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있는 삶을 살겠다는 결의
마라톤 대회에 한 번 더 출전했다.
1등을 목표로 두고 달렸다는 상상은 거짓말이었다.
상대를 안본 척 봤는데 벌써 기세에 눌렸다.
누가 아라비아 숫자를 만들었나.
1,2,3,4..
1등은 넘볼 수 없는 최고의 자리이고, 2등은 3등을 앞질러 올라간 1등에게 굴복한 자이다.
우리는 등수 메기는 걸 즐겨 한다.
이기고 지는 경기를 보는 재미와 경쟁하며 느끼는 쾌락을 동시에 준다.
또한 등수를 메기는 것은 그 사람의 실력과 자질을 평가하는데 효율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타강사, 최초, 국민 첫사랑, 베스트셀러..
일타강사는 1등 스타강사를 줄인 말이다.
이타 강사는 왜 없지?
달리기에서는 1등, 2등, 3등에게 무대 단상에 오를 수 있는 혜택을 준다.
1등의 단상은 가장 높고, 계단식으로 2등, 3등 순이다.
이타 강사는 왜 개념화가 되어 있지 않을까.
이타 강사는 왜 만들지 않을까.
"성공의 결과는 고통 없는 과정은 없다."라는 말을 하는 동기부여의 말도 정작 이타 강사로 전락하고 싶진 않은 모양이다.
3등보다 2등이 좋고, 2등보다 1등을 원한다.
이것은 목적 있는 삶이 목표 있는 삶에 패배하고 있는 건 아닐까.
1등을 목표로 하게 되면 그다음 이룰 게 사라진다.
목적 있는 삶은 두루뭉술하다.
목표 있는 삶은 구체적이고 명료하다.
목표에 갇힌 사람은 그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탄성이 약하다.
목적 있는 삶은 어디서든 유연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목표에 의의를 두고 목적 있는 삶을 거세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12년 동안의 엉덩이 싸움은 어떻게 육체의 역동성을 이기겠는가.
지적인 쾌락은 고통을 관찰하는 데서 온다.
관조적인 나의 태도는 쾌락을 절대 다른 것과 맞바꾸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