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라 실패의 어머니였다.

쌓여가는 무기력 그리고 받을 수 없던 전화

by 김슬기






똑같은 하루는 계속 됐다.

매일매일 연습장에 나가고 몇 번 없는 시합에 목을 매었다.

수 십 개월이 지나고 해가 훌쩍훌쩍 넘어갔다.


가끔 얻는 사소한 성취와 셀 수없이 많은 낙담이 반복됐다.

분명 해낼 뻔했었는데.

언제 그런 적이 있었냐는 듯 멀어졌다.

가능성을 봤었는데 그 이상 가까워지지를 않았다.


그 기회를 놓치지만 않았더라면, 그 실수를 하지만 않았더라면..

그때를 놓쳐서 모두 망쳐버린 거 아닐까? 그리고 다신 닿을 수 없게 되는 거 아닐까?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문득문득 굳이 떠올랐다.


시간이 가고 경험이 쌓여갈수록 PGA의 벽은 더 높게 느껴졌다.

이럴 줄 알았다. 이래서 잘 모를 때 빨리 따내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느낄 것 같았다.


성취의 힘은 점점 약해져 갔고 실패의 힘은 더욱 강해졌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는데 나는 실패를 할수록 실패가 학습되는 것 같았다.

실패는 무섭다. 실패는 학습된다. 습관이 된다.


실패는 성장을 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과정이지만 지나치게 반복되면 그저 그 실패자체를 학습하게 해서

그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스포츠의 세계에서 나는 지는 역할을 맡은 사람인 것 같았다.

특별한 사람들을 돋보이게 해주는 역할도 누군가는 해야 할 텐데 그게 나인 것 같았다.

여러 조연 중 하나. 아니 어쩌면 등장인물 19번 정도?


그러다 어느 날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PGA 따는 것도 어려워하는 수준으로 앞으로 어떡하지?'

'이렇게 계속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들인 걸로 어떻게 PGA하나 아슬아슬하게 따낸다고 해서

이후에 있을 투어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PGA를 딴다고 돈이 나오는 건 아니다. 그 자격증만 가지고서 가만히 있는다고 돈을 벌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건 그저 우승을 하기까지의 과정에서 따라오는 것뿐인데. 수많은 우승을 하기 위한 정말 찰나의 과정일 뿐인데 난 그것도 이렇게 힘들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골프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나의 삶에서 골프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말 그대로 정말 삶 그 자체였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든 무조건 버티고 극복해 내야 하는 일이었다.


인생을 포기한다는 옵션이 오늘 학원에 갈까 말까처럼 있는 옵션은 아니니 내게 골프도 그랬다.

단 한 번도 '포기할까?'라는 생각을 떠올려 본 적이 없어서

매일 하던 일인 연습만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 생각하고

어느샌가 기대감도 사라진 것 같은 시합을 다니면서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스스로에 대한 무기력만 쌓여갔다.


비싼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분명 나는 좋아졌다.

꼭 배웠어야 하는 것을 배웠다. 그건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랬듯, 앞으로도 내가 삶을 살아나가는 데 요긴하게 쓸 무기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수많은 실패의 파도를 그걸로 모두 막아낼 순 없었다.

어쩌면 나의 부정이 학습으로 다듬어진 희망을 이겨버릴 만큼 강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 '언제까지 이런 걸로 연명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이 큰 비용을 들여가면서 배워야 할까?

남들은 이런 거 안 받고도 다 잘만 치는데 왜 난 이런 걸 받아도 고작 이 정도뿐인 걸까? 허리도 나아졌는데. 허리가 문제도 아니었던 거라면 그렇다는 건 이게 내 최선이라는 거 아닐까?'


비싼 트레이닝에 결과가 더 이상 나타나는 거 같지 않으니 그걸 지속하는 것도 부담이 됐다.

나는 그만한 투자를 받을 가치가 없는 상품인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카데미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고, 애정하는 사람들은 떠나기도 했다.

나 빼고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좋은 소식이 들리면 부러움과 자책이 동시에 느껴졌다.

기쁜 소식에도 순수하게 축하해주지 못할 때, 스스로가 증오스럽고 부끄러웠다.


나는 점점 고립되어 갔다.

괴로움을 잊게 해 주던 사람들마저 각자의 길을 찾아 다른 곳으로 떠났다.


밖으로 나오는 것조차 두려워졌고 그래서 일상적인 것들도 해낼 수 없었다.


숙소에 틀어박혀 전화도 받지 않았다.


프로님의 부재중 전화가 쌓였다. 그래도 받을 수 없었다. 옳지 않은 행동인 건 알지만 그 전화를 받는다고 내가 해낼 수 있는 게 없었다.


문자가 왔다. 몇 년 동안 함께 하면서 있던 일이 아니니 연락도 없이 연습장에 안 오는 것이 걱정이 돼 연거푸 전화를 하신 것 같았다.

최소한의 답장은 해드려야 될 것 같아서 짧게 문자로만 답장을 했다.



"프로님, 죄송해요. 저 연습장 못 나갈 것 같아요."



걱정 섞인 답장이 왔지만 더 이상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사실 사흘 뒤 그 해의 마지막 시합인 PGA테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왜인지 도저히 나가고 싶지 않았다. 끔찍하게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꾸역꾸역 훈련을 해놓고선 시합을 안 나가고 싶다니.


그땐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뭐가 그렇게 겁이 나는지 알지 못해 스스로를 괴롭혔는데

이젠 알겠다.


난 또 그 실패라는 파도를 맞는 것이 무서웠다.

어느새 나는 실패할 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여태껏 너무 많이 맞아봐서 그 파도를 맞고 흠뻑 젖은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이젠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무슨 기분을 느낄지, 무슨 생각을 할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쓸모없는 스스로를 느낄 나.

부모님께 울음을 참으면서 전화해야 할 나.

그런 내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고생했다고 할 부모님.

그 목소리를 듣고 괴로워할 나.

오는 전화마다 경기결과를 보고 오는 걸까 봐 모두의 전화를 피할 나.

똑같은 위로와 격려를 들어야 할 나.

축 처진 어깨로 돌아와 펑펑 눈물이 나 흘릴 나.


뻔하게 내게 일어날 고통스러운 일들을 알면서 경험하고 싶지가 않았다.



결국 협회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 회원번호 OOOO 김슬기인데요. PGA테스트 시합신청한 거 취소하려고요."



이미 시합이 코 앞이라 참가금도 돌려받을 수 없었지만 전화를 끊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내 인생처음이었다. 신청한 시합을 취소하는 경험. 그것도 시합을 코 앞에 두고 말이다.

프로님과도, 부모님께도 일언반구도 없이 이런 일을 벌였다.


이게 도망치는 거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버릇이 없다고 해도, 겁쟁이라고 손가락질해도 어쩔 수 없다.

우선 살려면 이렇게라도 해야 할 것 같아.



그때


내가 그 순간 제일 두려워하던 일이 일어났다.


제발 오지 않았으면 하던 전화.

거절할 수 없기 때문에 제발 걸려오지 않길 간절히 바랐던 그 전화.


무서우리만치 정확한 타이밍에 그 전화가 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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