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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Apr 25. 2024

남길 수밖에 없어  애달프게 담아봤어요

     오늘도 변함없다. 다소 무감각한 감정 바구니 틈새로, 적막한 집에 라디오를 켜본다. 알맞게 읊조리는 봄날 같은 노래가 나오길 바라며 전원을 켰지만 과하게 밝은 광고가 울려 퍼진다. 볼륨을 다소 왼쪽으로 돌리고 창문 밖에 시선을 둔다. 잠시 멍하게 저 멀리 산등성이를 바라보던 눈은 미세먼지 알림을 확인하고 굼뜨게 창문을 열어젖힌다. 봄 향기가 자취를 감추고 드문드문 얇은 햇살이 눈살을 찌푸리는 오전, 소파에 가만히 걸터앉아 벽시계를 훑어본다. 열 시 언저리를 지나는 시곗바늘은 아마 금세 다리 사이를 벌려 나를 멈칫하게 하겠지.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커피 머신기는 고장 난 지 오래. 해야 할 목록 속, 지워지지 못한 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이어리에 적을 때조차 '꼭' 해야만 한다는 강제성을 부여하지 않아서인지 도통 해낼 의지가 없다. 고치면 잘한 일이고, 아님 뭐 한 번씩 '해야 하는데....'하는 감정을 느끼면 그만이니깐.

    아침 먹은 설거지가 물에 담긴 채 서로 아등바등 자리싸움을 하고 있고, 책상 위는 지난밤 우리 감정처럼 얼기설기 엮여 있다. 감정의 흔적만 남은 공간을 보는 건, 다시 한번 지난 후회를 상기시키고 우리의 복잡다단함을 눈에 담게 한다. 흔적이 쌓인다는 건 이런 것일까.

    내 글에도 나만 아는 흔적이 생기고 있다. 글을 썼을 때 들었던 노래, 개운치 못한 마음, 문장과 문단을 힘겹게 눌러가며 한 줄씩 늘려 갔던 고됨. 감정의 흔적이 보이자 조금 더 시큰한 마음이 생겨 버리고 말았다.


© unsplash


    내가 남기는 흔적.

발자취라 불리기엔 건설적인 못하고 성과가 없는 이 흔적을 어떤 태도로 바라봐야 할까. 그런데도 남긴 찰나의 용씀이라고 칭찬해야 할지, 길이 되지 못한 아쉬움을 채찍질 해야 할지 도통 기준이 서지 않는다. 자잘한 시간과 함께 남겨진 한, 두 문단의 글들이 쌓여감에 있어 마음속 폐지가 늘어가는 느낌이다. 이면지로 사용할 수도, 버릴 수도 없이 켜켜이 쌓아 두는 '무거운 마음의 가벼운 활자화'를 어느 카테고리에 넣어야 할까. 개운치 못한 애먼 시간을 붙잡아 활자로 남겨놓는 순간이 늘어가자, 서랍은 수북한 일기장이 되어버린다. 이것에 사적인 자물쇠를 걸어야 할지, 그럼에도 기록하는 게 옳은지 생각의 잣대가 갈팡질팡한다.  




    의미 없는 흔들거림은 없겠지만도, 일부러 이 감정에 도취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

글을 써서 생각이 많아지는 것인지, 답답한 생각에 꼬리를 물다 보니 글을 쓰는 것인지. 적당히 고립되고 사유하며 내 안의 흐트러진 감정을 주워 담고 그때의 공기를 덧붙인다. 이 글만의 냄새, 촉감, 속도를 더해 한 편의 생각을 정리한다. 흘러가는 순간을, 물러가는 기억을 기어이 상기시켜 활자의 상태로 남겨놓고 마는 행위, 이것은 마치 꼭 그래야만 한다는 집념의 결과일까.

    살짝 달뜬 기분에 마음이 알싸하다. 아랫배가 쪼이는 느낌과 함께 가슴 한구석이 콕 찍히며 깊은 숨을 들이쉬게 만드는 이 감정은 무엇일까. 글을 쓰며 첫사랑의 애달픈 마음이 든다는 것,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저 내뱉는 것 말고는 어쩌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지금 글쓰기를 이어가는 힘이자, 나아가지 못한 채 뒷걸음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저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마음을 기록하며 순간의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임을 인정한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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