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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Mar 11. 2024

저 그런 사람 아닌데요,

    내가 알지도 못하는, 생각지도 못한 옷을 입혀주며 나를 바라본다. 꽉 낀 구두에 짧은 미니스커트, 화려한 액세서리를 걸어주기도 하고, 때론 숨 막힐 듯 촘촘한 단추의 셔츠를 목까지 채우고 가디건과 재킷을 입혀주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지 않은 옷을 입을 때마다 '그런 사람 아닌데요.' 해봤자, 그들이 건네주는 차림새는 그닥 달라지지 않는다.

    지금껏 살아오며 '완벽주의자'라는 생각을 단연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완벽주의자라는 다섯 글자는 그 자체로 너무 촘촘해서 어금니에 치실넣기 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사실, 내가 보는 나는 '한량'에 가까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공상 여행을 떠났다가 그 일이 어이없게 재밌기도, 때론 하릴없이 힘들어서 잠을 청하기도 했으니깐. 그러다 까무룩 잠든 오전의 낮잠은 그 살랑거림이 갓난쟁이의 침 냄새처럼 달콤하게 시큰거려 깜짝 놀라 잠에서 깨기도 했다. 모두가 딱딱 들어맞는 레고 조립같은 생활을 영위해 가는데 나만 입가에 침을 머금고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카락과, 눈을 감고도 느껴지는 음영을 느껴도 되나 사치스러운 생각이 들어서.



 

    이전에 얘기한 그 답답하고도 평온한 시골의 집은 버스에 앉은 나를 작은 행복에 도취하게 만들었다. 버스 창문 틈새로 불어오는 바람이, 뜨끈하게도 끈적이는 그 바람이, 한여름 나에게만 맞춰진 선풍기 바람 같았다. 버스가 구불구불 지나칠 때마다 그림자의 음영이 바뀌어 새침한 마음속에 인생의 얄궂음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지하철보다 버스를 자주 이용하고 참 맘 편해했던 것 같다. 물론 버스를 타야지만 어디든 나갈 수 있는 지리적 외딴곳이었기도 했지만, 굳이 지하철 계단으로 빨려들어가지 않고 돌아가는 버스를 택했다. 한낮의 뜨거운 햇살을 맞고 싶기도 했고, 빗방울 들이치는 창문 너머 북새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망하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또한 맨 뒷자리에 앉으면 그 위용이 소풍 가는 버스 맨 뒷자리에서 느껴지는 인기와는 또 다른, 나만의 처량하고도 단절된 그 모습이 어딘가 스스로가 좀 멋져 보였던 것도 같다.


© unsplash


    그러면서도 집을 답답히 여기는 이 모순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도시 안의 작은 시골집을 참 많이 미워하면서도 그곳의 땅 냄새와 곧 터질듯한 꽃망울을 바라보곤 했다. 내 앞에 펼쳐진 그림이 이 소박하게 단정한 자연의 아름다움이서 눈길이 간 것인지, 내 마음이 그곳을 향해 있기에 반복되는 굴레를 지루하지 않게 소담히 담아봤던 것인지 모르겠다. 쨌든 나의 일부임을 알고 있지만 때론 그 타래를 끊어내고 자유로이 날아가는 방패연이 되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뭐 날아가다 찢기기도 하고 바로 푸르르 떨어지며 애꿎은 나무에 걸려 버둥거릴 수도 있겠지만, 뭐가 그리 답답한지 하늘을 참 많이도 올려다 봤다. 나는 절대 소박하게 지루한 이곳에 내 삶을 터 잡지 않으리라며.




    하지만 지나치게 세련됨은 몸 안에서 절로 거부했다. 누구나 경탄을 보내는 그 치밀하게 아름다움은 뭐가 그렇게 싫은지 내 옷은 아니라며 팔짝거리며 손사래 친다. 한 번 입어본들 그게 인이 박이는 것도 아닌데 몸부터 거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 유별나게 태생이 시골스럽다. 이런 성향은 내 지난 직업에서도 느껴졌다. 트렌디하게 살고 싶고 그 삶을 격하게 동경하면서 찾은 직업은 자꾸만 내 몸의 영양분을 빨아들이는 것만 같았다. 마음이 메말라가던 그 시절은 나의 뿌리를 찾아 심하게 안도하고 싶었다. 원래 있던 흙의 성분과 바람을 찾아야만 숨을 고르고 살 것만 같았다.




    아직도 내게 맞는 옷을 잘 모르겠다. 펑퍼짐하고 추레한 옷을 들이밀면 또 그게 그렇게 싫고, 지나치게 무겁고 화려한 재킷을 건네면 소스라치게 거부감이 들어 이 저울질 하는 마음에 나조차도 싫증이 날 때가 있다. 그래도 어쩌겠나. 봄비에 촉촉이 젖은 그 땅에 뿌리박혀 일렁거리고 살랑거리면서도 애꿎은 뿌리 탓을 하는 이 모순은 끝나지 않을 나의 영감이니.

    어떤 이가 들이미는 그 시선에 담대하게 그런 사람 아니라고 하고프다 만 생각지 못한 시선을 받으면 또 그게 그렇게 재밌기도, 나도 내 안의 그런 모습을 찾아보게도 되니 뜻밖의 숨은그림찾기 같기도 하다. 어디 그렇게 붙어있나 바위에 붙은 조개껍데기 찾듯이 내 안의 나를 샅샅이 뒤져 귀하게 꺼내보는 그 일이 인생의 달콤함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막대사탕 하나 입에 물고 어린아이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함 찾아봐야겠다.

내 안의 보물찾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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