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위한 마법 카페, 용기 한 입 01
그의 새로운 일은 이런 일?
2년 전의 여름날, 남편은 직장을 떠나 편의점을 시작했어요. 많은 고민 끝에 결정한 일이었지만 하던 일과 전혀 무관한 일을 하려니 걱정이 많이 되었나 봐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 하고 새벽마다 산책을 나가는 모습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겠다는 마음에 개업 후 반 년간 매일 가게에 나갔어요.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 동안 매장을 지켰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안부를 주고 받는 단골손님이 많아졌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저와 신랑의 관계도 알려 졌는데, 모두들 매우 놀라워하시며 격한 칭찬의 말을 전해주셨습니다.
“어머, 두 분이 부부셨어요? 저는 당연히 아르바이트생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아, 그렇구나. 사모님이셨구나~ 사장님 정말 좋으세요! 항상 친절하고 성실하시고~ 올 때마다 기분 좋아요.”
그이를 칭찬하는 사람들의 말에 너무도 익숙한 저는 끄덕끄덕, 맞아요 맞아요 맞장구 치며 감사하다 대답했어요. 그를 알고 지낸 지 20년이 넘었지만, 그 사람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온 몸에 ‘사람 좋다’가 써있는 사람으로, 누가 봐도 선하고 바른 사람이랍니다.
사람들은 말했어요.
"사장님은 집에서도 엄청 잘 하시죠? 가정적이고 다정하실 것 같아요."
저는 대답했습니다.
"네 그럼요. 세상에 이런 남편이 없지요. 목소리 한 번 높이는 법 없는 사람이에요."
그럼 이런 말이 돌아오곤 했어요.
"그러니까요. 요즘 젊은 사람들 같지 않게 정말 성실하시고 착실하시고, 그런 분 처음 봤어요.
이런 일 할 분 같지 않다니까요!"
‘이런 일 할 분은 아니다.’
그를 칭찬하는 말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한 마디. 언제나 마지막을 장식하는 한 마디는 ‘이런 일 할 분은 아니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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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은 저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습니다. 편의점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친정아버지께서 매장에 찾아오신 적이 있었어요. 아르바이트생과 교대를 하고 친정으로 가는 길,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딸이 이런 일을 할 줄은 몰랐네."
사람들은 제게 말했어요. 이런 일을 해서 어떡하냐고, 얼른 하던 일을 다시 해야 하지 않겠냐고요. 제가 사범대학교를 나와 결혼 전까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는 걸 알게 된 손님들은 놀란 눈으로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을 하시냐고요.
사람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이런 일'은 대체 어떤 일일까? '이런 일' 속에 숨어있는 수많은 의미들을 생각했어요. 편의점 일은 직장을 다니는 것보다 우월하지 않은 일, 편의점 일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보다 하등 한 일, 착실하고 성실한 사람이 편의점을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
그렇다면 '편의점 점주'라는 직업에 어울리는 인간상과 행동양식은 무엇일까요? 세상 사람들이 '편의점 점주'라는 직업에 부여하는 사회적 지위와 계급이 하등 한 만큼, 그의 인격과 태도 역시 뒤처지고 미천해져야 자연스러운 걸까요? 세상의 수많은 직업에는 대체 얼마나 특별한 의미들이 더해져 있는 걸까요?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했어요.
‘그건 미천한 일이야. 아주 하찮은 일이라고. 겨우 그런 일을 하겠다고? 창피하지도 않니? 부끄럽지 않아?’
우리는 그들의 생각에 조금도 동의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았어요. 우리는 계속해서 그들의 생각과 기대를 강요당해야 했습니다. ‘내가 부끄러워해야 하는 건가?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왜 그건 괜찮고 이건 안 괜찮은 거지?’
‘그런 일’이라는 돌멩이는 끊임없이 날아왔어요.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돌멩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지요. ‘이래도 안 깨질까? 이래도 금이 안 간다고?’ 어디까지 버틸 수 있나 어디 한 번 보자는 냥 날아오는 돌멩이를 우리는 하염없이 맞고 있어야 했습니다.
수없이 날아오는 ‘그런 일’이 당당하고 단단하던 우리의 마음을 위협하기 시작했을 때, 수호천사처럼 따뜻하고 든든한 누군가가 우리 앞에 나타났어요. 운명처럼 다가온 그녀의 이름은 ‘르네’. 뮈리엘 바르베리의 <고슴도치의 우아함> 속 주인공이랍니다.
