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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Feb 28. 2024

닻과 돛

공생 관계인 그들을 관찰하다 슬픔이 차오른다.
무게를 던져주고 한 발짝 떨어져 나온 내 모습에.



    출가라는 번듯한 탈출구를 통과한 후 뒤를 돌아본다. 부모의 울타리 속 안정적인 불안함 속에 버둥거리는 그들이 보인다. 물어뜯을 기회만 엿보다가도 누구보다 서로 처한 상황을 이해하며 그들이 사는 방식을 터득한 90년대생들. 울타리 밖에서 보는 그들의 삶은 온실 속 화초의 아름다움 같다가도 이내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안정적인 집안에서 자라다 보면 때론 시련이 없기에, 더 강하게 뿌리내릴 수 없는 아이러니함이 들 때가 있다. 조금 더 책임감 없는 부모를 만났더라면 어쩔 수 없이 모진 세상에 적응하며 살았을까. 부모의 재력보단 책임감의 유리가 튼튼한 온실은 가족의 단란함과 함께 답답함을, 안주하는 삶을, 작은 것에 만족하는 삶을 가져왔다. 이것이 무슨 문제란 말인가 싶지만, 드넓은 세상을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는 삶은 결국 부모의 삶도, 자식의 삶도 서로의 뿌리를 뒤엉키게 할 뿐이었다. 부모 또한 자식에게 의지하는 것이 많았다. 노모를 모시며 사는 삶에서 자식은 믿을만한 보호자가 되기도 했다. 노모의 돌봄을 형제에게 부탁할 바에야 그들의 많은 자식 중 누구 하나에게 의지하는 것이 더 편하기도 했다. 형제들의 노모이지만 어느새 손주들이 보호자 역할을 맡는 일상이 더 이상 이상하지 않았다.




    같이 모시고 사는 사람의 고된 일상은 겪어 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아무리 말로 해봤자 24시간, 일주일, 한 달, 일 년으로 겪게 되는 시간 속에 그 짜증스럽게 힘든 일상은 구구절절 말하기가 너무나 치졸하기에. 때론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힘들었다. 생각해 봐라, 샤워 후 화장실에서 모든 옷을 갖춰 입고 나와야 하는 삶. 삶은 달걀 하나라도 먹으려면 간식을 드실 건지 물어보고 달걀 껍데기를 까서 대령하는 일. 음식을 먹다 말고 물 심부름을 대신하는 일. 그리고 그저 가만히 옆에 있기를 바라는 욕심까지. 어쩌면 젊은이들에게 가장 가혹한 일 아닐까, 내 옆에 있으며 나의 무서움을 너의 무료함으로 달래달란 이야기라니.

그래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온실 속에 갇혀 조금 더 모진 풍파를 겪지 못한 이유가.


© unsplash

    

    항해 하고 싶었다. 세상의 바다를 탐험하고 싶었다. 대서양을 건너고, 태평양을 건너며 때론 오디세우스의 모험을 몸으로 부딪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집 안 욕조에 담긴 물을 바라봤고, 티비 속 바다를 보며 대리만족했을 뿐이다. 서로 간의 보이지 않는 결속은 그들 모두를 팽팽히 묶어 서로에게 화살을 겨누기도 했다. 밖으로 향해야 할 에너지가 집 안에 모여 소용돌이치다 잠잠해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58년생 남자는 헝그리 정신을 운운했다. 나가봐서 세상의 풍파를 겪어봐야 얼마나 등 따시게 생활하는 줄 알 거라고. 세상은 전쟁이라고 했다. 본인만 답답할 뿐 집안 모두 자기 하나만 바라보며 매달려 있듯이 말하곤 했다. 아니라곤 못 하겠다. 실질적인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었으므로. 하지만 다시 묻고 싶다. 그래서, 집안의 전쟁은 보이지 않느냐고.




     자라 온 환경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역할에 너무 치우친 나머지 개인의 인생을 좀 더 자유롭게 살지 못한 후회와 탄식이랄까. 누군가 보기에는 철없는 이의 투쟁 정도이니라. 하지만 역시 묻고 싶다. 이와 같은 삶을 살아 본 적이 있느냐고. 치밀하고 촘촘한 유대관계 속 모든 생활을 공유하는 삶. 때론 귀를 닫고 눈을 가리고 입을 다물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다. 단칸방에서 나 홀로 먹는 라면 한 끼가 세상의 만찬이 되는 법도 있으니깐. 브래지어를 풀고 리모컨을 마음대로 조종하며 냄비째로 먹는 라면의 짜릿하고 후련한 맛. 그 작은 만찬을 부러워하는 상처 입은 하소연쯤이라고 해야 할까.

    알고 있다. 거친 모험의 항해 역시 정박할 부두가 있기에 더 아름답다는 사실을. 그래서 떠날 수 있음을.

이젠 90년생들에게 적당한 위로를 건네며 세상의 모험으로 안내하고 싶다. 조금더 도전적인 삶을 살며 네 인생에 고통스럽지만 짜릿한 빛줄기가 들어오기를. 개운하게 나아가는 너를 볼 수 있기를. 그리고 힘이 들 땐,  언제든 쉬어갈 넉넉한 부두가 기다린단 사실을. 

너의 항해를 조용히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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