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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lsim Sep 08. 2022

치유는 받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

100-5

살다 보면,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어떤 조각들이 하나로 이어질 때가 있다.


아무 연개성도 없이, 시간도 맥락도 맞지 않게, 내가 오래전 경험했거나 생각했던 것이 갑자기 다시 꺼내지고 확장되고 이어질 때가 있다.


오늘도 그런 경험을 했다.


취다선 내부엔 여러개의 차실이 있다.


엠비언트 음악을 작곡하고 공연하는 지인의 포스터 작업을 돕다가 우연히 알게 된 취다선. '나를 비추는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제주도의 '오조리'라는 지역에 자리를 잡은 명상 리조트. 차와 명상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곳은 '일소'라는 분과 그 가족들이 모두 명상과 차로 매일매일 스스로 수행하면서 운영하고 있는 치유의 공간이다.



취다선의 모든 방은 우도가 보이는 오션뷰다.


http://news.bbsi.co.kr/news/articleView.html?idxno=997869




'간삼여행'과 '취다선'이 함께 콜라보를 하여 'CORE'라는 주제로 1박 2일 명상 워크숍을 한다기에 신청을 하고 와서 두 브랜드가 생기게 된 스토리를 듣게 되었다.

호텔을 짓기 1년 전에 직원들을 그 지역에 살게 하여 지역 주민들의 삶과 숨은 고수들이 만든 각종 공예와 도구, 음식 등을 파악하게 한다는 건축회사. 그렇게 파악된 지역 주민들의 스토리를 실제 건축에 녹여서 로컬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지어진 미야코지마의 '로커스' 호텔이 롤모델이라는 간삼여행은 '지역 리스펙트'라는 철학을 담은 커뮤니티와 숙박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가진 회사였다.


https://okinawaclip.com/kr/detail/899





발표를 들으며 그들의 첫 시작이 될 김제에 생겨날 로컬 호텔이 무척 궁금해질 즈음, 마무리 영상으로 본인들의 생각을 공감해준 피아니스트가 있다며 '유키 구라모토의 시골길 라이브 콘서트 영상'을 공유해주었다.


https://youtu.be/YfVGtJY1inU


한 때는 오일장이 열렸던 큰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사람이 찾지 않는 김제시 죽산면에 사람들이 다시 찾아왔으면 좋겠다며 카페를 차리고 유튜버로 활동 중인 MBC PD '오느른'님. 그의 취지에 공감한 유키 구라모토가 공연을 선물하겠다며 먼저 연락이 왔다고 한다. 과거의 흔적만 남은 김제의 텅 빈 시골 골목 한가운데에 놓인 피아노 건반에 손을 얹은 유키 구라모토가 연주하기 시작한다.

 

내 몸을 돌보고 위로하고자 찾아간, 취다선의 아름다운 명상실에 피아노 곡이 울려 퍼진다.

...


아주 익숙한 멜로디. 심장이 뜨근해지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멜로디.


내가 어릴 적 가족들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마다 강박적으로 연주했던 그 곡. 영어를 모르지만 피아노 악보는 볼 줄 알았던 어린 나는 그 곡의 제목이 뭔지는 몰랐지만, 왠지 슬픔을 공감해주고 위로받는 느낌이 들어서 늘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같은 곡을 연주했었다.


고부갈등이 심하다 못해, 아무 말도 없이 어느 날 휑하니 떠나버린 할머니와 고모들이 머물던 방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엄마를 보던 날도, 삶의 무게를 견디기 힘든 날 술에 잔뜩 취해서 집으로 돌아온 아빠의 모습에 마음이 먹먹했던 날도,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어린 나의 마음이 찢기는 듯했던 순간마다 나는 눈물로 뿌옇게 가려진 악보를 연주하고 또 연주했다. 나처럼 가족들도 혹시 위로받지 않을까 싶어 계속 건반을 두들겼지만 가족 중 아무도 듣고 있지 않았던, 나 홀로 마음을 온전히 담아내어 스스로를 위로했던 그 곡.


'Meditation'


등잔 밑이 어둡다고 너무 익숙한 곡이라 제대로 곡의 이름을 확인한 적이 없었다. 그 때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 나는 이 곡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름도 모르는 곡을 치고 또 치던 고사리 손이 떠올라서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 어른이 된 내가 나를 다독이고 존중해주기 위하여 찾아온 공간에서 어렸던 내가 나를 다독이고 위로하던 곡을 듣는 것도 신기하지만, 곡의 이름이 '명상'이라니.




엉뚱하고 신기한 연결점을 발견하면서 동시에 나는 깨닫게 되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이미 나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존재였다는 것. 힘든 순간마다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해 피아노를 치던 나는 이미 스스로를 치유할 수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도, 명상과 음악은 나를 위로할 것이고 나와 함께 할 것이라는 묘한 확신이 느껴졌다. 명상과 음악은 이미 어릴 때부터 나와 함께 해오고 있었던 오랜 친구 같은 존재였구나.


태풍이 오기 직전, 일출을 보여준 오조리의 해안가. 말차 가루처럼 아름다웠다.


역시 'CORE'는 이미 내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 그저 보지 못하고 사용할 줄 몰랐을 뿐. 우연한 조각과 조각의 만남으로 인해 내 안의 치유력을 다시금 확인했다.



치유는 받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
내가 스스로 행하는 것.



치유는 누군가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고, 내가 스스로를 위해 행하는 것이구나.


매일 꾸준히 나의 몸 감각에 집중하고 체질에 맞는 음식과 차를 취식, 취음하고 충분히 자고 충분히 쉴 수 있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용하면서 이미 내 안에 존재하는 치유를 향해갈 수 있도록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


어린 내가 나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꾸준히 내가 나를 치유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느껴지는 오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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