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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Dec 05. 2023

이번 겨울방학 어떻게 하실 거예요?

너와의 하루가 부담스러워

    엄마가 되어 온종일 너와 함께한 시간은 '인간 탐구 생활'이었어. 통실하고 말랑하고 부들부들한 살갗을 마주하며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감탄하는 것은 내 일과 이자 사랑 그 자체였지. 따뜻한 고드름같이 흐르는 침에 보드라운 살갗 향이 더해지고 배꼽과 발가락의 꼬수운 냄새까지 뒤엉키면 이내 정신을 못 차렸어. 하루 종일 나만 바라보며 되도 않는 옹알이를 하는 너를 보고 있으면 내가 가진 위세에 의기양양 심취되었지. 

    우리 한때 이렇게 사랑했는데, 서로 없으면 못 살 만큼 뜨거운 눈맞춤을 나눴는데, 지금의 나는 돌아올 겨울이 몹시 두려워. 이전과는 다른 찐한 밀착의 시간 때문에.




    그동안 들어만 봤다. 초등학교 방학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선배 엄마들이 경험담을 늘어놓으면 어느새 몸을 테이블에 바짝 붙이고 허리는 곧게 세워 합장하는 자세로 경청하고 있었다. 수능을 앞둔 고3 집중력 저리 가라, 앞에 있는 몇 년 선배 맘의 말이 곧 내 아이의 겨울방학을 좌지우지할 것만 같았다. '어머, 웬일이야. 진짜? 하아. 어째. 정말? 그랬다고? 어떡해' 별 다른 얘기도 없이 맞장구만으로 모든 대화가 가능했다. 그렇게 걱정의 소용돌이가 한 차례 지나가자 새로운 근심거리만 가득 남았을 뿐이지만.

    

© unsplash


    여름은 그나마 휴가 계획도 있고 동네 물놀이장, 놀이터, 시원한 실내 체험을 다니다 보면 생각보다 한 달이 금방이란다. 방학이 끝날 즈음 이번 방학은 공부하나 하지 못했다며 다소 아쉽기도 하단다. 조금만 길었으면 1학기 복습에  2학기 교과서 맛도 좀 봤을 텐데.

    그런데 이 겨울방학이란 놈은 징글징글 무시무시해서 장장 두 달간 우리를 감옥에 가둔단다. 감정의 골이 깊어지려야 더는 깊어질 수 없을 만큼 진저리 치는 상황이 온다나. 칼바람 부는 놀이터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없고 내 새끼만 정처 없이 왔다 갔다 감기만 걸려 병수발 드는 일이 잦단다. 이럴 거면 집에 가만히라도 있던가. 그 에너지를 어쩌지 못해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집안을 돌아 다니면 엄마 눈에 그게 또 그렇게 거슬린다네. 이럴거면 책이라도 한 장 펼치고 연필이라도 잡든가. 이건 뭐 아무리 심심해도 또 공부할 정도의 심심함은 아니라며 세상 보지 못한 놀이를 창작하고 아래층 인터폰 울릴라 엄마 눈이 가자미가 된단다. 


<아파트 홍보판에 붙은 각종 겨울 방학 특강 전단지>


    그래서 그런가. 이미 교문 앞은 방학 특강 전단지 건네는 손길로 분주하고, 삼삼오오 모인 엄마들 대화 주제는 "이번 겨울방학 뭐 할 거예요? 특강 신청한 거 있어요?"가 되겠다. 기난긴 방학 동안 삼시세끼 차려주는 것도 힘든데 하루 종일 붙어 있어봤자 감정싸움만 할게 뻔하다. 이럴 거면 차라리 내보내는 게 낫다며 부지런히 지갑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한 학년 위로 진급하니 영어의 중요성이야 말해 뭐해, 슬슬 수학 학원도 다녀야 할 것 같아 알아보는 중이란다. 그 와중에 체력이 국력이니 운동도 빠질 수 없다. 특강을 넣으면 정규반을 지속할지, 빠지면 또 자리 보장이 안 된다는데 체육에 이만한 돈을 쓰는 게 맞나 생각이 많단다. 옆에 있던 나도 맞장구를 친다. "맞아요. 선수 시킬것도 아닌데." 그나마 아이가 소질이 보이면 기쁜 마음에 특강이라도 보낼 텐데 이게 또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어도 아닌 건 아닌지라 객관적 잣대로 평가하게 된다.

 



    결국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 아무리 촘촘한 특강 계획을 세울지라도 정작 다녀야 할 아이가 싫다면 이 무슨 소용이겠나. 1일 1스케쥴이상 소화하기 싫어하는 아이와 경험을 쌓아주고 싶은 초보 엄마는 오늘도 줄다리기 중이다. 경험을 해봐야 관심 있어 하는 분야, 재능있는 분야를 발견하고 전폭적이진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지원은 해줄 텐데. 부모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 주관 확고한 8살이다. 



    아이 나이였을 즘 나는 학원 하나 마음대로 다닐 수가 없었다. 엄마는 아빠의 얇고 반질반질한 노란 월급봉투 만으로 4남매의 교육비와 생활비를 모두 해결해야 했다. 자식이 많다 보니 하고 싶고 먹고 싶어해도 다 사줄 수가 없어 그 마음이 몹시 속상하셨단다. 그렇기에 우리는 학원 하나를 다니려 해도 걔 중에 우선순위를 정하고 얼마 정도 배울 것인지 항시 비교하며 선택해야 했다.

    그 시절과 지금을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풍요 속의 빈곤이 떠오른다. 전에는 일상에서 놀다 보면 알아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줄넘기, 축구, 종이접기, 클레이 등 '학원'이 아니면 스스로의 배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어야 '배울 수 있다'는 인식을 깔고 있는 아이들에게 '배움'은 자연스러움이 아닌 '학원'과 같은말이 되어버렸다. 배움에 대한 갈증과 채워지지 않는 고픔이 있어야 보다 확실한 습득이 가능할 텐데. 필요성과 동기를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넘쳐나는 특강이 아니라 적당한 결핍이 아닐지 생각해본다. 


오늘도 필요성을 못 느끼는 아이를 대신해 엄마만 분주한 마음으로 특강 전단지를 바라 본다. 


 그래서 겨울방학,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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