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미다 Jan 09. 2024

사랑이라 쓰고, 빨래를 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랑은 곧 시간이다.

내가 그 사람을 또는 그 행위를 얼마나 사랑하고 애정하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는 기준. 바로 얼마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가다. 자고로 사람이 사랑하는 것에는 시간을 아끼지 않는 법. 돈은 없더라도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했기에. 시간을 나눈다는 것은 상대를 위한 징표였다. 지금 내가 시간을 할애하는 것들도 이런 이유로 내 마음을 받는 일들이겠지.


© unsplash


    그 사랑을 굳이 애먼 집안일에서 찾아보려 한다.

가령 '옷을 빨다'라는 일련의 행위 중 내가 가장 관심을 두는 일은 '널다'에 있다. 뭐 빨래라는 행동을 테트리스 조각처럼 쪼잔하게 나눠 생각하냐 할 수 있지만 이거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먼저 빨랫감을 나눠서 세탁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사람이 있다. 옷감별로 나눠 놓고, 웬만한 옷은 드라이를 맡기며 빨래 횟수를 최소화함으로써 옷감 손상에 신경이 곤두서는 사람. 그리고 다 헹궈진 빨랫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심히 경쾌한 알람 소리에 맞춰 즉각 문을 열어 환기해야 하는 사람. 빳빳한 빨랫감을 손 다림질하며 차곡차곡 정리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 쓰잘머리 없이 자잘하게 나눠 본 일련의 행위 중 나는 빨랫감을 탁탁, 꼭 두 번 털어 바람 통하는 베란다에 널어야 하는 사람에 해당되겠다.

    6분할 된 건조대에 '너는 위치'도 정해져 있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맨 위 칸은 양말, 속옷, 유치원에서 사용한 수건이(때론 이것만) 차지한다. 그 밑에는 외출복 바지와 내복 바지, 그 아래 세 번째 줄에 두 칸에 걸쳐 수건을 널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 수건은 무조건 두 줄에 널어 바람이 통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 별표 이백이십 개를 붙이고 싶다. 그리고 반대쪽도 이와 비슷한데 보통 수건을 널거나 옷걸이에 걸면 어깨 뽕이 자동 생성되는 니트류를 걸어 말린다. 나름 지조 있는 여잔데,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이렇게 널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의 눈에는 내 정리력이 보이지 않나보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왜 맨 아랫줄 그 넓디 넓은 명당자리에 양말이라는 사소함을 널고 있는 것인지. 남편이 한 일을 다시 행한다는 건 그에게 집안일이라는 감옥에 대한 자유를 주는 일이기에 답답함을 고이 접어 잇몸 어딘가로 집어삼킨다.

'음, 그럴 수 있지. 그렇지, 그럴 수 있고말고.'

© unsplash

  

    현재 내 마음이 향하는 곳. 그곳은 어디일까.

모두가 잠든 밤, 뜨끈한 잠의 유혹을 이기고 거실로 기어 나왔다. 뭐 누가 보면 계약금 받고 마감 날짜 조여오는 원고 작성이라도 하나 하겠지만, 내가 쓰는 글감은 '집안일, 그것도 빨래'에 해당하는 작디작은 조각이다. 아이들 방학이라는 시간에 치이며 잠시 베란다로 도피한 뒤 빨래를 널며 생각한 일을 이렇게 몇 글자로 남겨 놓은 이유. 오늘이라는 흘러가는 시간을 움켜쥐고 잠시 수다 떨고 싶기 때문이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2024년 1월 9일이 기억되지도, 남겨지지도 그리고 간직되지도 않기에. 내 빨래를 널면서도 글쓰기를 생각하는 하루를 보냈다는 작은 성의를 표시함으로써 너에 대한 마음을 전해보려 하는 것이다.

     작은 마음을 고이 포장해 소담히 표현하는 것. 그 소중한 공간에 온기 몇 줌을 넣고 살포시 쓰다듬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내 글에 온도가 생기고 음률이 생기고 여백이 생겼으면 좋겠다. 누군가도 이 글을 읽으며 애정하는 것들을 떠올리고 가벼운 미소가 띠어졌으면. 이렇게 사소한 것이라도 내 마음을 간지럽히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에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가 하루를 마감했으면 한다.


당신의 사소한 마음은 어느 쪽으로 기울여져 있나요?


매거진의 이전글 담배 부러트리면 금연 1일 차 인거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