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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슬기 Sep 09. 2017

내가 하는 일이 하찮고 부끄럽게 느껴질 때

엄마를 위한 마법 카페, 용기 한 입 02

+ 이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정말 중요한 삶의 가치



해도 해도 티가 나지 않는 집안일을 하다 보면 속절없는 허무함에 휩싸일 때가 많아요. 거기서 벗어나고자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쓰지만,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좌절감이 찾아오곤 했지요. 매일 반복되는 모든 일과가 가치 없는 지루함으로 느껴질 때, 나는 아무 힘도, 조금의 쓸모도 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한없이 우울해지는 그런 순간이요.


하지만 한 권의 책이 이야기했어요. 아무 성과도, 어떤 결과도, 한 푼의 돈벌이도 없는 너의 하루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이라고요. ‘이런 일’이라는 그들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만의 오늘을 사는 것, 세상의 강요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행복을 찾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매우 반짝이는 삶이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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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층에 살고 있는 천재 소녀, 국회의원 아빠에 문학박사 엄마와 엘리트 언니를 둔 팔로마는 이렇게 이야기해요.


우리 식구가 만나는 사람들은 다 같은 길을 걷는다. 젊어서는 자신의 지식을 이용해 수익을 올리려 애쓰고, 학력을 레몬처럼 쥐어짜 지위를 높이려 애쓰고, 엘리트라는 위상을 확보하려 애쓰고, 이어 평생 그런 희망들을 애써 품어봤자 결국 헛된 것임을 어리둥절 깨닫는다. 사람들은 별을 보며 간다고 믿지만 결국 어항 속 빨간 금붕어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인생이 부조리하다고 처음부터 애들한테 가르쳐주면 진짜 간단한데 왜 그러지 않는지 이상할 뿐이다.


과하게 똑똑한 이 소녀는 너무 일찍 세상의 부조리에 눈을 떠요. 그리고 결심합니다. 열세 살이 되는 생일날 수면제를 먹고 아파트에 불을 질러 자살을 하겠다고요.



 


돈과 지위, 권위를 위해 애쓰지만 사실은 어항 속 빨간 금붕어 신세일 뿐이라는 팔로마의 말이 가슴에 박혔어요. 지금 내 모습이 이런 모습은 아닌가?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더라고요. 작은 어항 속의 빨간 금붕어들. 좁고 좁은 어항 속에서 뻐끔거리는 금붕어를 생각하니 <꽃들에게 희망을>의 애벌레들이 떠올랐어요.




기둥 위에 무엇이 있는지도 알지 못 한 채 무작정 기둥을 오르는 애벌레들. 모두가 오르고 있으니까 나도 오르는 애벌레들. 기둥의 끝에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하고도 믿지 못 하는 애벌레들.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다른 애벌레의 말을 믿지 못 하는 애벌레들… 내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내 삶의 목적과 목표를 모두 잊은 채 그저 남들이 가는 대로 숨가쁘게 달리고만 있는 우리네 모습과 닮아 있지 않은가요?



우리의 선택, 우리 부부가 사는 법


우린 애벌레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직장을 떠나 편의점을 시작했습니다. 원래 그의 직업은 엔지니어였어요. OLED와 반도체 공정을 개발하는 일을 했지요. 기계 다루는 일을 참 좋아하던 사람이에요. 끊임없이 시도하고 또 시도하며 실험하는 것을 재미있어 하던 사람, 수많은 가설을 세우고 검증해가는 것을 즐기던 사람이었지요.


그는 언제나 열심히 일을 했지만, 회사의 근무 시간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어요. 아침에 나간 사람이 다음 날 정오에 들어와 다시 출근을 하는 게 당연한 일상. 쉬는 주말 같은 건 꿈꾸기도 힘든 일상. 자정 가까운 시간에 퇴근하는 게 선물인 일상…





말도 안 되는 근무 환경에 무너져 간 사람은 저였어요. 독박 육아로 지칠 대로 지친 저는 언제 무슨 짓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태로운 우울증에 빠졌고, 그런 아내를 위해 그는 이직을 선택했습니다. 회사 근처에 자리 잡았던 신혼집을 정리하고 친정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어요.  가슴 졸이는 공백 기간이 있었지만, 이내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의 회사에 취직을 했습니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회사가 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왕복 5시간 거리를 오가야했어요. 새벽 2시에 집에 들어와 3시간 쪽잠을 잔 뒤 5시에 다시 출근을 하는 생활은 지속 가능한 일상이 아니었어요. 그는 공장 한 켠에 마련한 임시 숙소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렇게 주말 부부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가 없는 일상에 익숙해져 갔어요. 다시 시작된 독박 육아로 정신 없는 시간을 보내는 저에겐 타지에서 홀로 일하는 신랑을 보듬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어요. 저는 1년이란 시간이 가기도 전에 그에게서 한없이 멀어졌습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멀어져만 가는 거리를 느끼며 데면데면 어색한 시간이 쌓여갈 무렵. 회사는 그에게 법과 정의에 어긋나는 업무를 지시했어요. 그는 조심스럽게 회사를 그만둬도 괜찮겠냐 물어왔고, 저는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매일 남편이, 아빠가 집에 있는 일상. 집으로 돌아온 그는 이야기했습니다.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나에게서 마음이 멀어진 것을 알고 있다고. 이제 다시 돌아왔으니 조금씩 그 거리를 좁혀보겠노라고. 우리 다시 친해지자고, 우린 다시 친해질 수 있다고요.

                                                                                                         

그는 혼자 떨어져 있었던 시간을 외국인 노동자 같았던 삶이라 했습니다. 늦은 밤까지 정신없이 일하고 공장 바로 옆의 컨테이너 박스에 들어가 누우면 그렇게 우리 생각이 났다고.. 당신이 멀어지는 동안에도 난 늘 당신이 그리웠다고, 언제나 당신과 아이 생각만 가득했다고. 입 밖으로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았습니다. 


저는 나의 고단함에 파묻혀 그의 아픔과 괴로움을 거들떠보지 않던 아내였어요. 제가 얼마나 부족한 부인이었는지를 그 때서야 깨달았지요. 멀어졌던 거리를 좁혀가며, 우리는 새로운 직장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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