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음에 대하여.
세상만사 귀찮음을 무릅쓰고 행하는 일들이 천지일 텐데 나에게 특히 상위권에 랭킹 하는 것들이 있으니, 오늘은 그것들에 대한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나의 귀찮음 상위 랭킹>
-장봐서 밀프랩하기
-화장 지우기(화장 지우는 기계를 염원한 건 벌써 몇십 년이 되었다.)
-밥 먹고 바로 반찬 뚜껑 닫아 냉장고에 넣기
-정리한 물건 택배 신청하기
-샤워 말고 머리만 감기
-대출 만료가 다 되어가는 도서관 책 반납하기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는 스케일링과 부인과 검진
아이들을 후루룩 보내고 난 아침, 냉장고 문을 열어봤자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거의 없다. 하물며 계란프라이 먹고 싶어도 굳이 팬을 꺼내 기름을 두르고 계란을 깨고(계란 껍질을 바닥에 흘리지 않고 쓰레기봉투까지 안전하게 클리어해야 하는 귀찮음 역시 동반) 소금을 찹찹, 타지 않게 지켜보다 알맞게 뒤집어야 하는데! 바닥에 눌러 붙은 흰자가 깨끗이 뒤집힌 적이 몇 번이나 되었던가. 애들이 먹다 남긴 누룽지는 먹어야 하는지 버려야 되는지, 참 애매모호한 양으로 남기 일쑤고 괜히 밥통을 열었다 닫았다 생각만 하다 결국 참치캔 하나 따 아침을 먹는다. 물론 아침 '밥'을 이렇게 먹는다는 거지, 그 후 어제 먹다 남은 치킨, 과자와 빵, 귤 등을 먹다 보면 굳이 왜 '쌀'을 먹어야 했나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글을 쓰기 전엔 몇몇 군데 둘러 가며 장을 봤다. 고기는 단골 정육점에서, 냉동 수산물은 한살림으로, 채소와 과일은 유기농 야채 가게, 아이들 간식은 대형마트. 그러고 나선 식재료를 사자마자 본격적인 밀프랩에 들어갔다. 양파는 껍질째 씻어 껍질은 따로 말려두고 일일이 랩 포장을 했다. 계란은 산란날짜를 체크해두고 무는 쓰임새에 따라 다르게 잘라 소분시켰다. 멸치라도 사는 날엔 부지런히 똥을 빼고 보기 좋게 착착 냉동시켜 놓고 아이들 몸에 좋은 영양제는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자정이 되기 전에 잊지 않고 새벽 배송을 시켜 놓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배송 리스트에는 밀키트와 냉동 국이 빠지지 않았고 간식도 냉동 제품 위주로 가득 채웠다. 주문 목록을 보며 신선 재료가 부족하면 곧바로 미간에 주름이 잡히지만 '뭐 굶기지는 않으니'라며 애써 핸드폰을 엎어 놓았다.
밥을 먹으면 이 난리난 식탁을 언제 치울 것인가 또 한 번 고민의 시간이 된다. (글을 쓰다 보니 그 시간에 생각 없이 바로 치우면 될 것을.) '밥풀을 바로 치우지 않아 발바닥에 쩍 눌어붙으면 썩 개운치 않을 텐데, 지금 치울까? 아니야. 어느 정도 소화의 시간은 가져야지. 사람답게 잠시 미루자. 김치찌개 냄비는 지금 물에 담가 고춧가루 잔해가 말라붙지 않도록 할까? 아니야. 나의 거대한 팔뚝으로 닦다 보면 못 닦을 냄비가 어딨어. 팔뚝을 생각해.' 겉에서 보면 고요하지만, 내적으론 심오한 갈등을 겪으며 '순간의 할 일'은 소아과 진료 순번처럼 하염없이 밀려났다.
인생은 하루의 귀찮음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한 과업이다. 누군들 귀찮음을 택배 배송처럼 반가이 맞이할 순 없겠지만 미루고 미루다 보면 운동화 밑바닥에 눌러붙은 껌같이 하루가 끈적이게 된다. 이는 곧 건설적이지 못한 하루를 보냈다는 찝찝함까지 배가 되어 돌아왔다. (적어도 나의 경우엔)
가령 귀찮다는 이유로 인스턴트 식품만 찾으면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고, 운동화 신기를 멀리하면 헬스장에 얼굴 한 번 비치지 못하고 30일을 보냈다. 책 읽기를 머뭇거리면 읽는 속도가 주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책장은 포화상태이며 방바닥은 책 바닥이 되기 일쑤다. 경쾌하고 맑은소리로 '빨래가 다 되었으니 너는 널기만 해'라는 세탁기의 외침에 귀를 닫으면 꿉꿉한 냄새와 함께 한 번 더 돌려야 하는 물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머리보다 몸이 반 발 빨리 작동하면 되는 것을 우리는 자꾸 뇌와 협상테이블에 앉아 가당치도 않은 논리로 말꼬리를 잡는다. 어떻게 해서라도 뒤로 미루려는 꼼수를 부리며.
모처럼 약속이 잡혔을 땐 어떤가. 샤워를 할까, 머리만 감을까 지겹게 고민한다. 샤워는 어제 했는데 또 해야 하나, 머리만 감다가 티셔츠가 안 젖은 적이 있던가, '이럴 거면 차라리 샤워를 할 걸'하는 생각은 자연 섭리처럼 항상 뒤따랐다. (그럼에도 왜 매번 고민할까) 물기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에 터번을 두르고 썬크림을 바르며 또 생각한다. '아, 오늘 화장 지워야 하네.' 화장솜에 아이리무버와 세안용 리무버를 바르고 클렌징폼을 꼼꼼히 도포한 후 정성스레 물세례 끼얹기는 일반 세수와 그리 차이도 없는데 왜 할 때마다 귀찮음을 동반하는지 모를 일이다. 자그마치 20년 가까이 한결같다니. 이 정도면 내가 문젠가.
인생의 유통기한이 너무 길어서 때론 체감하지 못하기에 끝 없는 시공간으로 미루게 된다. 사실 우리에겐 당장 오늘일 수도 있는 마감 기한이 있는데 그 누구도 그리 믿지 않는다. 내 시간은 영원할 것처럼. 80이라는 물리적 나이 그 언저리가 결승점이라도 되는 듯이, 암묵적으로.
오늘의 귀찮음이 내일의 후회로 남지 않기 위해서 당장 행할 수 있는 '오늘의 할 일'은 무엇이 있을까. 매우 흔한 설정이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따뜻한 식사 준비를 할 수도 있고, 부모님을 찾아뵙고 차 한잔 나누며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수도 있다. "엄마, 기억나느냐고. 그때 내가 왜 울었는지 아느냐고." 못다한 이야기를 꺼내며 가슴 속 꼬마를 만날 수도,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을 다시 한 번 느낄 수도 있는 시간이리라.
아니면 내 물건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보낼 수도 있겠다. 남은 사람이 나를 기억할 수 있도록. 내 삶에서 조금 더 기억해 줬으면 하는 부분을 선물 포장처럼 고이 접어놓을 수도 있겠다. 사람이 거대하고 막막한 끝을 위해 정리 할 수도 있지만 내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할 일을 찾아 어슬렁거릴 수도 있다. 오늘의 귀찮음이 무겁게 내려앉지 앉도록 방수 옷에 물기 털 듯 털어야겠다. 그러고 나선 부지런히 기지개를 켜야지!
귀찮음! 무지개 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