우리에게 다가온 수호천사, 르네
르네는 파리의 부촌 그르넬가 7번지 건물에서 27년째 근무하고 있는 수위 아줌마에요. 그는 가난했고, 아름다운 외모를 타고나지 못 했습니다. 르네는 부와 미를 갖지 못한 여자의 삶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어요. 자신의 지성은 사회를 향한 환멸과 좌절만 불러올 것임을 잘 알았고, 가난하고 못생긴 여자의 지성은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쓸데없는 부속품일 뿐이라 생각했습니다.
르네는 수위라는 직업에 어울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요. 방대한 영역의 교양서적을 읽으면서도 텔레비전을 크게 켜두고, 톨스토이의 문장을 줄줄 외우면서도 사람들 앞에선 일부러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을 골라 하지요. 사람들이 수위에게 기대하는 무식함을 충족시켜주기 위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수위의 ‘마땅한 모습’에 부합하기 위해서, 그녀는 기꺼이 최선을 다합니다. 건물 사람들에게 그녀는 그저 무식하고 괴팍한, 어디에나 있는 흔하고 흔한 수위일 뿐이에요.
세대주 한 번 바뀐 적 없는 이 아파트 1층 수위실에서 그녀는 자신을 꽁꽁 숨기는 데 성공합니다.하지만 5층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를 오면서 위기를 맞이해요. 다른 입주민들처럼 매우 부유하지만 남다른 눈을 갖고 있는 가쿠로 오즈는 이사 온 첫날부터 르네의 비밀을 감지합니다. 그는 상냥하고 따뜻하게 르네에게 다가와요. 톨스토이를 사랑하고, 클래식을 즐겨 듣고, 네덜란드 회화를 좋아하는 그녀의 숨겨진 내면을 알아보고, 예술의 아름다움을 함께 이야기하며 마음을 나누는 벗이 되길 원하지요.
가쿠로는 르네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고,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영화를 봅니다. 그는 르네에게 손을 내밀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가지만 르네는 그의 손을 잡지 못 하고 망설여요. 그와 함께 하는 것은 수위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 내가 타고난 지위와 계급에 허락되지 않은 가당찮은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지요.
르네와 가쿠로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을게요. 책 읽는 재미를 모두 빼앗을 수는 없으니까요. 다만, 아주 엄청난 반전이 있다는 얘기는 덧붙이지 않을 수가 없는데, 전체 458페이지 중 19페이지! 겨우 열 장이 되지도 않는 마지막 부분에서 상상치도 못 했던 결말이 전개돼요. 책을 처음 읽었을 땐 ‘아니 지금 장난하나? 이걸 지금 결말이라고 쓴 건가?’ 어찌나 황당하고 기가 막히던지… 작가를 향한 배신감까지 들었어요.
‘뭘까? 굳이 결말을 이렇게 쓴 이유가 뭘까? 뭘까? 작가는 무얼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2주가 넘도록 고민을 했지만 ‘이거다!’싶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는데, 유모차에서 잠이 든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하며 나눈 신랑과의 대화에서 느낌표를 찾았어요.
“이게 무슨 의미 같아?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걸까?”
“그냥 그런 거 아냐? 넌 오늘을 어떻게 살 거냐고. 넌 오늘을 어떻게 살고 있느냐고. 세상이 시키는 대로 적당히 맞춰서 살 거냐,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 거냐. 좋아하는 사람과 당당하게 사랑을 할 거냐, 나한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포기만 할 거냐. 그런 거 아냐? 그거 같은데?"
신랑의 말을 듣고 나니 번개가 번쩍!
‘아! 내가 쓸데없이 먼 길을 돌아 돌아 머리만 굴려댔구나!’ 깨달았어요. 그리고 떠올랐지요. 르네가 했던 한 마디가요.
삶의 가치를 어떻게 결정지을까? 어느 날 팔로마가 내게 말했다. 중요한 건 죽는 것이 아니라, 죽는 순간에 뭘 하는가라고. 죽는 순간에 난 뭘 했지? 내 가슴의 온기 속에 이미 준비된 답을 가지고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했는가? 나는 다른 사람을 만났고,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르네가 저에게 이야기했어요. 삶의 가치는 그 사람이 '무엇을 이루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죽는 그 순간 '무엇을 했느냐'에 있다고, 중요한 건 삶을 통해 이룬 ‘성과나 결과’가 아니라 하루하루 수없이 반복되는 ‘매 순간의 오늘 무얼 하는가’에 있다고요.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