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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Apr 02. 2024

부러운 손, 하나씩 갖고 계시죠?

    역시 그의 손길은 다르다. 적당히 부드럽게 움켜줬다가 풀었다가 한참을 헤집어 놓더니 어느새 달라졌다. 브랜드는 다르겠지만 하는 역할은 같은 기계를 갖고 똑같이 뱅글뱅글 돌리고 있다만 결과는 어찌 이리 다른지. 새삼 그의 손가락이 부럽다. 저 손, 갖고 싶다.




    요즘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손가락이라면 역시 자판 위에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춤을 추는 그것이겠지. 그저 자음과 모음을 순서대로 입력하는데, 그들의 빈 여백은 빼곡히 채워지고 있다. 커서가 비상등을 켜지 않는다. 정차 하지 않는다. 마치 신호 없는 뻥 뚫린 고속도로처럼 그저 손가락에 엑셀이 달린 듯 질주한다. 본능이란 이런 것이라며 무심히 나를 앞지른다.

© unsplash

    글 한 편을 쓰기 위해 사유의 시간이 길어야 하지만, 글과 씨름하는 시간이 더 길다. 내가 쓴 글을 몇 번이고 읽어 본다는 건 사실, 결말 아는 드라마를 의무감에 보는 느낌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어떤 문장으로 썼는지, 어디서 쉼표가 나오는지, 그 다음 문맥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다 알지만 읽고 또 읽으며 입에 맞게 고쳐보고, 맞춤법에 맞게 수정한다. 이쯤 되니 돌고 도는 쳇바퀴 속에 마무리가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글이 막히면 책으로 돌아간다. 읽고 싶어서 읽는다기보단, 차선으로 읽는 방법을 택한다는 게 더 맞다. 조금 변명이 가능한 동굴이랄까. 자신에게 속삭인다. '그래도 읽고 있잖아.'

읽기와 쓰기, 쓰기와 체력, 사유와 공상. 돌고 도는 생각의 굴레에 갇혀 제자리에 머무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때론 고단한 몸에 백기를 들기도 하지만, 사실 이런 적은 그리 많지 않다. 쓰기 싫은 감정에 갇혀 헤어 나오지 않고 있을 때가 더 많을 뿐. 무엇인가 쓸 수밖에 없는, 쓰지 않고서는 이 답답함을 어쩌지 못할 때는 차라리 쓰기가 편했다. 어떤 토로에 가까운 그 글은 해우소와 같았으니깐. 발설했다면 개운치 못했을 것이다. 말이 전해지며 덧붙여지는 왜곡에 편히 발 뻗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글은 달랐다. 쓰면 읽어야 했다. 머릿속 생각을 옮기며 단어로 명명된 감정은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지금 내 감정이 이런 단어구나, 이런 느낌을 풍기는 문장이구나.' 그리곤 지워버렸다. 혼자만의 해우소에 두서없이 써 내려간 글은 나라는 독자에게만 허용된 채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덧붙여진 왜곡 또한 없었다. 누군가에게 전해질 리 만무했으므로.




    글을 쓰며 글쓰기에 대한 생각은 되도록 피하려 했다. 하고 많은 주제 속에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는 한 바닥을 채울 만큼 생각이 많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감정들에 대해 고민하고 공유하고 싶었다. 보여줄 만한 주제 거리 그리고 인정받고 싶은 생각을 써 내려가고 싶은 겉멋이었으리라. 하지만 글을 쓰면 쓸수록 '왜 이렇게 쓰기 싫은지, 쓰긴 쓰는데 마음에 드는 글이 가능하기나 할는지, 대체 왜 이 끄적임을 지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들이 죽은 물고기처럼 표면 위로 떠 올랐다. 이 퀴퀴하고 불완전한 생각들이 떠오르자 이제는 이 주제가 아니라면 할 말이, 쓸 말이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연재하겠다던 주제에 맞는 글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4~5편에 해당하는 글을 더 써보려 했지만 터질듯한 쓰레기봉투에 욱여넣는 글이 될 것이 뻔했다. 힘을 줘가며 기어이 넣은 그 글은 담기지 못한 채 튀어 오르거나 어느 한 구석이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터졌으리라. 아쉽지만 연재를 마쳤다. 솔직한 마음으로 마쳤다기보단 그만뒀다. 더 이상 지속하지 못함을 인정하고 백기를 들었다. 잠시 한숨이 흘러나왔지만, 지속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변명을 고한다. 구질구질하게 끌고 갈 수조차 없었고, 그 감정을 복기하고 써 내려가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젠가 사유의 점들이 선이 되고, 하나의 그림으로 연결 되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 다시 새로운 연재를 시작해 보려 한다. 내 작은 조각배들이 정처 없이 부유하다 어느 한 곳을 향해 같이 항해할 때, 그 시기가 언제 올 지 모르겠으나, 아직은 아님을 알았다. 그리고 쉬운 마음으로 시작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독자와의 약속이거니와 자신에 대한 질책과 채찍이 뒤따르는 일이었다. 충분히 심사숙고해서 발설되어 덧붙여진 생각조차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때 다시 새로운 연재를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부러운 손가락을 마냥 지켜볼 수는 없으므로 드문드문 떠 오르는 생각들은 매거진을 통해 적어 나갈 것이다. 그 주기가 짧을 수도, 도통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작은 점들의 순간을 놓지 않고 찍어가다 보면 언젠가 선이 되겠지. 온전한 그림 앞에서 기가 죽을수도 있겠지만, 작은 점들을 찍어가며 내가 그림이 될 날을 따뜻하게 마중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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