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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Nov 27. 2023

며느리는 딸이 될 수 있을까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공생 관계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몇 안 되는 관계들이 있는데 그 중에 탑 오브 탑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이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우연을 넘어 필연적인 관계를 이어가는 그들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며느리에게 딸 노릇을 바라지 말라는 말이 이해 되다가도 모녀 사이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은 지점이 생기기 마련이다.



   시어머니가 기세등등 서슬 퍼런 안방마님일 시절, 어디 그녀의 주방을 함부로 평하고 군림하겠는가. 국이 싱거우니 간을 맞추라는 말에도 '소금을 넣을까 간장을 넣을까. 국간장을 넣어야 하는데 국간장의 부캐는 왜 이리 많아 또다시 나를 시험대에 올리나.' 애증의 눈빛을 발사할 수 밖에 없다. 또한 마무리로 기름 한 방울을 넣으라는 명이 떨어지면 이놈의 갈색 소주병은 노란 뚜껑이 참기름인지 빨간 뚜껑이 참기름인지 헷갈리는 찰나, 냄새만으로 척척 한 바퀴 휘리릭 두르는 큰 손의 장군님은 역시 따라갈 수가 없다. (기름집 사장님, 제발 뚜껑 색깔 국룰로 지정해 주세요.그래서 참기름, 무슨 색입니까?) 고생하는 아들을 위한 차린 것 없는 한상은 식욕 떠난 남편의 입맛을 귀향시켜 주고 지금까지 며느리가 해 먹인 밥은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의 공허함만 간신히 메꿔줬나 싶을 뿐이다.



    이런 안방마님이 집안일에 대한 열의가 사그라들어 남이 해준 밥만 먹으려 할 때쯤, 지난 세월에 대한 경험치가 쌓인 며느리는 경력직의 시니컬하고 무덤덤한 표정이 덧입혀진다. 이때부터 존댓말과 반말이 섞인, 어느 나라 어법인지 모를 나무라는 투의 끝말 어미 실종 사건이 시작된다.

"아유, 어머니! 내가 언제 그랬어. 아휴 어머니는 참."

"밥 차려놨으니깐, 끼니 꼭 챙겨 드시고!"

"어머니! 어머니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 아들때문에 속상해서 그렇지! 난 어머니가 뭐라 하는 건 아무렇지도 않아!" 이렇듯 그들의 관계가 아니고서야 성립될 수 없는 특이한 문장구조의 대화들이 엮어진다.



    세월이 흘러 시어머니가 대학병원의 응급실을 드나들고 입원 생활이 간간이 이어질 즘, 그녀들은 더 이상 한 남자로 엮인 고부 사이가 아니다. 멀리 사는 딸보다 한집 사는 며느리가 더 가까워지는 새로운 가족 관계가 형성된다. 이들의 관계는 무엇일까. 피를 나눈 사이도 아닌데 어느덧 핏줄보다 더 강한 유대관계를 맺는 것은 그녀들이 '여자'라서 가능할까, 아니면 나이 든 그녀 또한 며느리였던 시절이 있었고, 젊은 그녀 역시 시어머니가 될 자리에 있기 때문일까. 그렇게 미워하고 속상하고 힘들어하던 관계는 이제 아들이자 남편의 역할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다. 무뚝뚝한 아들보다 같은 처지에서 늙어가는 며느리에게 속을 쉽게 터놓고 며느리는 그 마음이 못내 이해되기 시작한다. 나이 든 아들은 속상해서 소리부터 지르지만, 며느리는 그런 남편을 흘깃하며 시어머니의 심신 안정을 위해 미지근하게 데운 매실차를 타온다.


© pixabay

    시어머니가 쇠약해질수록 며느리는 집 밖을 떠나는 게 어렵고 때론 보이지 않는 자물쇠가 있는 듯 집이 감옥 같다. 오랜만에 부부 내외가 자녀들과 여행을 떠나 집이라도 비우게 되면 늙은 그녀의 온몸은 심기 불편함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가령 멀쩡하던 방광이 오줌소태에 걸리기도 하고 멀쩡히 보던 대변은 화장실 문지방을 넘지도 못하고 주르륵 주르륵 흘러내린다. 며느리가 눈에 안 보이는 시간이 불안하고 두근거려 견딜 수가 없고, 없던 체기도 도로 생길 지경이다. 이런 시어머니를 더 이상 모른 체 할 수 없는 며느리는 여행 내내 불편한 마음을 보따리처럼 짊어지고 다니다 이른 걸음을 보챌 수밖에 없다. 집에 와 대신 보필해 주던 늙은 시어머니의 딸을 마주하면 어디 멀리 호화여행이라도 다녀온 듯 마음이 제 발 저려 절절거리는게 이 집안 며느리다.

늙은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보자 그간 내가 얼마나 사경을 헤매다 죽을 고개를 넘겼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호통섞인 투정을 부린다. 그런 그녀를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넉넉히 받아주다 이내 마음이 안쓰러워 이불을 덮어준다.

    본인이라고 저러고 싶을까, 병원을 제 집처럼 다녀올 때마다 하루하루 늙어가는 시어머니를 보며 인류에 대한 고찰과 함께 그녀의 과거를 한 겹 한 겹 용서해 준다. 이제는 한 여인의 애달픈 삶의 여정을 바라보며 그녀에게도 들이닥칠 미래를 숙연히 마주해 본다. '나는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인생사 새옹지마. 내 뜻대로 되는 일이 무엇하나 있으랴 싶어 씁쓸해지기만 할 뿐이다.

 

© pixabay

    입원실의 할머니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역시, 딸이 있어야 노년이 편해. 할머니, 딸이 최고죠? 딸이니깐 하지, 누가 이렇게 밤새가며 간호해?"

노년의 쇠약한 여자는 미소를 머금고 말한다.

"딸 아니고 며느리, 우리 며느리예요."

주변 할머니들은 요즘 같은 세상에 저런 며느리가 어디 있냐며, 할머니의 복 받은 인생을 부러워하기 여념 없다. 이에 며느리는 뒷모습으로 말한다.

'네, 제가 딸 입니다. 딸 이죠 이제.....'

많이 늙은 그녀와 조금 덜 늙은 그녀는 관계의 주어를 바꿔 그들의 남은 삶을 동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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