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는 노랫말이 문득 가슴에 다가온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소중한 사람과도 미운 사람과도 아끼던 물건과도 시간과도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 버리기를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이별을 두려워하고 망설였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별이 있어야 새로운 만남도 있을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별이 면역되어서인지 이제는 죽음이라는 이별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별을 긍정의 시각으로 바라보다가 ‘이별은 미의 창조’라는 한용운의 시를 새롭게 만나게 되었다. “이별은 미의 창조입니다./ 이별의 미는 아침의 바탕 없는 황금과 밤의 올 없는 검은 비단과 죽음 없는 영원의 생명과 시들지 않는 하늘의 푸른 꽃에도 없습니다./ 님이여, 이별이 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오오! 이별이여/ 미는 이별의 창조입니다.” ‘이별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이다. 재생의 원천이 되기 때문에 이별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이야기가 이제야 가슴에 다가온다.
이별에 대한 긍정적 시선과 함께 요즘 얻게 된 또 하나의 소득은 역설에 대한 이해이다. 부정을 통해 긍정에 이르고 그것을 다시 부정함으로써 더 큰 긍정의 해답을 찾는 역설. 이 시가 이러한 역설을 통해서 이별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동시에 역설은 시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구석구석에서도 참으로 많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모순 아닌 일보다는 모순된 일이 더 많은 세상이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이별하라. 미소 지으며 떠나보내라.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 내가 돌보아주고 내가 간섭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떨쳐버려라. 이별을 두려워 말라. 걱정하지 않고 떠나도 된다. 남겨진 사람은 당신 아니 다른 누군가가 돌볼 것이고 그 누군가가 돌보지 않을지라도 스스로 잘 적응해 가면서 즐겁게 살아갈 것이니까.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落花)/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별을 통해 얻은 영혼의 성숙’을 노래한 이형기의 ‘낙화’라는 제목의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