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 Nov 29. 2017

#4 알은 절대 혼자 부화하지 않는다.

31살 하루 일기

나는 가끔 상담을 받는다.

그동안 나는 혼자 고뇌와 고독을 곱씹으며 스스로 알을 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생각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어느 날 난 내가 아닌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이상한 기분은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누구는 이것을 슬럼프라 부르고 어느 누군 장난식으로 배가 덜 고파서 그런다고 한다. 슬럼프든 배가 덜 고프든 나에겐 중요하지 않다. 분명한 건 이런 찜찜한 기분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나는 상담이라 부르고 컬러테라피라고 읽는다.

다양한 색을 통해 나의 심리상태를 알아보고 나의 잠재능력과 가능성을 알아보는 시간이다. 그리고 신기하게 교수님은 내가 고른 색의 조화를 보고 나의 마음 상태를 꿰뚫어 본다. 그래서 가끔 섬뜩하기도 하지만 섬뜩함 뒤에 오는 시원함은 나의 마음을 가볍게 해준다. 그리고 오늘 거의 한 달 만에 다시 상담을 했다.


  나의 심리가 변했듯 내가 고른 색도 역시 달라져 있었다.

오늘은 달라진 색 중 한 가지를 여기에 적어보고 싶다.

나는 아프다는 말을 못 한다. 왠지 변명 같기도 하고 내가 약해 보이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에겐 변명과 거짓말은 비슷한 부류이고 난 타인이든 나 스스로든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 싫어한다.


  교수님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기억은 잘 나지 않을 수고 있지만 분명한 건 어릴 때 나에게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을 거고 그로 인해 지금과 같은 성격이 생겼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곰곰이 생각해 봤고 머릿속에 스쳤지만 매우 강렬한 사건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때 나에게 숙제는 너무 귀찮은 존재였다. 특히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유치원 때 배운 조기교육 덕분에 광주리에 담긴 사과 10개에서 철수가 2개를 먹으면 몇 개 남았을지 맞추는 수업과 10손가락으로 헤아리고 있는 친구들은 그 당시 나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그 뒤로 나에겐 숙제(공부)따윈 귀찮은 존재였다. 그래서 난 항상 숙제를 집이 아닌 다음날 학교에서 하곤 했다. 문제는 3학년부터였다. 덧 샘 뺄 샘을 넘어 곱셈과 나눗셈이 들어가면서 나는 큰 혼동을 느꼈다. 분명 공부를 해야 하지만 귀찮음의 연속이었고 숙제 역시 집이 아닌 학교에서 하는 습관으로 점점 숙제하기가 버거워졌다. 그리고 난 숙제를 안 해도 되는 좋은 방법을 찾았다. 바로 변명, 거짓말이다. 처음엔 우연이였다. 숙제 검사 때 집에 놓고 왔다고 말한 친구가 선생님의 사랑의 매?를 피하는 걸 보았다. 그리고 나도 즉시 사용했고 그 효과는 확실했다. 하지만 난 너무 상습적으로 사용했고 이렁 모습에 선생님은 나에게  큰 실망과 함께 매우 화가 난 상태였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모처럼 숙제를 집에서 다한 날이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재밌게도 진짜로 숙제를 집에 놓고 학교에 갔다. 처음엔 좀 당황했지만 나는 떳떳하게 정말로 숙제를 했지만 집에 노트를 놓고 왔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런 떳떳함에 선생님은 결국 폭발했고 나는 사정없이?? 사랑의 싸다구?! 를 맞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 당시 정말 숙제를 했던 나는 끝까지 숙제를 했지만 정말 놓고 왔다고 이야기를 했고 선생님은 끝까지 거짓말을 한다며 나에게 계속 사랑을 하사하셨다. 그리고 어머니와 상담을 하며 “애는 참 착한데 자꾸 거짓말을 한다. 교육이 필요하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난 처음엔 몰랐다. 하지만 어느 날 어머니가 나를 쓰다듬으며 “아야 공부는 못해도 되지만 착해야 한다. 거짓말은 못쓰는 거야” 하며 선생님과 상담 내용을 나에게 알려주셨다.

  난 매우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 뒤론 거짓말을 극도로 싫어하게 되었다. 거짓말은 무책임한 행동이고 무책임은 어떠한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하는 거다. 그리고 이런 상황 회피는 내가 약하기 때문이다. 고로 거짓말은 내가 약하기 때문에 하는 거이고 난 강해지고 싶기에 거짓말 따윈 하지 않는다. 이런 식의 생각이 나를 지배해왔고 지금도 역시 큰 변화는 없다. 이러다 보니 내가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아부다. 칭찬은 누구에게든지 얼마든지 잘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잘 살펴보면 칭찬할 거리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부는 칭찬과 성격이 좀 다르다. 나에게 칭찬은 마음에서 나오는 거지만 아부는 그냥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러므로 아부는 나에게 거짓말에 가깝다. 내가 군대에서 힘들었던 이유도 이런 이유였고 변명이나 거짓말로 상황을 회피하기보다 행동으로 상황을 극복해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말보다 행동을 먼저 하려고 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하지만 이제 생각을 좀 바꿨다.


  거짓말과 변명은 분명 좋지 않다. 하지만 거짓말과 변명이 나의 약함과 같다 라는 생각은 바꿔야 할 것 같다. 오히려 그동안 나는 나 스스로에게 아파도 아프지 않다. 힘들어도 힘들지 않다. 안 괜찮아도 괜찮다 하며 끊임없이 거짓말을 해왔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나의 아픔을 나의 힘듬을 나의 안 괜찮음을 말함으로써 사람 냄새가 나에게 베이도록 노력해야겠다.


  아참. 그러고 보면 그 어떤 알도 절대 혼자서 스스로 깨고 나오지 않는다.

  어미새의 품속에서 하늘을 비상할 날을 꿈꾸는 알처럼, 두터운 모래 품속에서 서로서로 의지하며 바다를 향해 나아갈 날을 기다리는 거북알처럼 모든 알들은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인내하며 부화를 꿈꾼다.
















작가의 이전글 #3 나를 행복하게 만든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