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프로가 되게 해준 이야기

내가 짊어지고 있던 짐

by 김슬기






허리가 아프기 시작한 뒤로 허리에 대한 불편함을 늘 달고 살았었는데

언젠가부터 아프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줄어들더니

어느 날 '어? 그러고 보니 허리 아프다는 생각을 안 하고 있네?'라고 새삼 느꼈다.


아플까 봐 혹은 아파서 쓰던 신경들이 더 이상 쓰이지 않으니

확실히 삶과 훈련의 질이 높아졌다.


연습에만 몰입할 수 있었고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를 괴롭히던 하나의 문제가 차츰차츰 정리되어 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박사님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박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슬기는 스스로 부모님의 무게를 너무 무겁게 지고 있는 것 같네"



정말 큰 망치가 뒤통수를 때렸다.


나는 그 사실을 인지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한 두 번? 아니 세네 번? 꺼냈던 것 같긴 하다.

그리고 이모가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대해 나에게 이야기한 적도 있긴 하다.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감정을 느끼는가? 에 대해서도 부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내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이유는

이 모든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들 이 정도는 부모님 이야기를 할 테니까.

결국 내 내면 깊은 곳의 이야기를 꺼내다 보면 다 그럴 수밖에 없지. 그게 특별하다거나 내가 유난하게 그렇다는 생각은 전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이렇게 까지 내면의 대화는 누구와도 하지 않으니까.


이모가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대한 언급을 했을 때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식이 부모에게 잘하고 싶은 건 당연한 거니까. 그런 게 문제가 된다면 그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감정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내게 들이는 돈이 얼만데.

그런데도 내가 고작 이 수준이니 죄송하지 않을 수가 있나?

그 돈이 나한테 들지만 않았어도 우리 가족이 지금보다 훨씬 편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아니라, 조금만 더 자질이 있는 사람이기만 했었어도 이 서포트로 훨씬 나은 결과를 만들었을 텐데.

괜히 나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돈만 축나고. 그런 상황에서 어찌 죄송한 감정이 들지 않을 수가 있겠나.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



하지만 이건 내 생각이었다.

박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천천히 다시 생각해 보자니, 내 머릿속에서 여러 퍼즐들이 맞춰졌다.


내가 인지하고 있던 것보다 내 머릿속에서 부모님은 훨씬 큰 존재였다.


내 모든 이야기의 끝은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이 속상해하실까 봐

힘드실 테니까

실망하실까 봐

후회하실까 봐

미워하실까 봐


생각해 보니 그랬다.


전화를 걸었을 때 부모님이 전화를 받자마자 하는 "여보세요"의 톤에 따라 그날 내 기분이 달라졌다.

조금이라도 목소리가 좋지 않거나 낮으면 나도 모르게 나 때문인 것 같아 위축됐다.

밝게 이야기를 하거나, 왜 그러냐고 묻거나, 전화통화를 더 이어가거나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본론만 이야기하고 얼른 끊은 뒤에 머릿속에 수십 가지의 생각을 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꼭 전달해야 할 이야기 외엔 내 목소리를 더 들려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어떻게 지내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궁금하지도 않을 거고, 듣고 싶지도 않을 거라고.

그래서 점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쓸모없는. 손해만 안기는. 짐이며 골칫거리라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우리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결국 그 원인은 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면 우리 부모님은 조금 아니 많이 억울하실 것 같다.

부모님은 내가 실망스러운 성적을 냈다고, 돈을 많이 썼다고,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단 한 번도. 정말 단 한 번도 화를 내신 적이 없다.

부모님은 오히려 내 눈치를 보고, 걱정하고, 미안해하셨다.

언제나 묵묵히 기다려주셨다.


하지만 그래서 더 죄송했던 것 같다.

차라리 부모님이 다른 몇몇 부모님들처럼

왜 이따위로 밖에 못하냐고, 굶으라고, 때려치우라고 소리를 지르고 타박을 했다면

적어도 죄송스러워서 고통스러운 죄책감 같은 마음은 덜 들었을까?

되려 그 부모님들의 자녀들처럼 나도 대들고, 내가 더 짜증 난다고 소리 지르고, 밥 안 먹는다고 골프채를 던지고.

그랬을까?


부모님은 내가 시합이 끝나고 풀이 죽은 목소리로 전화를 하면

누구보다 속상할 건 나일 거라고 생각하셔서 안타까워하셨고,

울음을 꾹꾹 참고 전화를 하면 괜히 잘못말해 내가 더 슬퍼할까 봐 조심스러워하셨다.


그래서 내가 먼저 이야기하는 것들 외에 어떤 것도 묻지 못하신 채,



'수고했어. 얼른 밥 먹고 들어가서 푹 쉬어'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그런 모습에 나는 실망하셨기 때문에 일찍 전화를 끊으시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한숨소리를 들킬까 봐. 말해봐야 좋은 얘기 할 것도 없으니까.


지금 십수 년이 지나고 생각해 보자면 난 정말 피해망상 수준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내가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당시엔 의심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다.


박사님은 내가 얼마나 부모님을 자주, 많이 언급하는지 인지할 수 있도록 해주셨고

내가 사실 부모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 발자국 떨어져 볼 수 있도록 해주셨다.



그리고 내가 숨을 쉴 수 있게,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이야기.



"부모님이 맡고 계신 책임은 각자, 그러니까 엄마 아빠 스스로가 선택해서 지기로 하신 책임이란다."


"네가 선택을 억지로 종용할 수도 없고, 설사 그랬다고 하더라도 부모님처럼 어른이 온전히 너의 종용에 혹해 선택하신 건 아니야. 만약 슬기가 생각하는 것처럼 부모님이 그런 생각들을 하고 계신다면 부모님은 언제든지 너에게 그 짐을 더 이상 지지 않겠다고 결정하실 수 있어."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원해서, 선택해 가고자 하는 결정에 네가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는 거야.

그냥 감사한 마음. 딱 그 정도면 충분해."



그때까지 상담을 받으면서 울 뻔한 적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더 이상 '짜증 나는 울보'가 되고 싶지 않았기에 꾹꾹 참아왔었다.


그러나 이 날은 처음으로 선생님 앞에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이야기들이었다.


이 날의 이야기들은 내가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다르게 했다.

무거운 채무감을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고,

내가 자진해서 지고 있던 짐이 내게 얼마나 크게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는지 그제서야 새삼 깨닫게 됐다.


그렇다고 내가 이 날 이후 힘든 일 없이 승승장구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 날의 경험이 없었다면 난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몇 개월 뒤 나는

절대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 해의 마지막 시드 전에서 시드권을 따냈고,



프로가 됐다.



2011년. 만 18살의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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