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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Dec 29. 2023

담배 부러트리면
금연 1일 차 인거죠?

행위에 대하여

    공부하는 행위

    공부를 하기에 앞서 어질러질 대로 어질러진 책상이 눈에 들어온다. 공부에 대한 예로써 이건 아닌 것 같다. 여기서 공부한다고? 넣었던 지식이 뇌 어느 부분으로 가야 할지 길을 잃고 다시 튕겨져 나올것만 같은데. 이대로는 안 되겠다. 그래, 책상 정리가 먼저지! 책상이라는 바위에 세력을 넓히는 '책 이끼'를 바닥에 내려놓고 그의 맨살을 오랜만에 직시한다. 매끈하게 클렌징 먼저 해주고 나니, 이제 좀 개운하다. 가뿐한 마음으로 고개를 돌리니 이젠 바닥에 아슬아슬 쌓여있는 아까의 '이끼'가 보이는 게 아닌가. 아, 내 삶도 인스타그램 속 사진처럼 보고 싶은 부분만 보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책 모서리에 찍히고 싶지 않다면 궁여지책으로 얼른 정리해야겠다. 

    간단히 여기저기 쑤셔 박는 정리 끝에 몇 종류의 책과 참고서를 가지런히 세우고 필통을 연다. 필통 안이 이렇게 새까맣게 색칠되어 있었나. 잘 깎아 놓은 연필심은 연필과 이단 분리 되어 나홀로 필통 안에 리듬체조 속 리본 돌리기를 하고 있고 지우개 가루와 뚜껑들은 뒹굴고 있다. 안되겠다. 화이트와 지우개, 연필, 각종 형광펜과 그립감 좋은 펜들을 꺼내고 2차 청소에 들어간다. 먼저 맞는 짝꿍 찾아주고, 제대로 나오는지 그림 그려가며 펜 똥을 치워본다. 화이트는 괜히 한번 주-욱 그려주고 가지런히 담고 나서야 이제 좀 할만하네. 그럼 스탑워치 켜놓고 스탠드 아래로 뒤통수를 들이밀어 볼까. 이제 시작- 하려니 하암, 입이 쩍쩍 갈라지는데. 잠시만 쉴까. 청소하는데 너무 애썼지, 뭐야.


    운동하는 행위

    운동의 8할은 아이템빨 아니겠는가. 운동을 시작하려니 마땅한 요가복이 없다. 요가복 검색을 하려 초록 창을 검색하니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에슬레져 룩이 있었나 싶다. 이왕 장만하는 거 몸매 보정은 물론이거니와 아무리 쭉쭉 늘려도 해지지 않는 고탄력이 필요하겠어. 그런데 색상이 왜 이렇게 많고 한 자리 숫자로 표기된 사이즈는 대체 어느 나라 말이야. 내 몸무게와 키에 맞는 운동복은 뭐를 사야 하지. 잠깐만, 또 우리가 퍼스널컬러라는 말은 들어봤잖아. 혼자 운동하는 것도 아니고 여럿이 모였는데 당최 어울리지도 않는 옷 색깔을 입고 시작하면 안 되니깐 색을 좀 찾아보려는데.. 그 색상에 맞는 사이즈는 또 품절이야? 하아, 운동하려 하니 갑자기 세상 모든 기운이 막아서는 것 같은데, 어째.. 품절이라는데 좀 기다려봐? 한두 푼도 아닌데 마음에는 들어야 할 거 아냐, 그럼 운동을... 다음달 부터 등록하면 되겠지?


