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리 Apr 18. 2022

마음속에 새긴 세번의 밤하늘.


인생을 살아오면서 마음에 깊게 새겨진 장면들이 있다.

그 장면들 중 가장 먼저인 것을 말해보라. 한다면.

참 아름다웠던 나의 밤하늘을 말해주고 싶다.


나의 첫 밤하늘.


이제 글을 막 배우기 시작했을 무렵, 학교에서는 나에게 동시를 가르쳐 주었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소리 내어 동시를 함께 읽었고 그다음에는 동시를 외웠다. 동시를 외워 그 표현이 머릿속에 저절로 떠오를 때쯤이 되면 동시 짓기를 시작했다. 그 시절 배운 어느 동시 구절 중 하나. 어린 나는 그 구절의 표현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쏟아질 듯이 많은 별들이.


쏟아질 듯이 많은 별들이. 쏟아질 듯이 많은 별들이....


몇 번을 반복해서 읽어보아도 나는 '하늘에서 별이 쏟아질 듯이 많다'라는 표현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하긴, 암기로 동시를 배웠던 터라 동시의 단어 하나하나를 감각으로 느끼기엔 초등학생에겐 너무 어려운 일일 법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그 쏟아질 듯이 많은 별들을 마주하고서야 왜 그때 그 시인이 그렇게 말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예술가에 타고난 한량이시다.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지금도 만만찮게 한량처럼 자유롭게 살고 계신데 젊은 시절의 아버지는 정말 활동량이 엄청나셨다. 내비게이션도 없었던 그때 국도 지도를 펼쳐들고 엄마는 옆에서 길 안내를, 아버지는 운전을, 나는 뒷자리에서 멀미를 하다가 잠들기가 일쑤인 여행을 밥 먹듯이 했다.


잠들었다 일어나면 산, 잠들었다 일어나면 바닷가. 나의 어린 시절은 가족과 함께한 여행의 기억들로 가득하다. (그런 유년 시절을 선물해 준 부모님께 늘 감사한 마음이다.) 그날도 니가 아는 길이 맞다 내가 아는 길이 맞다 서로 지도를 보면서 실랑이를 하는 부모님의 화기애애한 투닥거림을 들으며 계곡으로 향했다. 도착한 순간부터 부모님에게는 노동 나에겐 놀이인 텐트치기가 시작되었다. 누워서 자기 편하도록 텐트가 설치될 자리의 바닥은 평평해야 했다. 바닥의 울퉁불퉁한 돌들을 아버지를 따라서 골라내고 나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정말 빠른 속도로 텐트를 설치하셨다. 잠을 자는 구역과, 햇빛을 피해서 놀 수 있는 구역까지 아버지는 텐트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분이셨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손수 차려준 캠핑장에서의 첫 끼를 먹고 나니 금세 밤이 되었다. 계곡에는 우리와 같은 캠핑족들이 쳐놓은 텐트 불빛들만 남고 깜깜해졌다. 사방에는 풀벌레와 개구리 우는소리만 가득했고 아버지는 나를 끌어안고 돗자리에 '아이고' 소리를 내면서 쓰러지셨다. 아버지 품에 답답하게 끌어안겨있다가 겨우 밖으로 빠져나온 순간 그때 처음 보았다. 쏟아질 듯이 많은 별들을.



"아빠 진짜 별이 눈 위로 쏟아질 것 같아"



살면서 나는 그때 보았던 그 밤하늘을 잊을 수가 없다. 빈틈없이 까만 밤하늘에 큰빛과 작은 빛을 내는 별들이 빼곡히 박혀 흔들리고 있었다. 눈의 초점을 흐릿하게 하고 보면 빛이 동그랗게 번져 커졌고, 눈의 초점을 또렷하게 하고 바라보면 그동안 내가 스케치북에 왜 별을 뾰족하게 다섯갈래로 그렸는지를 알수 있을만큼 빛이 여러갈래로 또렷하게 갈라졌다. 다시 눈을 감았다 올려다 보면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이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살면서 처음 보는 그 장면을나는 넋을 놓고 한참을 쳐다 보았고, 아버지는 나를 꼭 끌어 안은 채 그런 나를 한참을 바라보셨다.



이후에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많은 여행을 다녔고 수없이 많은 밤하늘의 별을 보았다. 하지만 그때의 밤하늘 같은 별들을 만나긴 힘들었다.



사막의 밤하늘.



아름다운 밤하늘을 맞이하는 데는 필수 조건이 있다.

1. 도시의 빛과 최대한 멀어질 것.

2. 가장 맑은 빛을 보기 위해서는 날씨가 추워야 한다. (날씨가 추워지면 시정도 좋아진다)

3. 적정한 시간대를 마주하기 위해 선잠을 자야 한다.


그러니까 춥고 시정이 좋은 날에, 최대한 멀리 외지로 가야 하고 거기에 잠을 포기해야 볼 수 있는 게 밤하늘의 별인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보호자의 보호 아래 최상의 환경에서 최고의 컨디션으로 밤하늘을 영접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아주 달랐다.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는 데는 고생길이 필수였고, 그 사실을 배우게 되었던 첫 여행이 인도 배낭여행이었다.


청소년기 때 휘(친구)와 함께 읽었던 책이 있다. '류시화 작가님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당시에는 이 책이 국내 최고의 베스트셀러였고(인도로 배낭여행을 온 한국인 여자 여행자들이 무척 늘어났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청소년기의 휘(친구)와 나는 이국적인 낯선 나라 인도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꼭 함께 이곳으로 여행을 가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결국.

