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지친다. 자꾸만 쳐지고, 늪지에 발이라도 빠진 양 자꾸만 가라앉는 게 당최 나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나아가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어떤 목적지 설정도 되어있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걸어가려 했지만, 목표 없는 삶은 이내 의욕을 상실하고 만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데.'
이 시대 엄마의 삶이 그런 것인지, 마흔을 목전에 앞둔 삶이 그러한 것인지 모르겠다. 스무 살이 되면 자유의 날개를 달고 어디든 날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몸 안의 피는 커피와 술로 뒤바뀌고 청춘 드라마에서만 보던 설렘이 찾아오는 줄 알았다. 이제 내 인생은 12색 색연필로는 어림없지, 48색 각각의 색깔이 펼쳐지는 다이내믹함이 기다리는 줄 알았으니깐. 현실은 대입 초반, '다시 수능을 봐야 하나, 반수를 할까, 편입을 할까' 또 다른 고민의 연속이었고, 졸업 논문과 각종 실습으로 허덕이기 일쑤였다.
졸업하면 으레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그렇듯, 하이힐을 신고 커피를 손에 든 채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다니는 줄 알았다. 굳이 목에 있는 사원증을 앞으로 수그려 체크하고, 가까스로 닫히는 엘리베이터에서 운명의 상대가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을 줄 알았지, 뭐야. 현실은 어떠했냐고?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난 왜 이럴까, 적성을 다시 찾는 게 시간 낭비는 아닐까' 새로운 고민의 연속이었다. 그때는 모든 게 늦었다고 생각했다. 20살의 수능도, 26살의 이력서도, 29살의 이직도. 다 가능한 나이였는데, 그 출입문이 닫혔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 문을 닫아버린 건 내가 가진 편견이었는데.
이 모든 시련을 어찌저찌 겪고 지금은 글을 쓰고 있다.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살아가며 이제는 잔잔한 호수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글을 쓰고, 내 시간을 갖고 아이들을 키우고. 멀리서 보는 삶은 위와 같겠지만, 위에서 내려다본 내 운동화 코는 절대 그렇지 않다는 씁쓸함을 전해준다. 적당히 시꺼메지고 끈은 더러워지고, 제 모양보다 더 펑퍼짐해 진 운동화.
글을 쓰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더 나은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과 무언가를 이뤄내야 한다는 성취감의 그물에 걸려버렸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여기에 글 쓰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얹어내야만 네가 보내는 시간이 타당성을 갖게 될 거야.' 처음엔 오랜만에 느끼는 긴장감이 살짝 타이트한 청바지처럼 기분 좋은 스트레스를 주었다. 부러 자세를 고쳐 앉게 되고,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뿌듯함을 건네주었으니깐.
'어때, 매일 추리닝같은 삶을 살다가 핏 되는 청바지와 달라붙는 니트를 입은 느낌이. 삶이 조금 윤택해지고 보기 좋은 빛깔을 내뿜지 않니.' 새로운 활력에 발걸음이 통통거리고, 글쓰기 동기들의 매력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더 이상 느낄 수 없을 것 같던 소속감이 주는 활기가 이렇게 대단하다니, 새로 느낀 자극에 도파민이 분비되는 날들 이었다.
지금도 도파민에 취해있냐고 묻는다면, 이젠 그 열정에 내 부족함이 바닥을 보인다. 내 에너지는 그렇지 못한데.... 나는 자꾸만 어딘가로 들어가 버리고 싶은데.... 침잠하고 싶은 내가 이상한 걸까. 역시나 난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사람일까. 무엇을 하던 중도하차 해버리고 마는, 의지박약인가. 그들에게 습한 마음을 들키기 싫었다. 적당히 밝게 웃고 있다면 넘어갈 수 있을 듯 보였다. 다들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달려가는 모습을 보니, 같이 동조하는 게 이 모임의 분위기라 생각했다. 그러나 멀어지는 그들을 볼수록, 자꾸만 속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분명 같이 달리기 시작했는데, 내 걸음은 터덜터덜하더니 러닝머신의 스탑 버튼처럼 의욕을 잃어갔다. 앞서가는 이를 불평하는 게 아니다. 서로 잘 되어 이끌어 주자며 새로운 정보를 나누는 다독임이 고마웠다. 하지만 어느새 그조차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앞에서 휘날리는 초대장을 잡기만 하면 되는데, 머리 위 내려올 것만 같은,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종이가 바람을 타고 다시 날아가 버렸다. 저 높은 곳으로. 손에 닿을 수 없는 거리로.
이런 마음을 나누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에 물을 붓는 게 아닐지 생각이 많아졌다. 그러다 하나둘, 속도를 줄이고 자신만의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멈췄던 발걸음을 보며 한숨짓던 고개가 옆 사람을 보게 됐다. "힘들지? 사실, 나도 힘들어."라는 지친 얼굴은 내게 깊은 위로를 전해 주었고, 서로의 애씀을 말없이 바라보게 했다.
그동안 지나온 출발선이 아득히 멀어진 줄도 모르고 보이지도 않는 결승선만 애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끝이 아닌 줄 알면서도 구멍 난 신발을 신고 전력 질주하고 있었다. 내 체력, 내 신발의 성능, 내 심장박동은 무시한 채 다른 사람의 뒷모습만 쫓고 있었다. 그들이 페이스 러너가 될 순 있지만, 뛰어야겠다는 의지는 내가 마음먹어여만 가능했다. 좋은 시류에 휩쓸리면 어디든 나은 곳에 도착할 것이란 믿음은 부유물만큼 가볍다는 것을 간과한 채 분위기에 취했었다. 이제는 알겠다. 우리는 전력 질주하기 위해 만난 것이 아니란 사실을. 서로가 달리다 옆을 보기 위해 만났음을. 터덜한 발걸음에 어깨 한번 토닥여주고, 보폭 맞추며 얘기 나누고,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 위해, 가슴 한편을 나누기 위해 만났다는 것을.
그렇게 오늘도 온라인 토닥 모임에 모여 안부를 전하고, 같은 감정을 느끼고, 슬픔의 눈물을 나눈다. 그런대로 이런 삶도 괜찮다는 위로를 전해 받다 보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진정한 마음을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놀랄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이곳을 방문한다.
안녕하세요, 온라인 토닥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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