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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Jan 31. 2024

그의 인생을 건져주세요.

    그가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할까, 눈물을 흘려야 할까. 그의 등에는 아흔이 넘은 어머니가, 어깨에는 동갑의 아내가, 다리에는 4명의 자식이 매달려있다. 58년 개띠, 그의 삶을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겠지만 몇 개의 문장을 덧붙이자면 아래와 같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성실한 강과장의 삶을 살았고, 아흔의 고개를 넘고 있는 겁 많고 정정한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 자식 둘은 출가하고, 나머지 둘은 취준생이라는 오래된 명함을 차고 같은 집에 하숙 중이다. 아내는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고 평생을 전업주부로 살며 그림자처럼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에게는 2명의 손주가 있는데, 이것들이 없었다면 강과장의 노년에 웃음이 낄 여력이 있었을지 가늠하기 어렵겠다. 그의 성실성은 직장 생활에서 받아온 트로피들이 증명하고, 자녀들 학자금 지원금이 그의 능력을 대변한다. 모든 면에 정직하고 앞날을 내다보며 계획적인 삶을 사는 그에게 번듯한 직업군에 속하지 못한 자식들은 묵어가는 쌀과 같을까. 어디 가서 맛 좋은 쌀이라고 자랑하나 할 순 없지만 평생 먹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평생 짊어져야 하는 무게가 오늘따라 무거워 하늘 한 번 바라볼 수가 없다.

© unsplash


    그에게 또 다른 짐은 다름 아닌 형제다. 으레 가족 행사라 부를 일이 생기면 금전은 오롯이 그의 몫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상속세와 관련된 각종 세금을 내면서도 형제들의 손가락은 일절 도움이 되지 못했다. 동생들은 형이자 오빠인 그 하나만을 바라보며 홀로 남은 어머님을 반지르르 위로하기 바빴다. 상냥하고 가벼운 위로. 그것은 58년 개띠, 그가 할 수 없는 유일하고도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 하나. 홀로 남겨진 아흔의 노파를 모시는 사람은 변함없이 강과장이라는 것이다. 다른 자식들은 잠시 들려 손 한번 잡아주고 마음 한 번 쓰다듬어주면 자기 할 일은 다했다는 듯이 당당히 엉덩이 떼기 바빴다. 아, 일어난 엉덩이는 바로 현관으로 향하지 않았다. 부엌으로 가서 당연스레 끼니를 때우고 빈 그릇을 가지런히 떠넘기고 갔을 뿐.




    오늘도 그는 소일거리를 넘어 일사병과 혹한을 견디며 농사를 짓고 있다. 지금에야 날이 추워 딱히 할 일이 없지만 겨울을 제외한 봄 여름 가을, 그의 손톱은 흙 때가 껴묻어 온전할 수가 없다. 한숨의 담뱃재가 날아와 나일론 외투는 듬성듬성 구멍이 났고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은 그의 외로움과 퍽 닮았다. 열사병에 탈수증상이 와도 어느 동생 하나 도와주는 일이 없으며 노파는 자꾸 첫째 아들에게 각종 씨를 심어야 한다, 거둬야 한다, 밭을 갈아야 한다 등, 쉬질 못하게 만들었다. 노파의 딸은 가까이서 식당을 운영하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각종 채소와 고춧가루, 쌀은 거즘 첫째 아들의 노동력으로 만들어진 반찬이다. 게다가 남들은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으니, 그 가게에서 일하는 실제 노동력 또한 남자 형제들과 그의 아내들이라는 것이다. 더 기겁할 일은 가족이라는 명분으로 그들의 시간과 체력을 대가없이 저당잡히고 있다는 것, 세월은 그것을 모른척 눈 감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강과장은 통장 하나만 바라보며 세월을 견뎠다. 그의 지난 20년의 노력이 숫자로 나열되어 있었다. 그래, 아무리 힘들어도 통장 하나만 생각하며 그의 노후를, 자식들의 미래를 어렴풋하게나마 그려봤다. 하나하나 정리가 된다면 조금은 편히 눈 감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래, 이거면 되었다, 나의 인생아.

    시련이 없으면 인생이 아닐까. 그의 20년이 사라졌다. 마지막 남은 한 줄기 희망이 꺾여졌다. 숫자들이 백지가 되어 눈물로 놓였다. 누구의 잘못일까. 그는 또 거슬러 올라 자신을 자책하고 후회하고 슬픔을 목에 가둬 꾸역꾸역 집어삼킬 뿐이다.


    단지 성실했다.

    단지 책임감이 강했다.

    단지 부모님 말씀을 거역 없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보이지 않는 쇠사슬에 묶여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세상 사람들보다 단지, 너무 참을성이 깊었기에 그의 마음에 후회와 자책, 우울이 잠식되어 가고 있었다. 58년 개띠. 그 해에 태어난 게 잘못이었을까. 그는 개처럼 가족에 대한 충성심이 깊었다. 개처럼 사람 곁을 떠나질 못하고, 상처 받았음에도 가족을 버리지 못한 채 목줄에 묶여 열심히 울부짖고 있을 뿐이다. 그리곤 어제와 다름없이 가족의 울타리를 지켜내고 있다. 그의 삶이 너무 가여워 차마 가엽다고 말할 수조차 없는 이 기분. 오늘도 나는 눈물로 흘려보낼 뿐이다.


나의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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