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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Feb 14. 2024

어디선가 바람이 불고있다.

환기가 필요했다.


공간의 환기

마음의 환기

가족의 환기




    무엇이 더 위급하고 시급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단지 두통으로 전해졌을 뿐. 지금의 탁하고 정체돼 있고, 이유 모를 답답함을(때론 이유가 너무 분명하리만치 많아서 어느것을 먼저 손대야 할지 경중을 따질 수 없기도 했고) 배출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등지고 묶여 있었다. 숨을 쉬고, 밥을 먹고, 각자의 일터로 돌아갔지만, 마음은 가족의 말뚝에 묶여 누구 하나 생각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흐릿한 눈으로 혼탁한 마음을 들여다보려 했지만, 상대의 마음을 바라보기에는 내 정성이 부족했고, 그의 마음에 안개가 끼어 있었다. 다시 뒤돌아섰다.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것도 벅찼기에 안개 속으로 들어가기를 겁내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습하고 구중한 몸서림이 느껴질 것만 같았다. 같이 있고 싶지 않았다. 내 세계로 슬며시 침입해 오는 연기를 어떻게든 틀어막고 싶었다.




    결국 방문을 열고 나오는 것도, 안개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너와 내가 용기와 두려움을 안고 동시에 문을 열어야 가능했다. 시간을 두고 서로의 고통 속에서 뒤틀린 이후에 우리는 겨우 옆에 앉을 수 있었다. 마주 앉아 눈 맞춤을 하진 못했다. 고개 숙여 간간이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삼키는 너에게 취조의 눈길과 한숨을 내뱉었을 뿐. 너의 꽉 쥐어진 손을, 거무튀튀한 발을, 육중한 몸을 그저 내 눈에 담았다. 어떻게든 끌어 올려 주고 싶었지만, 곁에 앉아 있는 것. 거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너의 인생에 작은 인사를 건넸다. 네가 느끼기에 그게 인사였을지, 간섭이었을지, 취조였을지 모르겠지만. 내 어두운 마음은 가라앉히고 정제된 위로를 건네려 노력했다. 한 번씩 뒤틀어지는 생각의 조각들로 불순물이 가득 뒤엉켰지만, 다시 깊은숨을 고르고 너에게 맑은 언어를 전달하려 했다. 너의 입에서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존댓말이 흘러나왔을 때, 그 말은 나에게 바위가 되었다. 이 말을 들으려 했던 건 아니었는데. 바위가 되어 내려앉는 순간, 마음의 응어리가 산산조각이 되어 생채기를 냈다. 곧이어 눈앞에 안개가 자욱이 차올랐다.

    

© unsplash

 

   오늘도 우리는 마음속 돌멩이들을 건져 주며 작은 소통을 하고 있다. 눈에 보일지 모르겠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견디며 그의 마음에 돌무더기를 하나하나 걷어주고 있다. 몇 년이 걸릴 일인지, 결국 그 작은 돌이 다른 이에게 결석이 생기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되지만, 무덤덤하게 할 일을,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아니면 돌을 던지기만 할 뿐, 건져주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으므로.

    너의 삶에 작은 돌멩이들이 뿌려지지 않을 순 없겠지만 생각지 못한 바위가 떨어지지는 않길 바란다. 작은 돌멩이를 가족의 이름으로 하나하나 건져 줄 수는 있겠지만, 바위마저 바란다는 것은 너의 욕심이자, 배신일 것이다. 네 삶의 균형이 더해져 자신의 귀함을 알았으면 한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이젠 네가 그 어둠을 뚫고 우리 곁으로 한발 다가와 주길 바란다. 고립의 세계를 벗어나 고독의 세계로 들어오기를. 너의 두 발로, 두 손으로.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메마른 겨울을 벗어나, 한 줌의 희망이 섞인 온풍이 불고 있다. 아니, 그러길 바란다. 고요하고 답답한 이 순간에 열린 방문 틈새로 세상의 바람이 들어왔으면 한다. 그 바람이 우리의 한숨이 아니고 응원이기를. 용기이기를.

    우리의 문드러진 감정이 가라앉아 침전되었다. 얼마나 고요할지 모르겠다. 다시 누군가의 가벼운 한숨이 툭 더해진다면, 겨우 가라앉은 마음이 소용돌이칠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다 보니 조금은 따뜻한 바람이 불고 있는 듯 해, 마음이 가벼워진다. 


분명하다, 어디선가 환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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