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빼한 여자는 퉁퉁한 여자와 무엇이 다른가
요즘 마른 사람이 퉁퉁한 사람보다 그리 많지 않다.
예전에는 삐짝 마른 여성이 많았다.
스키니 바지를 입은 여성을 보면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스키니 문화보다 통 큰 바지의 유행이 많아진 것도 무시 못 한다.
어느 날 아침 일찍 카페에서 모닝커피를 한잔 걸치던 참이었다.
옆 테이블의 아줌마 여럿이 수다가 시작되었다.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도,
테이블의 간격이 워낙 짧아 내 귀는 저절로 옆 테이블로 향한다.
빼빼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 엄마도 줄곳 마른 여자를 보면 빼빼하다고 한다.
빼빼하다는 표현은 빼빼로에서 나온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저 여자 왜 이렇게 말랐어?" 보다 "저 여자 왜 이렇게 빼빼해?"의 표현이 강했는지 재밌게 들렸다.
가만히 생각해 봤다.
우리 언어의 묘한 매력이 여기에 있다.
표준어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면 농담도 재미없게 들린다.
표준어도 은유의 표현과 위트 있는 말솜씨로 말하면 더 흥미롭다.
남성보다 여성의 수명이 긴 이유는 카페에 앉아 옆자리를 보면 다 안다.
흔히 여성들은 고독한 생활을 즐겨도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을 자초한다.
옆 테이블에 같은 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 봐도 아는 채 하고 싶어진다.
내면의 친밀감이 올라오는 순간 나의 성장을 확인한다.
시장 가서 물건을 잘 깎는 이유도 매한가지다.
천원이라도 깎으려 하는 그 욕망은 어디서부터 진화된 걸까.
남성들은 체면이 더 중요하다.
남성들은 죽을 때까지 가면을 쓰고 산다.
어떤 명상 단체나, 지적인 모임에 가도 남성들이 모인 자리는 거의 없다.
주로 술을 마시고 게임을 즐겨 한다.
꿍하게 있는 여성도 길에서 화려한 여성을 보면 내 어둠 속에서 빠져나오려고 한다.
여자들과 모인 자리에서 왜 명품과 사치품을 두고 경쟁하는 이유도 생존과 관련이 깊다.
반대로 남자들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여자는 "사랑해'라는 말을 더 좋아하고, 남자는 "고마워"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나를 인정해 주는 여자를 잊지 못하는 남자의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빼빼한 여자에 대해 잡담을 나누는 아주머니들의 생존방식은 남성들과 확연히 다름을 느꼈다.
뚱뚱한 여자는 되지 말아야겠다. 조금의 똥똥한 여자는 될지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