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의 ‘산유화’. 학창 시절에 처음 만났을 것이지만 그때 만남의 기억은 전혀 없고 진정으로 만나게 된 것은 교사가 되어서였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신임 교사 때에는 진정으로 만나지 못하였고 몇 년 전에야 비로소 진정한 만남을 할 수 있었다. 김소월이 20대에 깨달은 것을 나는 40대에 깨달았다니 많이 부끄럽지만 늦게라도 깨닫게 됨에 감사한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김소월은 이 시에서, 꽃이 피는 것처럼 사람도 태어나고, 꽃이 저만치 혼자서 피는 것처럼 사람 역시 어느 귀퉁이에서 혼자서 고독하게 살아가며, 새도 꽃도 고독한 것처럼 인간 역시 고독을 벗어날 수 없으며, 꽃이 남김없이 지는 것처럼 사람 역시 흔적 없이 죽는다는 삶의 진리를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존재가 근본적으로 고독하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면서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만이 아니라 인간 누구나 고독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편안함을 느꼈다. 남들의 고독을 확인하면서 미소 짓는 나의 모습에서 옹졸함을 발견하고 부끄러웠는데, 옹졸함이나 이기심 또한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평화를 만나기도 하였다.
고독을 높이 평가하는 태도는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에도 잘 나타나 있다. 시인은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나무 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와 같이 노래한 것이다. 그런데 고백건대 젊은 날의 나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나 ‘굽이치는 바다’를 이해하지 못하였었다.
인간은 누구라도 고독하다는 사실, 고독에서 그 무엇인가가 탄생된다는 사실, 고독은 아름답다는 사실을 이제라도 깨달은 나 자신이 대견스럽다. 아이들이 고독도 고행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성숙시키는 중요한 성분임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겠다. 혼자서의 여행이 진짜 여행임을 깨달아버린 나, 내년 여름에는 왼손엔 고독 오른손엔 땡볕을 잡고 배낭 하나 둘러매고 그 어느 고독한 땅을 고독을 친구 삼아 걸어보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