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일이다. “여러분이 붙이는 크리스마스실 한 장은 결핵퇴치 사업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는 증표이자 사랑 나눔의 실천입니다.” 멋쩍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어 크리스마스실 뒷면에 적혀 있는 문구를 읽어주었다. 그리고 굳이 주저리주저리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어 미소 지으면서 크리스마스실 10매 묶음이 3,000원이라 말하고 구입하고 싶은 의사가 있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였다. 반응이 없었다. 난감했다. 나쁜짓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달아올랐다. 잠시 어색함이 흘러 창문을 쳐다보다가 다시 눈을 아이들에게로 돌렸을 때 어색한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어색함도 피하고 아이들에게 기회를 다시 주기 위해 “결핵 퇴치 사업에 참여하는 좋은 일인데......”라고 말하는 순간 “결핵 다 없어지지 않았나요?”라고 누군가가 웃으면서 말하였다. 화가 났지만 꾹 참고 한 마디 덧붙였다. “사랑 나누기의 실천이야. 그리고 겨우 3,000원이잖아.” 내가 들어도 힘 빠진 목소리였다. 한 아이가 손을 들고 지갑을 꺼냈다. 존경스러웠다. 교실을 빠져나오는데 한 아이가 뒤따라와서 3,000원을 내민다. 고마웠다. 남은 여덟 장을 들고 교무실에 오니 자발적으로 가져갔다는 반도 있고 강매하였다는 선생님도 있고 실장에게 책임 지웠다는 선생님도 있고, 어쨌든 나만 되가지고 온 것 같았다. 교실에서보다 더 많이 화가 나려는 순간 ‘그래도’를 중얼거렸다.
그러함에도 슬픔이 몰려오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나쁜 놈들 같으니라고, 빵도 사 주고 아이스크림도 사 주고 음료수도 사 주고.......밥도 두 번이나 사 주지 않았던가........ 다른 반 다 걷는 학급비도 걷지 않았고 가정통신문도 우표값 걷지 않고 내 돈으로 보냈는데....... 비겁한 놈들 같으니라고.’ 눈물이 나려고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아내의 구박을 받아가면서까지 1년 내낸 토요일까지 밤마다 교실을 지키면서 지네들의 공부를 위해 온전히 시간 투자해 주었는데......’ 슬픔이 고개를 들려는 순간 다시 한번 ‘그래도’를 생각해 내었다. 좋다. ‘그래도 나는 용서해야 하고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교사인 나의 숙명이다. 배신하고 또 배신한다고 할지라도 자식이기에 품어야만 하는 것이 부모의 운명인 것처럼, 이기적이고 선생님 마음 몰라주는 아이들이지만 미워하지 말고 가슴으로 용서하고 품어야 하는 것이 선생의 운명이다. 예쁜 제자도 품어야 하고 미운 제자도 품어야 한다. 못난 제자에게 더 많은 사랑을 쏟는 부모처럼 더 버릇없고 더 비겁한 제자를 공부 잘하고 예의 바르고 착한 아이들보다 더 많이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 “잘해 주어 보았자 다 쓸데없어” “잘해 줄 이유 하나도 없어” “졸업할 때 고맙다고 말해주는 아이도 없어” 예전부터 주위 선생님들에게 자주 들었던 푸념이다. 나도 적잖게 경험하였다. 사실이다. 정말로 잘해 주어 보았자 아무 소용없었다. 헤르만 헤세의 “장난감을 갖고서 그것을 바라보고 얼싸안고 기어이 부숴 버리는, 내일이면 벌써 그를 준 사람조차 잊어버리는 아이처럼, 돌보지 않는 나의 사람아 나의 여인아, 오, 아름다운 나의 사람아!”라는 시를 연상케 하는 일들을 늘 경험하는 일이다.
어느 날 문득 ‘나’를 뒤돌아보았다. 나 역시 중고등학교 시절에 버릇없는 놈이었다. 고마움도 미안함도 몰랐던 정말로 싹수없는 놈이었고 이기적인 놈이었다. 이제야 반성이 되고 후회가 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이들이 용서되고 이해되었다. ‘아직 어린아이이니까....... 나도 저만한 나이에는 저러하였으니까......’ 두 살짜리 어린아이에게 과자를 사 주고 5분도 지나지 않고 그중 하나만 달라고 해 보면 분명히 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화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어린아이이기 때문 아닌가? 고등학생을 대할 때도 이 마음 품으면 된다. 스물아홉 살짜리 청년을 대할 때도 이 마음 가지면 화나지 않을 것이다. 나의 베풂은 베풂으로 끝나야지 대가를 바라는 것은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이다. 굳이 원한다면 언젠가 이해해 주고 미안해하고 고마워해 줄 것이라고 믿으면 되지 않을까? 꼭 지금 이 시간일 필요 없다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화낼만한 일에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화를 안 내는 경우가 많은 것은 세상을 오래 사신 때문, 그러니까 세상 이치, 마흔 살 될 때까지는 누구나 철이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리라.
켄트 케이스는 그의 저서 “그래도”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면 보따리 내놓으라고 덤빌 수도 있다. 그래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라. 사람들은 약자에게 호의를 베푼다. 하지만 결국 힘 있는 자의 편에 선다. 그래도 소수의 약자를 위해 분투하라. 사람은 논리적이지도 않고 이성적이지도 않고 게다가 자기중심적이다. 그래도 사람들을 사랑하라. 그래도 사람들을 사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