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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Feb 07. 2024

케 세라 세라

넌 좋겠다, 만만디라.

    또 시작이다. 두 58년생은 오늘도 뻔히 보이는 결말의 드라마를 몇십 년째 답습하고 있다. 회차가 지나갈수록 연륜이라는 게 조금 묻었다면 이렇게 같을 수는 없을 텐데. 화가 나는 시점, 화를 내는 방법, 화를 다루는 방법까지 모든 것을 반복하고 있다.

남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집안에 자기 마음 알아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가족 모두 케세라세라, 긍정의 주문을 되뇌며 생각한 대로 사는 건지, 사는 대로 생각하는 건지. 그의 입장에서야 어쩜 하나같이 만만디일지 눈으로 화를 분출하지만, 58년 개띠 그녀에게 이딴 것쯤 암시롱도 안 한다.



   

     그녀가 이렇게 된 이유, 그렇지 않고서야 대가족 맏며느리의 삶을 버텨내지 못하기 때문 아닐까. 그녀라고 생각이 없고, 의견이 없고, 지조가 없을까. 그녀가 입 한번 벙끗하면 가족의 중심이 기우뚱, 모두 바짓가랑이 잡고 물에 빠지기 적당했다. 58년 개띠의 남자가 이 사실을 아는 건지, 오늘도 거칠게 몰아붙이며 암컷에게 짖고 있다. 씨디 플레이어의 되감기 버튼을 눌렀다가 다시 재생되는 그의 화를 그녀는 음소거 버튼을 누르며 잠시 다른 세상에 다녀온다. 자식들은 또 시작된 싸움의 재생을 리셋시키고 싶은 마음이지만 될 터가 있나. 그들이 나가는 수밖에.




    일흔을 바라보는 그녀에게는 동창생도, 많은 형제자매도 있지만 마음 터놓고 말하는 이는 같은 처지의 며느리 집단 뿐이다. 집성촌으로 시집온 아낙네들은 아지트에 모여 믹스커피 한 잔에 틀어막았던 화 꼭지를 틀어 콸콸 흘러넘치게 둔다.

"아니, 그게 내 탓이야? 왜 나한테 그래?"

억눌렀던 감정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도 상관없다. 다른 이의 얼룩진 감정이 더한 추임새를 넣어주기에 그녀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해소된다. 그녀에게 이런 시간이라도 없었으면 맏며느리의 직위는 애당초 때려치우고 과수원 밭으로 도망 갔으리라.



    그녀의 삶을 얘기할 때면 시할머니의 치매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시할머니, 시부모님, 가부장적 남편에 제 잘난줄 아는 4남매를 키우다 보니 내공이 커진 건지, 버틸 수없어 그릇이 커진 건지 모를 일이다.

"네가 내 돈 훔쳐 갔지? 못된 년."

"아줌마, 밥 차려주느라 고생이 많아. 고마워요."

오락가락하는 시할머니는 오늘도 똥을 짓무른 채 태평하게 앉아 손을 조물거리고 있다.

"할머니, 똥 쌌어? 아유, 이걸 이렇게 문대고 있으면 어떡해!"


시어머니는 똥 밭을 모른 척, 배추밭으로 도망칠 뿐이다. 쪼그라든 시할머니를 들쳐업고 화장실로 가는 건 며느리의 몫일 뿐. 수분이 다 빠진 늙은 오이지 같은 몸이라도 일어설 의지가 없는 몸을 들고 씻기는 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화장실에 앉혀서 온몸에 문질러진 똥을 닦다 보면 이 집안에 시집온 게 한이다, 한이야.

'그래도 어쩌랴, 내가 아니면 누가 이 늙어 빠진 여인네를 밥 주고 씻기랴' 한숨을 푹푹 쉬며 구석구석 닦아 뽀얀 속살을 드러내 준다.

    이런 그녀의 노력을 아는 건 멀리 사는 시할머니의 딸들이다. 조카며느리가 본인 엄마를 지극정성으로 모셔줘서(때론 본인이 할 일을 대신 해주고 있어서) 딸들은 전화선만치 먼 거리에서 자신의 표정과 몸짓을 숨기고 고마움을 전한다. "고모, 뭘 고마워. 모시고 사니깐 내가 해야지."라며 진심인지 거짓인지 모를 말을 남긴 채 내려놓은 전화기를 잠시 먹먹히 바라본다.  



    

    하지만 그녀가 아플 때는 어떤가. 이 집안의 어린 동물들은 서로 일 처리를 미루며 각자의 시간에 조그만 틈만 겨우 허용한다. 누가 아침밥을 할 것이며, 집 안에 있을 것인지. 할아버지의 과일 시중을 들고 증조할머니의 점심밥을 해결할 사람은 누구인지. 그러면서 틈틈이 위아래층 빨랫감을 정리하고(세탁, 건조, 정리의 모든 일련의 과정들) 끼니를 해결하고 "애미야" 부르는 소리에 서로 다른 새끼들이 대답하다 보면 하루 만에 정신적 탈진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하고 며느리 모임까지 참여하며 핏줄 하나 섞이지 않은 조상님들을 모시는 그녀를 보니, 삶이 이렇게 불쌍하고 처량하기가 그지 없다.

 

그녀를 위로해 주는 건 가족일까.

버틸 수 있는 힘은 과연 가족일까.


얹어진 밥숟가락의 무게가 이토록 무거웠더라면 과수원에 남았을 텐데. 자유로이 뛰어놀며 케세라세라 마음껏 외쳤을 텐데..... 그녀에게 작고 탐스러운 사과나무 한 그루를 선물하고 싶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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