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전화 안 받아서 연습 중인가 했어.
시합 곧이지? 준비는 잘 돼 가? 몸은 또 어떤지 궁금해서 전화했지~"
우려했던 대로 아빠 목소리를 듣자마자 목이 메어서 어떤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상태로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아빤 분명히 내가 울고 있음을 눈치챌 것이다.
"...."
"여보세요? 여보세요~"
"네"
"... 무슨 일 있어 딸?"
"아뇨."
"시합이 화요일이라고 했나?"
"......"
"아냐? 수요일인가?"
"..."
"... 딸, 왜 그래 무슨 일 있는 거야? 말을 해봐 아빠한테"
"아빠..."
"왜 그래"
아빠 목소리도 심각하게 바뀌었다.
" 저.. 시합.... 취소.. 했어요."
"취소했어? 왜, 몸이 어디가 안 좋은 거야?"
한참을 머뭇거리다 이야기를 꺼냈다. 무섭다고. 시합을 나가기가 무섭다고.
그리고 자꾸 나쁜 생각이 든다고.
내가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는 자체로 현상태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었다. 이대로 방치해 두면 이 파장이 점점 어떻게 번질지가 가장 두려웠다.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아빠는
낮은 목소리로 왜 진작에 말하지 않았냐며 짐 정리 다 되는대로 곧바로 본가로 내려오라고 하셨다.
시합을 취소했다는 사실을 알려드렸을 때 아빠의 실망이 섞인 목소리가 두려웠는데
아빤 그 이상 전혀 묻지 않으셨고 당장 집으로 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하휴.."
이래도 되는 건지.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되는 건지. 난 왜 이모양인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전화를 끊고 2분쯤 지났을까. 또 전화가 울렸다.
다시 아빠였다.
"아니 그러지 말고 그냥 당장 내려와. 오늘 출발하면 너무 늦을 테니까 오늘 대충 짐 싸서 일단 당장 집으로 와"
다음 날 바로 본가로 내려갔다. 프로님껜 문자 한 통만 남겼다.
정리해야 할 많은 것들을 내팽게쳐둔 채였다.
집으로 돌아가고 부모님은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골프에 관련된 이야기조차도 꺼내지 않으셨고 아주 일상적인 대화들로만 가득한
아주 평범한 날들을 보냈다.
그렇게 한 달을 마치 골프라는 단어가 금기어인마냥 보냈다.
아빤 거실 티비에 늘 틀어두시던 골프채널도 틀어두지 않으셨다. 물론 가끔 틀려져 있을 땐 내가 방으로 들어가기도 했지만.
그리고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무렵 아빠가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오셨다.
"딸, 딸은 어떻게 하고 싶어? 엄마 아빠는 다 괜찮으니까. 딸이 하고 싶은 대로 해"
우리 아빠 성격에 여태껏 참느라 힘드셨을 거다.
분명히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낼 때를 기다리신 거다. 그럼에도 내가 그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으니 물어보신 거겠지.
충분히 시간은 주셨다고 생각함에도 이 대화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서 애써 덮어두려 했고 어떤 결정도 내리기 두려웠기 때문이다.
떨어지지 않는 입을 힘겹게 열었다.
"아빠.. 아빠는 아빠가 보기에 내가 진짜 골프에 영 소질이 없다고 생각이 들어도 내가 계속하고 싶다고 하면 나 이거 시켜줄 수 있어요?"
질문을 마치고 왜인지 떨리는 마음으로 아빠의 대답을 기다렸다. 무슨 말이 나올까?
"아빤 우리 딸이 하고 싶은 거면 다 상관없어.
엄마도 아빠도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지원해 줄 거야. 네가 하고 싶다고 할 때까지."
나는 왜 저런 질문을 했을까? 물론 조금은 진심으로 궁금했을지도 모르지만 아버지의 대답을 예상 못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빠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안도한 것도 사실이다.
난 여전히 지지받고 있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진짜 묻고 싶었던 건 저게 아니었다.
'알고 보니 내가 진짜 소질이 없는 사람이었어도, 기대에 못 미치는 사람이어도
나를 계속해서 사랑해 줄 수 있어요?'
나는 훌륭한 딸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자랑스러운 딸.
그러지 못하면 미움받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될까 봐 의심한 걸까?
그렇게까지 힘들었다면서 왜 아빠의 질문에 골프를 그만두겠다고 말하지 않았냐고 묻는 다면
왜냐면 그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건 없다. 골프를 그만두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선택지였다.
그건 부모님의 노력, 부모님의 기대, 부모님의 시간 모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거니까.
가능하다면 이 길로 잘해서 보람을 드리고 싶었다. 그래야 모두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만 되면. 모두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
본가에서 머문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다시 아카데미로 돌아가 있던 내 짐을 완전히 정리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게 아카데미를 나왔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아카데미 생활이 단숨에 정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