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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떼쓰며 고집부리는 아이와 수없이 부딪칠 때

by 김슬기




산 넘어 산,
한 고비 넘어 또 한 고비
끝날 듯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어려움의 연속,
육아의 대장정.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한 18개월.
육아 인생 제2막의 황홀함도 잠시!
재우기 미션보다 어려운 과제가 찾아왔다.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하루 두 번 낮잠을 재우고 잠자리에 드는 일상이 정착되었을 무렵 어린이집을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낮잠은 오직 움직이는 유모차에서만 자는 통에 하루 종일 내 시간을 갖지 못 하는 엄마를 위해 아빠가 내린 특단의 조치였지요. 엄마의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아이는 금방 적응을 해주었고,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자기 시작하면서 하루에 두 번씩 주어지던 재우기 미션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30분씩 아이를 안고 재워 유모차에 태운 뒤 2시간씩 걸어 다니던 두 번의 일과가 사라지고 남은 자리.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50분처럼 지나가는 5시간은 혼자서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집안일과 육아지원센터의 심리상담 프로그램, 도서관의 인문학 강의와 독서모임으로 채워졌습니다.


나만의 시간과 사람들과의 유대를 되찾은 일상은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주었어요. 우울증은 하루가 다르게 호전되었고, 밤잠 재우기도 갈수록 수월해졌습니다. '이제 좀 살 것 같다'며 한숨을 돌리기 시작한 게 두 돌 즈음.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육아의 어려움을 제대로 일깨워주는 또 다른 고비가 찾아왔습니다.








야금야금 고개를 들어 정체를 드러낸 녀석은 너무도 확실한 자기주장이었어요. 18개월부터 슬금슬금 얼굴을 보여주더니 24개월부터는 도대체 어찌할 수 없는 황소고집이 되었지요. 아침 식단부터 시작해서 그 날 입을 옷, 신고 갈 신발, 등원 전에 반드시 해야 하는 산책 코스와 목욕 시간까지. 하루 일과의 사소한 것 하나하나를 제가 원하는 것으로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해야 한다 고집하니 시시콜콜한 대립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남다른 예민함으로 높은 수준의 불안과 그로 인한 강박증을 갖고 있는 엄마를 똑 닮은 꼬맹이는 언제나 모든 게 제자리에 놓여 있기를 원했어요. 정신없이 정리를 하느라 제 자리를 찾지 못 한 장난감이 하나라도 있을 때면 울고불고 온갖 짜증에 신경질 작렬! 블록 놀이를 할 때도, 소꿉놀이를 할 때도, 제가 원하는 수준으로 조작할 수 없는 자신의 미숙함에 분통을 터트리며 화를 내는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고 도닥여 주는 일은 나의 인내심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확인시켜주는 좌절일 뿐이었습니다.


양말의 제봉선이 살짝만 돌아가도 불편해서 화가 나고, 실내 온도가 조금만 높아도, 건조해도 짜증이 나는 아이의 기분을 맞춰준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어요. 폭발하는 울음의 반절은 이유를 종잡을 수 없는 날벼락이었고, 끝없이 울려 퍼지는 아이의 울음소리는 엄마의 이성을 앗아갔습니다.







“제발 울지 말고 차근차근 말을 해! 그렇게 악만 쓴다고 내가 아니??!! 뭐가 불편하고 마음에 안 드는지 정확하게 말을 하란 말이야!!” 말을 할 줄도 모르는 아이에게 눈물 대신 말을 하라고 소리를 질러댔어요. 아이보다 더 크게 소리를 치고, 아이보다 더 크게 화를 내고, 아이보다 더 격하게 발을 굴러댔던 시간들…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는 “너 말할 줄 몰라?! 할 줄 알잖아!! 네가 갓난애기야? 뭐 때문에 기분이 나쁜지, 뭐가 잘 안 돼서 화가 났는지 말을 해야지!!! 엄마는 그렇게 무조건 울고불고 떼만 쓰는 어린이는 싫어! 정말 듣기 싫다고!!” 비난하며 윽박을 질렀습니다.




엄마가 엄마에게 선물하는 그림책 여덟




어느 화창한 날, 뒤프레 부부는 국내 최고의 아이 할인점을 찾아갑니다. 아이마트 쇼핑센터에는 다양한 나이의 아이들이 준비되어 있어요. 음악 특기생, 타고난 천재, 둘째는 1유로에 살 수 있는 특가 세일 쌍둥이까지. 하지만 뒤프레 부부가 원하는 건 ‘완벽한 아이’예요. 완벽한 아이는 워낙 인기 있는 모델이라 구하기가 쉽지 않지만, 운 좋은 뒤프레 부부는 마침 딱 하나 남은 ‘바티스트’를 구입해 집으로 돌아옵니다.





가족이 된 기념으로 솜사탕을 사주겠다고 이야기하는 엄마에게 단 것은 이에 좋지 않다고 사양하는 금발 머리의 바티스트. 깔끔한 셔츠에 단정한 바지를 입은 바티스트는 뭐든 불평 없이 깨끗하게 먹고, 혼자서 얌전하게 놀이하며 언제나 일찍 잠자리에 듭니다. 동네 사람들 모두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학교 성적이 우수할 뿐 아니라 투정을 부리거나 소리 지르는 일 한 번 없는 바티스트는 그야말로 '완벽한 어린이'예요.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갈 시간이라며 늦잠 자는 부부를 깨운 바티스트는 오늘이 축제 날이니 축제 의상을 챙겨 입으라는 엄마의 말에 꿀벌 옷과 더듬이를 입고 윙윙~ 윙윙~ 날아 교실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요? 깜찍한 꼬마 벌 바티스트를 기다리는 건 “야, 쟤 좀 봐! 하하하!” 하는 친구들의 비웃음과 손가락질뿐이었어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집에 돌아온 바티스트. 바티스트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더듬이 머리띠를 내던지며 소리를 지릅니다. “축제는 다음 주란 말이에요! 오늘은 단체 사진을 찍는 날이었다고요오오오오!”






뒤프레 부부는 쏟아지는 장대비를 뚫고 바티스트를 구입한 마트를 찾아갑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 바티스트를 다시 ‘완벽한 아이’로 수리하는 데 몇 달이 걸린다는 말에 고민하는 부부 옆에 가만히 서 있던 바티스트. 바티스트는 새 가족이 마음에 드냐고 묻는 직원에게 이야기합니다.


“… 혹시 저한테도 완벽한 부모님을 찾아 주실 수 있나요?”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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