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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Nov 23. 2017

#1 어중간.

31살 하루 일기

2017. 11. 23. 목


아침부터 무언가 억울하다.

새벽 3시. 얼떨결에 잠에서 깬 나는 다시 잠에 들지 못했다.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가? 수많은 물음들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이제 서른 하나 하지만 1달 하고 7일 후이면 서른둘이 될 예정이다. 어린 시절 꿈꿔왔던 나의 찬란한 삼십 대는 아직 찾아올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열 받는다.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했길래 이 새벽에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도 답하지 못하고 쩔쩔매며 식은땀을 흘리는지 생각할수록 열.받.는.다.


 상상력 하나만은 자신 있었던 나인데 어느 순간 머릿속이 탁해진 느낌이다. 뭐랄까? 아침마다 입는 흰색 와이셔츠를 다릴 때 쓰는 다리미로 뇌 주름을 쫙쫙 펴버린 느낌이랄까?

 천상 개구쟁이에 장난 좋아하고 농담도 잘 던지며 껄껄 웃던 내 모습은 온대 간데 없어지고 어느 순간 나는 흰색 와이셔츠를 즐겨 입으며 언제나 첫 번째 목 단추를 채우고 있다. 그렇게 의자에 앉아 잘 알지도 못하는 데이터를 이 해 하려고 노력하질 않나 온갖 종류의 책들을 읽어가며 나는 괜찮다고,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고 자위하고 있다. 그리고 서른한 살인지 서른두 살인지 어중간한 지금 난 분명 결핍을 느끼고 있다.

  

 일곱 살 때 나의 꿈이었던 타잔은 예쁜 여자 친구인 제인이 있었기에 내가 타잔이 되고 싶었던 건 분명 아니다. 그때 일곱 살 때의 나는 타잔에게 뭔지 모르는 강한 끌림을 받았다. 그땐 그 끌림이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밀림이라는 위험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은 강한 생명력과 동물들을 힘으로 지배하는 게 아닌 친구와 동료로서 함께 도우며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 나무덩굴을 이용하여 밀림을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는 모습에 그 당시 아버지의 엄한 가정교육을 받던 나에겐 일종의 쇼크였고, 해방감과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다.  
 

(물론 초등학교 들어가고 나서 선생님께 나의 꿈이라는 숙제를 검사받을 때 선생님은 날 조용히 불러 타잔은 안된다. 대통령이나 경찰 선생님 등 꿈이 아닌 직업을 선택하길 바라셨고, 시간이 다급했던 나는 성급하게 타잔이 아닌 군인을 꿈으로 정했다. 그 덕분에 난 꿈 하나는 분명하게 이뤘다. )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강인한 생명력, 의지와 열망이 지금 나에게 남아 있는가?

친구와 동료들과 협업, 협력이 아닌 독보적인 위치를 갈망했던 건 아닐까?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스스로 가고 있는가? 혹시 서른한 살과 서른두 살의 어느 어중간한 시점처럼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나의 내면의 목소리보다 타인의 목소리에 더욱 신경 쓰며 그들에게 맞추려고 하고 있지는 않는가?


이젠 딱딱하게 굳어져 있는 몸과 마음에 편안함을 선사하자.

그리고 조용히 속삭여보자.


혹시 또 어중간한 느낌이 들 경우 반드시 놓쳐버린

내 삶의 주도권을 나에게로 다시 되찾아 놓을 것.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배우는 거야. 저 사람의 방식과 내 방식이 같을 수는 없어. 하지만 우리는 제각기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길이고, 그게 바로 내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지.'
연금술사 중_ 파울로 코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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