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텔레비전 음악 프로그램을 즐겨보고 있다. 멜로디의 아름다움에 취해서가 아니라 화면 아래 부분에 나오는 가사를 음미하는 일에 재미 붙였기 때문이다. 부끄럽게도 젊은 날에는 가사를 음미하기보다 리듬과 박자에만 신경을 쓰면서 노래를 흥얼거리곤 하였었다. 지금 생각하니 몇 년 전까지는 노래를 진정으로 즐겼던 것이 아니었다. 가사를 음미하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부터 노래에 대한 새로운 즐거움이 찾아와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
노래를 부르긴 부르는데 가사의 의미도 모르는 채 흥얼거린다. 즐기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진정으로 즐기고 있지 못하다. 즐거울 수 있지만 더 큰 즐거움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날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강의를 들었으면서도 설명은 못한다. 노트에 적었으면서도 무슨 의미인 줄 모른다. 문제를 풀었으면서도 왜 답이 3번인가에 대해서, 또는 4번이 답이 아닌가에 대해서 설명하지 못한다. 아는 것 같지만 정작 진정으로는 알고 있는 것은 얼마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누군가 “물질의 풍요와 권력을 향유함이 즐거움의 원천임이 분명하지만 새로운 사실에 대한 깨달음만 같지 못하다.”라고 하였다. 지적인 깨달음보다 확실한 즐거움은 없다는 말인데 그 깨달음은 남이 만들어 줄 수 없고 남이 전달해 줄 수도 없다. 자기 스스로가 만들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냥 가는 데 총을 안 가지고 가는 것과 같다.”는 속담이 있다. 가장 긴요한 물건을 빠뜨리고 간다는 말이다.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내용은 알지 못하고 그리 중요하지 않는 내용의 겉만 알고 넘어가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주현미라는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익히 들어서 가사까지 외울 수 있는 노래였지만 이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하였던 노랫말이 무심코 가슴에 다가왔다. 이전에도 들었었지만 의미는 생각해 보지도 못하였었는데. “…… 만날 때 아름다운 사랑보다는 헤어질 때 아름다운 사랑이 되자, 잠깐만 잠깐만……”이었다. 굳이 해석할 필요조차 없는 너무 쉬운 내용이지만 아무런 생각 없이 노래했기에 노래의 진정한 맛을 알지 못하였다는 것이 너무 커다란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다. 바보였고 바보였다. 의미를 생각하지 못하고 중얼거리고 중얼거렸던 바보, 음미해 보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못하였던 바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