    글쓰는 행위

    브런치에 당당히 합격해서 글 쓰는 '작가님' 호칭 듣는 사람인데 어디 감히 집에서 끄적이겠어. 잔잔한 BGM 좀 깔려주고 따뜻한 커피 향은 풍겨줘야 글 쓸 맛이 나지. 집에 틀어박혀 쓰는 글은 딱 전형적인 수도권 30평대 아파트 수준을 뛰어넘지 못할 것 같아 노트북을 챙겨 주섬주섬 나서지. 하지만 나가자마자 들고나온 노트북은 왜 이렇게 무겁고 또 오늘따라 한파주의보인가. 찬 바람에 몇 글자 적기 전부터 어깨는 움츠러들고 뭣 하러나와 이 고생인가 싶고. 그래도 나왔으니 집 캡슐커피로는 채워질 수 없는 스페셜한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여니, 세상에 이런 일들이 펼쳐지고 있네. 유혹의 제목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카톡 창 몇 개는 또 띄어놔야지. 그러다 끄적인 노트 한번 후루룩 펼쳐보고 나의 영감님을 접선하려는데 오늘따라 그분이 깜깜무소식이네. 뭐 자주 뵙진 못해 역시나 싶고, 애써 몇 글자 끄적이다 '그래, 식기 전에 맛있는 커피나 마시자' 하며 어느새 내 손엔 노트북 대신 핸드폰이 쥐어지지. 

음, 조금만 둘러볼까? 

© pixabay


    이상은 어려서 공부하던 모습부터 요즘 글쓰기와 운동에 임하는 자세를 적어본 것으로써 '나는 과연, 행동에 진실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다. 우리는 본질에 다가가는 삶을 살고 있는가. 공부, 운동, 글쓰기 모두 자신을 더 성장시키고 싶은,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이다. 삶의 뼈대이자 가치관에 해당하는 일에 대해 알맹이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아니, 알맹이에 쏙, 흡수되어 있었는가. 

    노트북이라도 펼치면 할 일의 90퍼센트는 한 듯한 착각을 받았다. 그리고 10퍼센트에 해당하는 일기 같은 에세이를 끄적이다 보면 뭐 그럭저럭 읽어줄 만한 글이 한 페이지 반을 차지했다. 양에 만족하며 주목을 끌만한 이미지 찾기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자극적인 제목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에디터 픽에 한 번, daum에 한 번 올라 조회수라는 달콤한 선물을 받아볼까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애써 썼는데 많은 사람한테 읽히면 좋은 일이니깐. '내 행위'에 숫자라는 보상이 달리니깐. 조회수가 1000을 넘었다는 알림과 함께 몇 시간에 한 번씩 상승곡선의 순간을 알리는 사탕을 맛볼 때마다 승리의 미소가 곁들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롤러코스터의 가차 없는 내리막길을 내달릴 때는 상승보다 더 아찔한 가속도가 붙어 다음 글감을 초조하게 찾아 헤매고 있었다. 빨리 발행해야 달콤함이 조금은 전이될 것만 같아서. 스쳐 가는 시선을 조금이라도 붙잡아 볼 아량으로.


   

     본질에 다가가지 못하는 보여주기식 글은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있다. 그리고 '픽' 된 글은 그렇게 와닿는 글감은 아니었다. 초보자의 행운에 지나지 않을 우연으로 별 사심 없이 그리고 힘듦 없이 써 내려간 글이 많은 사람에게 읽혔다. 사실 힘들게 나를 마주하며 써내려 간 글은 '서랍 속 팀장님을 마주하다'이며 '여집합을 아시나요?' 같은 글이 나라는 사람의 온도를 나타내는 글이다. 책을 읽다 보면 작가의 성향과 글이 읽히는 속도가 달랐는데 내 글은 어떤 색깔과 온도를 지녔을까. 작가의 의도와 바람이 온전히 독자에게 가 닿을 수 있는 행운이 과연 내게도 올까.

© unsplash

    그리고 하고 싶은 글쓰기와 대중에게 읽히는 글은 다르다는 괴리감이 나 같은 풋내기에게도 흘러들었다.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하는 지성인들은 오죽할까. 아는 게 많을수록, 하고 싶은 말이 많을수록, 경험이 다양할수록 그 괴리감에 고뇌하며 숙고하고 가장 대중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겠지. 

    오늘도 글을 쓰며 나를 들여다보고, 내 마음속 응축된 감정을 정제된 글로, 그러나 솔직한 글로 표현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쓰다 보면 반복된 행위 속 본질에 가까워지는 경험을 하게 되겠지. 글의 겹을 더할수록 겉치레를 한 겹씩 탈피하며 더 적확한 글로 나를 표현할 날이 오겠지. 그날을 꿈꾸며 오늘의 어리숙한 행위에 의미를 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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