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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여자 2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은 언젠가는 일어날 수 있다.

by 슬기

정상의 안개는 곧 앞이 안 보임이 예정되어 빠른 하산길을 요구했다.

올라왔던 길을 그대로 내려가는데, 안내판의 위치는 헷갈린다.

남자 셋은 오른쪽으로 향했다.

나는 그 남자들을 등진 채 왼쪽으로 향했다.

15분 정도 지났을까, 처음 본 길과 낯선 바위들이 내 앞에 형태를 나타냈다.

생소한 길이어도 내려가면 종착지는 똑같을 것이라 믿고 힘차게 걸었다.

머리로는 안전할 것이라며 믿지만 이미 몸은 겁에 떨고 있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안개층이 빠르게 내려오고 있음이 지금부터다.

주변에 들리는 소리는 빗 소리와 나의 숨소리

1시간 정도 됐을 때 도착지의 안내표를 보고 안도감을 내쉬었지만,

숨이 덜컥 막혔다..

반대편으로 왔기 때문이다.

원래의 목적지로 가려면 걸어서 2시간 30분을 가야 한다...

그 짧은 시간에 두 가지의 경우의 수가 떠올랐다.

그냥 걸어서 2시간 30분을 갈까.

아니면, 다시 발걸음을 돌려 정상으로 올라간 다음 사람들이 보이면 그들과 함께 내려갈까.


나는 두 번째를 택했다.

왜 나는 이렇게 바보 같을까.

그리 어렵지 않은 길인데도 나는 왜 이렇게 헤매는 거지..

아까 정상에서의 남자 셋이 떠올랐다.

오른쪽으로 가는 것이 맞구나..

왜 나는 그때 나의 미련한 직감을 믿었을까..


비바람은 더 거세지고, 앞도 점점 보이지 않을 만큼 안개가 두꺼웠다.

며칠 전 이곳에서 실종된 여자의 뉴스 기사는 왜 하필 이 순간 떠오르는 것인가.

119를 부를까, 소리를 굵고 짧게 지를까, 그냥 묵묵히 걸을까

걷기로 했다.

피는 위로 쏠리고,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고독을 즐기러 시작했던 산행은 역전의 상황을 제대로 맞았다.

빛이 희미해진다.

안개는 나를 삼키는 중이었다.


1미터 앞에서 나의 모습을 봐도 사람의 형태가 보이지 않는다.

뒤에 낯선 이가 따라오든, 짐승이 달려와도 아무렇지 않을 모습이다.

그렇게 나는 묵묵히 나를 믿은 채 정상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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