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놀이

장마와 반지하

by 사각

“집에 햇빛이 어디 있어요?” 선생님은 바보다. 집에는 원래 햇빛이 없다. 그림자를 만들려면 햇빛이 필요하잖아. 신발주머니를 뻥뻥 차며 걸어오니 30분도 금방이다. 당기는 문을 밀어 열고 집으로 향해 내려간다. 계단을 14칸 씩 두 번, 현관에 도착한다. 엄마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화분 밑 열쇠가 남아있다. 홈에 열쇠를 맞추고 오른쪽으로 돌렸다. 문이 열렸다. 안정기가 나가 형광등을 켜면 온 집안이 반짝거렸다. 불을 끄고 텔레비전을 켰다. 내일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선생님이 숙제를 바꿔주시겠지. 집에는 햇빛도, 그림자도 없으니까.


엄마가 돌아왔다. 엄마는 들어오자마자 수건으로 문틈을 막았다. 의자를 밟고 올라가 신발주머니만한 창문 틈도 수건으로 막았다. 내일 비가 오려나보다. 토요일이라 뒷산에 가려 했다. 아쉽다. 하지만 엄마가 문틈을 막는 날에는 나가면 안 됐다. 엄마가 전화를 하신다. 설거지와 동시에 전화를 하느라 스피커폰이었다. 이제 지하에 살 수 없다고 했다. 법이 바뀐다나. 법? 규칙 같은 거 아닌가? 엄마는 지원금이 나와도 이사할 수 없다고 했다. 돈이 없다고 했다. 부족하다는 뜻일까? 의문만 남았다. 작은 창문으로 사람들의 발이 물웅덩이를 쳐낸다. 발에 치인 빗물 덩어리가 창문에 찰팍찰팍 달라붙는다.


문이 열렸다. 흙탕물이 철문을 밀고 들어왔다. 가정통신문 뒷면에 동물을 그리던 참이었다. 그림자처럼 연필로 어둡히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밥상 위에 올렸다. 책상 위에 올렸다. 옷장 위에 올렸다. 더 올릴 데가 없자 나를 물에서 건져 올리고 작은 창문에 소리쳤다. 내 딸을 구해달라고. 빗소리에 엄마의 목소리가 묻혔다. 사이렌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길고 흰, 밝은 빛이 나를 덮쳤다. 창문 사이로 몸이 빠져나갔다. 주황색 옷을 입은 사람이 엄마도 곧 오실 거라며 나를 사이렌이 울리는 차에 태웠다. 구급차인 것 같았다. 엄마가 나를 위로, 또 위로 올려준 덕에 난 물을 한 모금도 먹지 않았다. 바쁘게 뛰어다니는 흰색 가운을 입은 어른들 사이로 몰래 빠져나왔다.


엄마랑 길이 엇갈렸다. 빗물이 휩쓸고 간 집에는 물웅덩이만 남았다. 녹은 냉동 만두를 먹었다. 다채로운 맛이 났다. 잘게 썰린 파, 당면, 고기까지. 화분이 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틀림없다. 엄마인 줄 알았지만 아저씨였다. 그는 나의 삼촌이라고 했다. 아빠의 동생이라면서. 그의 뒤에는 어른 둘이 있었다. 삼촌은 어른들을 따라가라 했다. 먹다 남은 만두를 챙겼다. 학교에 가야하니 책가방을 찾아보았지만 흙탕물이 가방을 숨겨 찾을 수 없었다.


임시보호소. 이곳에는 햇빛이 있다. 그림자도 있다. 집에 가면 그림자가 나를 쫓아오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그림자가 온종일 나를 쫓아다닌다. 집은 온통 그림자였는데. 때가 되면 밥을 먹었고 공부를 했다. 산책을 했다. 친구들이 물었다. 너도 엄마랑 아빠가 없냐고. 아빠는 모른다고 했다. 엄마는 그림자에서 길을 잃었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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