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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Dec 01. 2023

똥 좀 그만 치우고 싶다고요.

니가 싸고 내가 치운다

    연년생 두 아이가 모두 기저귀를 하던 시절, 정말 똥만 치우다 하루가 다 가는 기념비적인 날들의 연속이었다. 파란 쓰레기봉투는 20개가 넘는 기저귀로 꽉꽉 채워졌는데 때론 새로 배설된 기저귀를 넣다가 그 냄새에 내가 취할 정도였다. 이제 그만 기저귀에 안녕을 고해야겠다며 대소변 가리기를 할 때는 우리 집이 사람의 '식'을 해결하는 곳인지, 고속도로 간이화장실인지 모를 만큼 곳곳에 지린내가 도포되었다. 이렇다 보니 아이들이 싸지른 똥만 치우다 하루가 다 간다고 저물어 가는 해를 보며 넋두리할 만도 했다. 똥오줌만 가려도 잃어버린 시간의 절반은 찾겠다 싶은 마음에 '언제 크려나, 언제 크려나'를 입에 달고 살았다.




    학령기에 들어서는 혼자서 똥 좀 닦고 나왔으면, 제발 화장실에서 '엄마!' 소리 좀 그만 들었으면 싶은 나날이다. 그놈의 '엄마!'소리는 안방 화장실, 거실 화장실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동시다발적으로 울리는데 같이 먹으면 소화 시간도 같은 것인지, 쌍둥이에 버금가는 장내 유전자를 가진 것인지 이쪽저쪽 엉덩이와 까꿍 하다 하루가 다 가는 중이다. 주기적으로 "슈퍼히어로의 똥 닦는 법"이란 그림책을 빌려오며 똥을 닦을 때는 몇 칸을 뜯으면 되는지, 어떻게 고이 접어 손에 안 뭍힐 수 있는지, 끝처리후 손은 얼마나 꼼꼼히 닦아줘야 하는지 아무리 알려줘봤자 오늘도 설거지하던 고무장갑을 벗어 던지고 그의 살색 협곡을 마주하러 간다.




    아이의 하교 시간이 가까워지자 여느 날처럼 하이클래스 알림이 울린다. 아마 오늘의 급식 사진이나 알림장 또는 주간 학습 계획표가 올려졌을 것이다. 아니면 수업 사진이라도 올려졌나 눈동자만 스윽 흘겨 보니 뭔가 이상하다. 짧은 알림이 아닌 장문의 글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심장박동이 높아지며 얼른 얼굴을 들이밀고 잠금을 해제한다.

'....이게 뭐야....?' 순간 가슴이 쿵, 하며 읽어 내려간 내용은 담임선생님의 당부 말씀이었다. 내용인즉슨 아이들끼리 블록을 가지고 놀던 중 여자친구의 발이 바다를 쳤고, 화가 난 바다가 던진 블록에 옆에 있던 다른 아이가 맞아 이마에 멍이 들었단다. 당사자 둘은 오해를 풀고, 던진 블록에 이마를 다친 아이에게는 사과를 하였으니, 집에서도 주의 부탁드린다는 말이었다. 그 짧은 초단편 에세이를 읽고, 또 읽고 또 읽었다. 아뿔싸, 이게 무슨 일이야. 곧바로 "아무리 화가 나도 블럭을 던진 것은 잘못된 행동이니 하교 후 따끔히 얘기 나누겠다."는 답장을 보내고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남편은 일단 하교 후 어찌 된 일인지 잘 얘기해 봐라 했지만 이미 난 '이따 만나기만 해봐라!'라며 어깨가 들썩거렸다. 순간 네가 싼 똥을 왜 내가 치워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하다 하다 이런 뒤처리도 해야 하나며 새로 추가 된 나의 매뉴얼에 한숨이 나왔다.


하이클래스 알림, 그 중 하이톡 알림이 오면 왠지 무섭다

    

    "안녕하세요, 바다 엄마입니다. ㅇㅇ이 엄마 맞으실까요? 시간 괜찮으시면 통화 가능하세요? 오늘 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직 아이를 만나지 못해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정말 죄송합니다."라며 사죄의 말씀을 올렸다. 괜찮다, 그럴 수 있다며ㅇㅇ이에게 바다 얘기 종종 들었다며 친하게 지내는 것 같다고 마음을 풀어주셨다. 본인이 알기에 바다는 절대 그런 행동을 할 아이가 아니여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게 바다가 맞나,라는 생각까지 하셨다는 말씀을 덧붙여 주셨다. 한 번 더 죄송하다 말씀드리고 교문 앞에서 결연하게 기다리는데 죄송한 어머님을 다시 마주친 게 아닌가.

얼굴을 뵈니 죄송한 마음이 거듭 올라왔고, 이쁜 딸 얼굴에 상처라도 나면 어쩌냐며 사과를 굴비 엮듯 줄줄이 읍소하기 바빴다. 먼발치 겸연쩍어하며 괜스레 먼 산 한번 바라보며 오는 바다의 뒤통수를 부여잡아 직접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도록 하고 모자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집을 향해 걸었다.


화가 난 나와 뒤에서 따라오는 너

    

    영유아기 아이의 똥을 직접 닦아주는 육체적인 수고가 한결 가벼웠다. 학령기에 접어들어 아이가 마주한 현실에서의 뒤처리는 감정을 동반하고 내가 대신 해줄 수 없는 일도 많았다. 이 역시 아이 스스로 독립해가는 과정인 듯 오늘도 '이런 상황일 때는 어떤 행동이 적절할까'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아이의 변명이 들리기도 하고 때론 내가 놓친 상처받은 마음이 들리기도 하지만 여럿이 함께 하는 공동체 삶을 살기에 그 안에서 피해주지 않는 방법과 방어하는 방법을 늘 상기시켜줘야 한다. 슈퍼 히어로의 똥 닦는 법처럼 최대한 자세히, 다정하게.


    

    아이를 키우다 보니 개개인의 삶도 중요하지만, 가족이 우선이 된다. 누군가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기쁘게 축하해 준다. 또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는 대신 아프고 싶은 감정까지 들게 하는 게 가족이다. 이제는 '누가'라는 주어보다 우리가 함께 '어떻게' 헤쳐갈 것인지 연대감을 느끼며 우리 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바라보게 된다. 개인의 모자름은 다른 이가 채워주며 상호 보완하게 되는데 아이들이 어려서 부모의 돌봄이 많이 필요해 보이지만 그들로 인해 어른의 성장을 도모하게 되는 것이 더 크다. 이 작고 조그만 근심덩어리들이 없었다면 과연 내가 어제보다 오늘 더 성장할 수 있었을까? 꼬맹이들이 찹쌀떡 같은 손을 건네주기에 마음 한 켠이 든든히 채워진다.


아들, 그래도 엄마 이제 똥은 그만 치우고 싶어.
끝처리까지 야무지게 하자. 아 쫌!  





메인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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