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사립대학교 정문에 “00 학과 00학번 000. 육군 준장 진급”이라는 현수막이 걸린 적이 있다. 장성이 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고 있기에 진심으로 그분의 성공에 박수를 보내주었다. 모르긴 해도 사관학교에 갈 실력이 있었음에도, 명문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음에도 그 대학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는 평범하였지만 대학 입학 이후에 노력함으로써 꿈을 이루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옳을 것이다.
사람들은 고등학생 시절이 인생을 결정한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 말에 고개 끄덕이고 싶지 않다. 고등학생들에게 공부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하는 말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다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명문대학을 졸업하고도 부끄럽게 사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고, 이름 없는 지방대학을 졸업하고도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으며, 대학에 가지도 않았음에도 멋지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대학 간판이 인생을 결정짓지 않은 경우가 엄청 많은데 대학 간판이 삶을 결정짓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세상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이야기 아닌가? 명문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의 성공 확률이 훨씬 높다고 반박하겠지만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 노력하여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음을 이야기해야 옳다고 말하는 것이다. 명문대학에 입학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기죽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이고 대학 입학 이후에 노력해도 절대 늦지 않다는 이야기다.
이 땅의 중고등학생들이, 아니 초등학생들까지도 대학입시를 위해 정신없이 달리는 모습이 안쓰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만이 아닐 것이고, 대학입시에 목을 매는 우리 교육이 안타까운 사람이 나만 아닐 것이며, 대학입시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은 포기해야 하는 오늘 우리의 현실에 가슴 아파하는 사람 역시 나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교육청까지 나서서 대학 입학을 위해 에너지를 쏟는가? 대학 입학이 인생을 결정짓는 것 아닌데 왜 대학 입학이 인생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하는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수시 합격자 발표도 이어질 것이고, 이어서 정시 모집도 할 것이다. 원하는 학교 학과에 합격하는 수험생보다는 합격하지 못하는 수험생이나 원하지 않는 학교 학과에 합격한 수험생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며칠 전, ‘마이웨이’라는 노래를 듣고 공감하였고,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연습하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넘어질 수 있어, 이제와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어, 내가 가야 하는 이 길에 지쳐 쓰러지는 날까지 일어나 한 번 더 부딪혀 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