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하나 둘째는 고양이
회사 밖에서 프리하게 사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Ep 06.
점심 준비를 시작한 1월의 어느 11시 35분, 밥그릇 5개가 몽땅 박살 났다. 한두 개도 아니고 다섯 개라니, 이렇게 화끈하게 깨져버리다니!
깨진 밥그릇을 서둘러 치워야겠다는 생각보다 이 깨진 조각들을 어떻게 치워야 할까 그저 황망한 마음에 정신을 놓고 멍하니 바닥만 쳐다보고 있는 나에게 아이가 말했다.
"엄마 크림이 못 가게 내 방에 가둬놓을까? 그릇이 다 깨져버려서 속상해서 그래? 괜찮아 엄마. 그릇은 새로 사면 되잖아. 이번 기회에 예쁜 걸로 새로 사!"
그제야 정신이 들어 이쪽으로 오지 말라고, 크림이도 못 오게 해달라 당부의 말을 하고 이 처참한 상황의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전송했다. 사진을 본 남편은 바로 물었다.
"크림이가??"
그릇을 깨트린 범인은 고양이가 아니었다. 주방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밥그릇 조각들은 몸이 좋지 않은 자가 꾸역꾸역 몸을 움직여 점심을 준비하다 생긴 일이었다.
새벽부터 내 컨디션은 엉망이었고, 옷가지를 분리해 세탁기에 넣는 손에서도 자꾸 힘이 빠졌다. 놓쳐버린 빨랫감을 줍기 위해 연신 허리를 숙여야 했다.
평소에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도 없었던 너무 당연한 일, 세제를 흘리지 않게 따라 붓는 일조차 쉽지 않아 세탁기 위에 질질 흐른 세제를 닦아내야 하는 일이 또 하나 추가되었을 때. 일이 줄기는커녕 자꾸만 증식될 때. 그걸 증식시키는 장본인이 내 몸뚱이라 누구를 탓할 수도 없을 때.
그럴 때 솟구치는 짜증은 너무도 쉽게 아이를 향해 날아가고, 엉뚱한 곳에 분풀이를 하고 있는 내가 한심해 더 짜증이 나고, 그렇게 몸과 마음은 함께 추락한다. 어쩌지 못해 뱉어버린 감정은 나에게 다시 돌아와 내 숨통을 조여 온다. 숨이 탁탁 막혀온다.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 아이를 먹이고 입히며 돌봄을 수행한다는 것은 내 몸과 마음을 우선할 수 없는 상황에 지속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뒷전으로 밀린 내 몸이 곡소리를 내는 순간에도 내가 해야 할 일은 끊임없이 밀려온다. 그 해일 앞에서 울고 싶어지는 순간들은 문득문득 찾아온다.
저녁 5시 30분, 퇴근을 하고 돌아온 그가 아이의 저녁이며 돌봄 노동을 가져가 주었을 때, 편하게 쉬라며 저녁을 먹자마자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서 주었을 때, 텅 빈 집에 나만 혼자 남았을 때.
왜 나는 평소처럼 그 적막과 고요가 행복하지 않았을까? 왜 뜬금없는 외로움과 서러움이 몰려왔을까? 아이 방 침대 위에 누워 훌쩍훌쩍 울고만 싶었을까?
그런 나에게 다가온 존재는 사람 아닌 고양이, 나는 마음을 내어 줄 생각이 1도 없었던 반려동물이었으며 크림이는 내 다리 위로 가볍게 날아와 동그랗게 몸을 말고 제 몸의 무게와 체온을 나에게 전했다.
'아. 이건 뭐지? 이 뭉클한 마음은 뭐지? 내가 왜 얘한테 이렇게 위로를 받지? 내 가슴이 왜 이렇게 스르르 녹지?'
더없이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내 손길에 몸을 맡기는 크림이를 쓰다듬고 있자니 밀려오는 그 감정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내어 놓아 버린 내 마음과 고양이가 가져가 버린 내 무게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크림이는 수시로 내 다리 위에 올라와 나를 쳐다보고 이내 눈을 감고,
내 품에 안겨 잠이 든 아이를 보며 나는 가슴이 뛴다.
고양이가 나를 위한 존재일 수도 있다니, 고양이 입양이 나를 위한 선택일 수도 있었다니.
여전히 나는 많은 순간 관찰자이자 방관자로 고양이 돌봄에 참여하지 않지만, 고양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모든 노동은 남편에게 일임하지만. 남편도, 아이도 없는 밤. 홀로 남겨진 밤. 아무도 모르게 내 가슴을 내어 놓고 기대어 본다.
내 곁의 이 작은 동물, 우리의 크림이에게.
아이는 하나 둘째는 고양이, 회사 밖에서 프리하게 사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는 매주 수요일, 주 1회 연재하고 있었으나 올봄 출간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는 네 번째 책의 원고 작업으로 인해 3월 말까지 쉬어갑니다. 원고 작업 중에도 간간이 업데이트드리고, 작업 중인 새 책의 글도 살짝이 맛보여드릴게요! ^^지난 글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해 주세요 :)
Ep 01. 족욕기 보고 울어봤니? 고양이를 키우면 생기는 일
Ep 02. 바닥난 통장과 코로나 블루,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Ep 03. 퇴사 후 편의점, 둘째는 고양이. 적자를 내며 삽니다.
Ep 04. 자다 깬 아이가 엄마를 찾지 않는다.
Ep 05. "엄마가 일을 못하는 건 나 때문이야?" 아이가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