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대학생일 때의 일이다. 아들에게 연락이 없는지 2주가 넘었다는 생각이 들자 걱정이 찾아왔고, 한 번 걱정을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아내는 바쁘니까 그런 것 아니겠느냐면서 아들을 두둔하고 나의 믿음 부족을 나무랐다. 전화했지만 받지 않아 나쁜 생각까지 하고 있는데 조금 후에 전화벨이 울렸다. 궁금해서 전화했다는 말에 어린아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라면서 나의 믿음 부족을 나무랐다.
자식에 대한 믿음은 아내가 나보다 훨씬 강하다. 아들딸의 말이나 행동에 의심을 가져본 적 없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아들딸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해 본 적도 없다. 그 믿음은 남편인 나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외출하거나 여행을 떠날 때 행선지도 묻지 않은 채 빈손으로 따라나서고 퇴근이 늦을지라도 이유를 캐물었던 적 없다.
아들과 딸은 내가 아는 한 거짓말을 하거나 거짓 행동을 해보지 않은 것 같다. 감사할 일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철저하게 믿어주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 역시 그런대로 부끄럽지 않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믿음에 보답하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1은 사랑이다.”라는 성경 말씀을 사랑의 중요성만을 이야기한 거로 해석하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다르게 해석해 보았다. “믿음, 소망, 사랑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매우 중요하다. 그러함에도 굳이 우열을 가려야 한다고 하면 사랑이 최고라고 말하겠다.”라고. 믿음과 소망도 사랑만큼 중요하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믿음이 배반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왜 없겠는가? 믿었다가 뒤통수 맞고 발등을 찍히는 경우가 왜 없겠는가?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도 장은 담가야 하는 것처럼 후회할 때 후회하고 손해 볼 때 손해 보더라도 믿음보다 중요한 가치는 별로 없다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헬렌켈러는 ‘믿음은 산산조각 난 세상을 빛으로 나오게 하는 힘이다.’라고 하였고, 제롬 블래트너는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의 신뢰도 받지 못한다’라고 하였으며, 맥도널드는 ‘신뢰받는 것은 사랑받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이다’라고 하였다. 스포츠 뉴스에서도 ‘믿음이 만들어낸 부활’ ‘믿음에 응답한 000팀’ ‘강한 믿음이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다’ ‘믿음에 대한 보답’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