인도로 떠나는 비행기는 나만 타게 되었다.


외국여행이 처음이었던 최고의 쫄보인 나는 낯선 사람이더라도 한국 사람과 여행을 하고 싶었고, 처음 보는 또래의 한국인들을 동행자로 구해서 인도로 떠났다. 인도 배낭여행에 있어서 자이살메르 사막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낙타 사파리는 거의 필수 코스라고들 하기에 일단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마음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사막에서 보는 밤하늘이라니 분명히 멋진 경험일 것 같았다. 하지만 살아생전 말도 한 번도 타보지 못했는데 낙타라니.....?


현실 사파리에서는, 낙타를 타고 30분 정도만 재미있었지 그 다음 부터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허벅지가 쓸리듯 아프고, 춥고, 육체에 느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다 느끼면서 4시간을 걸려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의 중심에 도착했다.


고통이 잊힐 정도로 사막은 아름다웠다. 심지어 사막에서 보는 노을은 그 빛깔이 달랐다. 동행자들과 나는 정말 많은 사진을 찍었다. 지쳐서 사진도 못 찍겠다 싶을 무렵에, 우리를 훈훈하게 구경하던 인도의 안내자들은 모닥불을 피웠다. 다 같이 모여 간단한 식사를 하고 너무 추운 나머지 잽싸게 침낭에 들어갔다. 핫팩도 붙이고 침낭에 들어갔지만 따뜻해지길 기다리는 그 시간이 너무 추워 입까지 덜덜 떨었다. 안내자들은 돌돌 말아 낙타가 매고 온 담요를 풀어 내 위에 몇 겹을 올려주었다. 그리고 안내자들이 모닥불을 끈 순간 분명히 눈을 뜨고 있는데도 눈을 감은 것처럼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살면서 그렇게 깜깜한 세상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보았다. 사막의 밤하늘을. 빛이라고는 별빛뿐이었다. 사막으로 가는 내내, 나는 사막에서 보는 별빛도 분명히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일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보는 별들도 분명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답기는 했지만 어릴 적에 아버지와 계곡에서 보았던 그 별빛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이상하다? 내가 생각한 건 이 느낌이 아닌데?' 눈 위로 와르르 별빛이 쏟아질 것 같은 그 느낌. 난 그걸 기대했는데 말이다.


그렇게, 사막에 누워 별을 바라보며 아버지와 보았던 별을 생각했다.



새해 일출 전의 밤하늘.


사진을 취미로 하면서 정말 국내의 아름다운 곳들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중 가장 찍기 힘든 사진들이 밤에 찍는 별 사진. 그리고 일출 사진이었다.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정말 '개고생'을 해야 한다. 근데 사진을 찍을 때 느끼는 그 희열감을 느끼기 위해 몇 번이고 그 고생을 기꺼이 하게 된다.


하아, 나 진짜 이번에만 여기 찍고 내년에는 다시는 안 온다.


한 번이면 충분하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추위에 덜덜 떨면서 별을 찍고 일출을 찍고도. 때가 되면 또 떠난다. 그리고 이날도 결국에 나는 그 고생길로 또 떠났다. 이날의 동행자들은 사진동호회에서 의형제급이었던 3명의 형제들과 함께였다. 지금 남친이 들으면 대노할 일이지만 나는 운전도 못하고 텐트도 못치고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나는 이날 "이런 무 쓸모 한 인간 같으니라고" 같은 놀림을 내내 받았다. 내가 생각해도 굉장히 무 쓸모 했기 때문에 형제들 옆에서 쭈구리가 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텐트에서 보드게임도 하고, 컵라면도 먹고, 비긴 어게인도 보면서 진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는데도 날이 밝지를 않았다. 새벽이 지날수록 날씨는 점점 더 추워졌고 심지어 텐트에 살얼음이 끼기까지 했다. 힘들기는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우리 4명은 서로 바짝 붙어 잠을 청했고 추워서 선잠을 자던 나는 텐트 밖으로 나와 밤하늘의 별을 구경했다. 살이 아플 만큼 추운 날 별을 본 적이 있는가? 두 번 보라고는 못하겠지만 정말 볼만하다. 까만 밤하늘에 별빛이 아주 뾰쪽하고 맑게 흔들린다. 작은 별부터 큰 별까지 모두 보이는 경험. 아주 귀한 경험이다.


그리고 맞은 새해 첫날. 구름에 가려져 우리는 일출을 보지 못했다.

이렇게 고생을 해도 간혹 보답을 받지 못하는 날도 있다.

이날 이후로 새해 일출을 직접 보러 가는 무모함은 아직 실천하지 않고 있다.



삶을 살아가면서 정말 수많은 장면들을 마주한다. 다행히 나의 삶에 있어서 감사한 건, 내 인생의 한 장면을 떠올리려 노력할 때 늘 생애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먼저 떠올린다는 것이다. 슬픔의 순간들은 가볍게 기억하고 행복했던 순간은 온전히 기억하는 내가 좋다. 나에게 그런 삶을 선물해 준 사람들에게 늘 감사하다. 나는 앞으로 또 어떤 밤하늘을 만나게 될까? 꼬마 시절 만났던 밤하늘을 능가하는 밤하늘을 또 언젠가 만날 수 있을까? 우주를 직접 보지 않고서야. 만나기는 힘들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린지 오래지만. 나는 늘 기다린다. 또 다른 밤하늘을 만나는 순간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