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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Jan 24. 2024

가해자이자 피해자입니다.

    가족. 가족이 뭐길래. 가족이라는 이유로. 가족이니깐.

세상에 태어남과 동시에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겼다. 원하는 사람을 선택할 순 없지만 눈뜨자마자 내 가족이라니깐 그런 줄 알고 관계에 충실한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 어째, 알아갈수록 힘이 든다.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누군가에게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했다. 너무 친밀하기에 서로 그 선을 자주 넘으며 평생 가슴속에 떠나질 않을 상처를 주고도 '가족'이라는 명목하에 면죄부를 바랐다. "가족인데 이해 해야지, 가족끼리 이해 못 하면 누가 이해하겠니." 산산이 조각난 유리 조각에 햇살이 비쳐 프리즘을 통과한다. 날카롭고도 아름다운 빛은 이해심의 밴드를 요구하며 가족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만다. '그래, 남도 이해하고 넘어가는데 가족끼리 날 설 필요가 있나.'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로 숨을 참고 허들을 넘다 보면 내 발에 내가 넘어지는 결과가 나오기 마련이다. '이번 한 번만 넘어가면 다음 허들은 없을 거야, 드넒은 초원처럼 내 속도에 맞춰 달리기만 하면 될 거야' 하는 마음을 비웃듯이 보다 좁은 간격의 허들이 새로 만들어지곤 했다. 이내 숨 고를 시간도 없이 바로 나를 채찍질하며 아름다운 다리찢기를 해야 했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련과 고통을 뛰어넘어야 완벽한 가족이라는 있지도 않은 허상을 완성하게 될까.


© unplash


    필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태어나니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한집에 살고 계셨다. ㅁ자 모양의 한옥은 총 5칸의 방과 툇마루, 우물, 부엌이 있었고 좁은 쪽문을 통과해 나가면 가득 쌓인 연탄재 옆으로 화장실이 하나 있었다. 증조할머니, 할머니와 할아버지, 작은아버지 가족, 고모 가족 그리고 우리 가족이 각각 방 한 칸씩을 맡고 있었다. 결혼 임신 출산이 엇비슷하게 진행되다 보니 낳아 놓은 아이들은 제들끼리 알아서 놀며 유년 시절을 보냈고, 어른들은 회사로 나가 주머니를 두둑이 챙겨오기도, 밭으로 나가 농작물을 수확하기도 하며 애매한 도시와 촌 생활을 겹쳐가고 있었다. 우리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작은 방에서 자기 싫을 때면 할아버지 할머니 방으로 건너가 티비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곤 했다. 눈뜨면 누군가의 '집'으로 건너가 하루 종일 같이 놀았고, 같이 먹었고, 같이 잠들었다. 그러다 근교에 하나둘 주공아파트가 들어서자, 각자의 삶을 찾아 분가했다. 늙은 세 명의 어르신만 단출하게 살던 집은 '전원주택'이라는 명목하에 새로운 집이 되었고, 분가했던 큰댁(우리 가족)은 노부모를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10년 만에 합가했다. 분가했어도 주말마다 뻔질나게 드나들어야만 했던 할아버지 댁은 이젠 평일의 낮도 벗어날 수 없는 새로운 감옥이 되었다. 열다섯 살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사가 진행된 그곳에서 나는 끈질기고 집요한 가족의 관계에 대해 이유 없는 답답함을 꾹꾹 눌러야만 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옛말. 그 말은 우리 가족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한 다리 건너 떨어져 있는 남편 말에 따르면 공영방송의 주말드라마와 시트콤은 우리 집을 보고 각본을 썼나 싶다. 아니, 우리 집을 보고 썼다면 아침드라마가 더 적당했을까. 적나라하고도 염치없는 그들이 사는 세상. 그곳에서 오늘도 상처받고 쓰러져가면서도 끈끈하게 얽혀 있는 그들의 삶에 대해 하나하나 연재하려 한다. 그리고 이 글은 많은 사람들이 봐주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그 누구도 봐주지 않길 바라는 내 깊은 끄적임 임을 이실직고하며 사실적이고 예민한 글로 다음 편부터 찾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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