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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 노세

by 권승호

어린 시절, 어른들은 술을 마신 후, 춤을 추면서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는 노래를 부르곤 했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은 못 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이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이런 노래를 부르는 어른들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것 같다. 게으른 사람들의 비열한 변명 같은 나쁜 노래라고 생각했던 거다. ‘뭐라고, 젊어서 놀자고, 늙으면 놀지를 못하니까 젊어서 놀자고? 놀면 밥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성실치 못한 사람들 나쁜 사람 같으니라고?’

그런데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이 노래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 젊어서 놀아야 해, 늙으면 놀 수도 없지. 열흘 동안 계속 피는 꽃이 없는 것처럼, 보름달도 언젠가 기우는 것처럼 나도 늙어질 것이니까. 그리고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는 말과 같이 젊어서 놀아보아야만 늙어서도 잘 놀 수 있는 거야. 일만 하다가 세상을 떠난다는 건 억울한 일인 게 분명해.’

아름다운 삶 중 하나는 열심히 사는 삶이고, 열심히 사는 삶 중에 재미있게 노는 것도 포함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열심히 놀 줄 아는 사람이 일도 열심히 하는 것도 많이 확인하였다. 놀 때는 열심히 놀고 일할 때는 열심히 일하는 삶이 멋지고 아름다운 삶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의외로 일 중독자가 많고 나 역시 일 중독자라는 생각을 해본다. 교단에 선 후로 거의 매일 평균 12시간 정도를 학교에서 머문 것도 모자라 집에 와서도 책이나 원고지와 씨름하였다. 물론 후회는 하지 않는다. 열심히 일한 것이 나에겐 행복이었고 아이들과 함께 생각하고 배우고 익히는 일이 내 삶의 의미였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고 젊었을 때 좀 더 열심히 놀았어도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고 했던가? 집에서 노는 것도 노는 것이고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가지고 노는 것도 노는 것이지만 가능하면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이나 새로운 것들을 만나 새로운 즐거움을 맛보는 것이 좀 더 즐겁게 노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열심히 일하자 그리고 열심히 놀자.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이 항상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누구는 다리 떨리면 놀 수 없으니 가슴 떨릴 때 놀자고 했다. 산과 둘레길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 움직일 수 있고 가슴이 설레는 지금, 젊음이 남아있는 지금, 놀자, 놀자, 젊어서 놀자. 내일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오늘의 행복도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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