사람도 아니지. 제 자식 하나 감당하지 못 하는 짐승만도 못 한 존재라고!’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고, 그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 놓이면 다를 수 없다고, 당신이 특별히 부족하고 못 난 게 아니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남편의 말은 의미없이 흩어지는 순간의 소리일 뿐, 나를 가득 채운 건 오로지 단 하나, 극심한 자기 비하였습니다. 




차라리 죽고 싶었던 그 때


짐승만도 못 한 나 자신을 마주해야 하는 하루하루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어요. 해가 뜨면 하루가 또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숨이 막혔고, 해가 지면 고문의 밤이 찾아왔음에 절망했습니다. 먼지가 되어 사라질 수만 있다면… 지금 이 순간, 여기 이곳에서 사라질 수만 있다면… 살고 싶지 않다고,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매일매일을 눈물과 절망 속에서 보냈던 시간들... 


저는 지독한 산후 우울증, 극심한 육아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이제야 알게 된 당시의 감정


하루아침에 내 인생을 뒤집어버린 사건 앞에서 저는 정신을 차리지 못 하고 허우적거렸어요. 매순간 ‘이런 사람일거야.’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과 너무도 다른 실제의 나를 대면해야 하는 육아는 그야말로 멘붕의 연속이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서야 우리가 흔히 쓰는 ‘멘붕’이라는 표현이 ‘당황’이라는 감정의 다른 이름이며, ‘당황’이라는 감정은 단순히 놀랍거나 다급한 상황에서만 발현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어요. 나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느낌, 나 자신을 믿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에 극심한 두려움을 느끼는 감정이 바로 ‘당황’이더라고요. 

일생일대의 사건 앞에서 나를 사로잡은 감정은 ‘당황’이었어요. 갑자기 들이닥친 두려움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 채 얼어있을 뿐. 내 안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그 중심에 무엇이 자리하는지를 전혀 알지 못 했습니다.






내 감정의 실체를 보여준 한 권의 책


나를 관통하고 있는 감정의 실체를 알려준 건 한 권의 책이었어요.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를 읽고 난 뒤에야, 나를 뒤흔들며 파괴하고 있는 감정이 ‘수치심’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수치심? 수치심이라고? 내가 지금 수치심에 휩싸여 있다고??’ 

책을 읽기 전까지, 저는 수치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수치심이라 하면 남들 앞에서 이야기를 꺼내기도 창피하고 부끄러운 마음, 큰 죄를 지어 얼굴을 내미는 것도 떳떳하지 못한 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지요.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감정이라 여기며 이름조차 생소하게만 느꼈어요. 내가 수치심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인지하지 못 하고 있었을 뿐, 내 안에는 수치심이라는 비밀스러운 감정이 자리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 감정은 나를 끊임없이 불행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수치심이란


‘나는 문제가 있어.’, ‘나는 너무 멍청해.’, ‘나는 세상에서 제일 형편없는 엄마야.’,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인간이야.’ 내 안에서 끊임없이 나를 평가하며 비난하는 내면의 목소리, 세상에서 가장 지독하고 잔인한 평론가를 불러오는 감정이 바로 수치심이에요.


수치심이란 ‘나에게 결점이 있어서 사랑이나 소속감을 누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때 느끼는 극심한 고통’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죄책감과 비교를 해보면 수치심의 실체를 더욱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요. 

죄책감과 수치심은 둘 다 자기평가의 감정이다. 그렇지만 공통점은 그뿐이다. 죄책감은 '나는 나쁜 행동을 했다'이고, 수치심은 '나는 나쁘다'이다. 죄책감이 '행동'에 국한된 것이라면, 수치심은 '존재'로까지 확대된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나의 옳지 못한 행동을 자책할 때가 많은데, 전 늘 죄책감보다 수치심을 느꼈어요. '아. 또 실수를 했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가 아니라 '아. 정말 나는 엄마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나 같은 사람이 아이를 키워도 되는 걸까? 난 정말 쓸모가 없는 사람이야.' 라고 생각하기 일쑤였거든요. 


내 ‘행동’에 대한 반성보다 나의 '존재'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내리게 하는 감정이 수치심이었다니! 오랫동안 나를 꽁꽁 싸매고 있던 감정이 수치심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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