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몸으로 산다는 것, 해명이 필요한 몸의 고백
예민한 몸으로 산다는 것_
해명이 필요한 몸의 고백 01
오감이 예민한 나는 처음 가는 카페에서 자리를 잡는 데 한참의 시간을 소요한다. 실내를 여러 번 스캔하며 가장 적당해 보이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가도 다시 일어나 또 다른 자리를 찾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많은 경우 그 이유는 '음악 소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내 몸과 너무 가까울 경우 심장이 조여드는 듯한 통증이 오기 때문이다. 마치 커다란 음악 소리가 망치를 들고 내 가슴을 쿵쿵 내리찍는 느낌이랄까.
지금 같은 겨울에는 극심한 두통과 금방이라도 구토를 할 것 같은 메슥거림을 유발하는 히터 때문에 또 신중히 자리를 찾고, 무더운 여름에는 등이 뒤틀리는 듯한 담을 유발하는 에어컨 바람 때문에 또 신중히 자리를 고른다. 이 자리, 저 자리, 여기저기에 앉아 내 몸의 상태를 관찰한 뒤에야 비로소 여기에서 머물만한 자리를 찾을 수 있는데, 문제는 그렇게 찾은 자리에서도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곤 한다는 것이다.
조명이나 음악 소리, 히터나 에어컨 바람은 확인을 할 수 있는 '고정적' 환경이지만 내 주변에 자리하는 사람들은 예측이 불가능한 '변수'로 작동한다. 특히 어려운 것은 냄새, 그중에서도 진한 남자 화장품 냄새가 가까이 오면 숨을 쉴 수가 없어진다. 향이 강한 화장품을 쓰는 남성이 곁에 와서 앉을 경우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가 끝내 일어나 자리를 옮기지 않을 수 없고, 그리하여 남자 화장품을 쓰는 (대부분의) 남성을 기피한다.
(매번 혼자 죄송한 마음에 고개를 숙이게 되지만 일단 나도 숨은 쉬고 살아야겠으므로, 어쩔 수 없는 나를 이해해 주시길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볼 뿐...)
지금의 남편이 구남친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었으니, 날 때부터 예민한 피부로 잦은 트러블에 시달려 온 그는 독한 화장품을 쓰지 못했다. 남자 화장품 대신 엄마 화장품을 썼다. 그가 바르는 화장품은 헤라의 가장 순한 라인으로 나는 듯 안 나는 듯 은은한 향이 좋았다. 그게 그가 좋은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계속 만나고 싶은 요인으로 작동했다.
그는 나의 예민함을 있는 그대로 수용했다.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주었다. 군대 안에서 담배를 피우지만 휴가를 나오기 전날부터는 벼락치기 금연을 하고, 허리를 크게 다쳐 병원을 다니는 동안에도 나를 만나러 오기 전날부터는 파스를 붙이지 않았다. "냄새나." 한 마디면 "아니 대체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래?" 타박하는 대신 바로 "자리를 옮길까?" 하고 다정하게 물었다.
이런 사람이라면 평생을 함께 해도 좋겠다는 확신으로 결혼을 한 우리는 다 자란 성인 두 사람이 한 집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아 가는 부부가 되었다. 임신을 하고 더 예민해진 오감으로 입덧에 시달리는 나는 왜 바디샴푸를 두 번이나 짜서 샤워를 하냐, 타박하는 아내가 되었고, 그는 같이 쓰는 목욕용품이나 화장품도 '너무 많이'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남편이 되었다.
하지만 그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의 문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재채기. 그는 내 심장을 쥐어짜듯 강렬한 통증을 유발하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요란스러운 재채기'로 내 몸의 기운을 수시로 앗아갔고, 나를 닮은 우리의 아이는 물론이오 우리 집에 살고 있는 고양이마저 기절하듯 몸을 떨며 놀라게 만드는 그 재채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으므로, 그는 가능한 선에서 최선을 다해 재채기를 예고하는 남자가 되었다.
"어어...어어어어..!!!"
옆에 있는 내 팔을 갑자기 막 치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나는 재빠르게 마음의 준비를 한다. 조금 일찍 알아차린다 해서 심장이 덜컹 주저앉으며 맥이 탁 풀려 가슴이 펄떡이고 숨이 막혀 오는 통증이 생기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 강도를 조금 줄일 수는 있다. 예고 없이 들이닥친 충격에 보다 오래 지속되는 통증에서 멀어질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할 틈 없이 터져 나온 재채기 앞에서 나는 매번 크게 놀라며 괴로워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럴 때마다 "미안 미안, 예고해 줄 틈이 없었어." 말하는 그는 내게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 사람이다.
"아니 재채기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나랑 살기 피곤하지 않아? 내가 봤을 땐 극한 직업이 따로 없는데~ 집에서 재채기도 마음대로 못 하는 게 짜증 날 수도 있잖아." 묻는 내 말에 늘 그는 답한다. "슬기를 사랑하니까."
슬기를 '사랑한다'는 단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재채기 예고 따위야 피곤한 일도, 짜증 나는 일도, 성가신 일도 될 수 없다는 그의 곁에서 나는 오늘도 사랑을 한다. 더없이 반짝이는 사랑을 주고, 또 넘치게 받는다.
(위의 사진은 이번 달 나홀로 차박 여행을 다녀온 그가 들고 온 빵폭탄 선물 꾸러미.
"아니 빵을 이렇게나 많이 사 오면 어떡해!!!!" 하며 놀라니 "어떡하긴 뭘 어떡해~ 우리 슬기가 이렇게 행복하지!" 말하는 그 덕분에 일주일 새 배랑 얼굴이 토실토실 세상 후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