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날에는 써야 해요

꾸준히 생각하고 쓰는 글쓰기

by 슬슬

늘 잔잔하지는 않더라도 파도처럼 요동치진 않는다. 애쓰지 않아도 안정적이고 긍정적인 심리 상태를 유지하며 생활한다. 직장 생활과 육아, 남편과의 관계에서 욱하고 치밀기도 하고 답답함에 몸부림칠 때도 자주 있지만 다행히도, 그리고 감사하게도 보통의 감정으로 돌아오는 것이 그리 힘들지 않다. 나의 보통이 남들보다 더 부적 감정을 향해 있어서 그런 거라 한다면 어쩔 수 없다. 지나치게 깊이 침잠해 녹이 필 정도가 아니라면 잔잔히 부적 감정의 수면에 떠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Y는 힘들 때 쓴다고 했다. 벌어진 일에 대해 질문하듯 써 내려가면 상황이 객관적으로 보이고 답을 찾기도 한다고 했다. 나와 완전히 반대라 깊은 공감을 하지 못해 내심 미안했다. 나는 감정적으로 휘청일 때 쓰는 것이 힘들다. 펜을 들고 다이어리의 표지를 여는 것, 폰을 켜 앱의 아이콘을 누르는 것조차도 무겁게 느껴진다. 휘청임이 잦아들고 나서 돌아보면 며칠 또는 몇 주가 인생에서 사라진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모든 건 마음에 남는다. 기록하지 않았음에도 내가 기억한다. 하얗게 비어있는 언젠가의 일기장에서 어떤 사건이, 상황이, 나의 어려움이 읽힌다. 게으름이 만든 여백은 애를 써도 기억나지 않아 채울 수가 없는데 말이다.


써야 할 이유를 여기서 찾는다. 쓰지 않으면 좋은 것들은 흐려진다. 분명 행복했는데, 웃겼는데, 감동했는데, 감정의 흔적만 남고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부지런히 써두어야 선명히 기억할 수 있고, 그렇게 써둔 일상은 가라앉은 마음이 가닿아야 할 보통이 된다.


보통의 날에는 뭐라도 써야 한다. 어느날 또 흔들리고 가라앉을 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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