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생각하고 쓰는 글쓰기
잊고 있었다. 직장이라는 세계에서는 종종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2월은 이상하고도 이상한 달이었다. 일 년 동안 손발을 척척 맞춰온 부팀장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다른 업무에 배치되었다. 원래의 부팀장 말고도 그 자리를 희망하는 팀원이 몇 있었지만, 워낙 돈독한 우리 팀이기에 부팀장과의 원만한 합의에 따라 스스로 2 희망 업무를 선택한 상황이었다. 정작 부팀장 자리에는 다른 팀에서 넘어온 사람이 앉혀졌다. 업무에 대한 이해는 차치하고 매달 두 번째 화요일에 우리 팀에서 가장 중요한 정기 심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화요일마다 개인 용무가 있다는 선전포고를 하는 분이었다. 팀장인 나는 새로운 부팀장과 다시 합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라 여젼히 답답하고 난감하다. 그저 아직 시작하지 않았기에 두려운 것일 뿐이라고 믿고 싶을 뿐이다.
정원 조정과 업무 배정이라는 중요한 변화의 과정에서 나는 무기력했다. 이미 정해진 판이 있는 듯했고, 나는 그 판 위에서 놀아난 한 개의 게임말일뿐이었다. 상황이 어찌 되었든 일은 끊임없이 쳐내야만 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든 인수인계가 끝나고 코앞에 3월이 다가와버렸다. 원래부터 이상한 일 투성이인 곳에서 새삼스럽게 이상함을 느꼈고, 이성은 금방 찾았지만, 감정을 추스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충동은 어떤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찾아오는 것 같다. '어떤 것'이라 함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직장생활, 지나친 피곤함, 단조롭고 무기력한 마음 같은 것들이 아닐까. 2월의 나는 원치 않게 수동적이었고, 그래서 충동적이었다.
충동적으로 계획(충동과 계획이 이런 식으로 연결되어도 되는 건가)한 홍콩 여행은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위기를 맞았으나, 출발을 이틀 앞두고 여권이 발급되어 무사히 떠날 수 있었다. 그나마 한 번 다녀온 곳이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항공권과 숙소만 예약해 떠난 여행은 충동의 대가치고는 귀국길까지 아름다웠다. 어제는 퇴근을 15분 남기고 월급 루팡이 될 것임을 선언하고 들어간 항공사 홈페이지에서 항공권을 냅다 결제까지 해버렸다. 퇴근길에 남편에게 결제 내역을 전송했고, 못지않은 충동맨의 흔쾌한 ok에 나는 15분 만에 여행을 앞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마트에 갔다가 연둣빛 반질한 무를 발견하고는 뜬금없게 한 개를 사다 말랑하게 절여 무김치를 만들었다. 절이는 시간도 생각하지 않은 탓에 빨갛게 무치고 나니 어느새 새벽 한 시였다. 손가락에 마늘 냄새가 가시기도 전에 잠을 청하는 내 모습에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났다. 마늘 냄새 탓인가 찌뿌둥하게 일어난 후에는 아침 카페인은 자제하겠다는 다짐을 까맣게 잊고 텀블러에 콜드브루 원액을 콸콸 쏟아붓는 나를 발견했다. 그래, 이거라도 마셔야 그 이상한 곳에 또 나가지.
일에서 느낀 수동은 일이 아닌 순간의 충동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충동은 완벽한 능동성, 진정한 나의 욕구니까 귀 기울여야 했다. J와 P를 49대 51로 아슬하게 넘나드는 나는 치밀한 계획을 세울 때의 기쁨을 알고, 계획이 틀어질 때 찾아오는 통쾌함도 즐긴다. 모든 일은 이상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로 이미 이상하게 흘러간다. 밖에서 보면 그 속의 나도 그냥 이상한 사람 1일뿐이겠지. 이제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계획하고 무너지는 나로 돌아가자. 비집고 나오는 충동은 충동대로 두어 또 닥칠 수동의 괴로움을 이겨낼 무기로 삼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