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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Nov 20. 2023

여집합을 아시나요?

가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자유

    결혼 전 살던 동네는 서울 끝자락에 붙어있는 간신히 수도권이라 할 만한 곳이다. 그곳에서도 작은 점에 지나지 않을 동네에는 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간간이 한 대, 덜 간간이 한 대 다녔다. 친구들은 귀찮을 법도 한데 항상 함께 기다리며 초록 버스에 나를 태워 보냈다.

    이 동네에 대한 불편한 기억도 참 많다. 20대가 되어서는 그 불편함이 배가 되었는데 스무 살의 패기 어린 시절 새벽까지 술을 마시면 여지없이 택시를 타고 귀가해야만 했다. 귀가 시간의 압박 없이 노는 친구들을 보자 막차 시간을 확인해야만 하는 그 동네가 참 번거롭고 고지식하게 느껴졌다(때론 그 핑계로 첫차를 타고 귀가했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버스를 타고 다녀야만 하는 귀찮은 거리는 나만의 세계로 진입하는 터널이었다.

그 적당한 거리가 적당한 불편함과 함께 적당히 혼자되어도 될 이유를 만들어줬다. 초록 버스에 탑승하는 순간 '이제 조용해져도 된다'는 해제의 알람이 울렸다. 긴장을 놓고 차창 밖의 이미지에 시선을 떨궜다. 건물의 높이는 낮아지고 밀도는 옅어진다. 특별히 주의를 집중해서 볼만한 대상은 없다. 단지 드문드문 푸름이 시작되며 하늘거리는 논밭, 서서히 물감으로 번져가는 하늘, 거리를 가늠하기 어려운 곳에 홀로 서 있는 버드나무, 그리고 바람결에 실려 오는 계절의 향과 쿰쿰한 퇴비 냄새가 전부였다.

© unsplash

    버스에서 내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동시에 '이제 집이다.' 안도하며 무장해제 된다. 지금의 MBTI로 설명하기엔 너무 트렌디하고 가벼워 보이지만 나는 그 경계성이 어울리는 성향을 가졌다. 누군가의 전화 호출이 항상 반갑지만은 않고 때론 혼자 격리되고 싶을 때가 있다. 심지어 연차를 낸 남편과 하루 종일 함께 하다 보면 이유없이 더 피곤하다.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내 시간을 가지려는 행동이  to do list를 '클리어'하는 삶 같다는 그의 말은 귓전을 배회하다 이내 멀어진다. 결국 둘만의 시간에 굳이 책을 챙겨 나가며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려는 사람이 바로 나다.

<문득, 액자같았던 일상>

    혼자만의 시간 확보를 위해 일주일 치 약속을 상기하며 사나흘에 한 번 정도 만남이 되도록 조정한다. 주말은 되도록 가족과의 시간을 위해 빼놓는다면(자유부인 시간 확보 역시 별표 다섯 개) 주중에 두 번의 사적인 만남은 좀 피곤하다. 물론 오는 제의를 마다하진 않고 만남의 시간에는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발걸음에 오늘도 내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혼자만의 시간에 특별한 일을 하진 않는다. 계절 변화에 따른 옷장 정리, 쌍여있는 책장 정리를 하거나 도서관에서 아이들 책을 수북이 담아온다. 참 별 거없는 일상인데, 그 안에서 계절과 날씨의 변화를 감지하는 일상이 참 중요하다. 한번은 혼자 여행하며 솔잎에 맺힌 물방울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전망대로 바삐 움직이는 군중들 속에서 무심히 지나칠 아름다움을 찍자, 주변 어른들이 뭘 찍냐며 물었다. "아, 물방울이요."라고 말하자 헛헛한 웃음과 함께 우리는 나이 들어 그런 찰나를 보지 못한다며 그들은 다시 전망대라는 목표를 향해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사진첩에 이런 사진이 많다>   

    다소 고리타분한 동네가 나에게 준 선물이라면, 바쁜 하루에도 파란 하늘의 높이를 가늠해 보거나 얼굴을 때리는 매서운 바람을 상쾌히 맞는 것, 변화하는 나뭇잎 색을 감지하고 비에 젖은 흙냄새를 즐기게 해준 것들이다. 그런 것들은 켜켜이 쌓여 쓸모없어 보이는 일상을 조금 윤기 나게 만들어줬다. 그 윤기는 내 삶을 지탱해 주는 기름칠이다. 지난 계절을 배웅하고 새로 오는 계절을 맞이하며 나란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깨닫게 해주는 윤활제이다.

    사람은 누구나 고독을 원한다고 한다. 자발적 고립은 사색의 시간을 만들어 주고 나를 깊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선사해 준다. 주류에 속하는 삶도 좋지만, 때론 스스로를 고립하며 내 안의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만들려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은 절대 헛되지 않음을 해가 갈수록 더욱 확신한다.


여집합의 삶, 나쁘지만은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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