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4학년 가을, 한 동아리 선배의 이름이 친구들 사이에서 오르내리곤 했는데 학원 강사로 돈을 많이 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는데 언론사와 기업체 몇 곳에 낙방한 후, 학원 강사도 괜찮은 직업일 수 있다는 생각이 찾아왔다. 정해진 월급 없이 능력만큼, 그리고 땀 흘린 만큼 수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직업이었다. 가르친다는 행복과 함께 월급쟁이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잘 나가는 유명 강사는 학교 선생님보다 10배 이상을 벌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학원 강사를 시작한 지 4개월이 지난 어느 날, 수학 선생님 한 분이 살며시 다가와 ‘혹시 돼지 키울 생각 있느냐?’라고 물었다. ‘돼지 키운다’는 개인 과외를 일컫는 학원가의 은어였다. 당연히 ‘예스’였다. 흥분을 가라앉히기 힘들 지경이었다. 1주일에 90분씩 두 번 가르치고 한 달에 50만 원. 그 당시 점심때 즐겨 먹던 선짓국밥이 2,000원이었고, 자가용이 흔치 않았던 그 당시, 비록 소형차이지만 젊은이들에게 인기 많았던 프라이드라는 이름의 승용차가 400만 원 이하였으니 굉장히 큰돈이었다.
돈이 아무리 많은 집이라 할지라도 50만 원은 큰돈일 수밖에 없고, 큰돈을 투자한 부모가 성적 향상을 기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학원 수업도 열심히 해야 했지만, 돼지 키우는 일도 열심히 해야 했다. 몸은 편하고 돈은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늘 따라다녔다. “성적이 오르지 않으니 그만해야겠네요.”라는 말이 나올까 항상 노심초사했다. 잘못 가르친다는 소문이 나기라도 한다면 그 과외가 떨어지는 것뿐 아니라 다른 개인 과외도 할 수 없고, 학원 강사 생활에도 영향을 미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모의고사가 끝난 후 과외를 하러 가는 날, 분명히 점수가 올랐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른 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제자리걸음인 경우가 많았고 내려가는 때도 있었다. 이상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난 분명히 열심히 가르쳤고 학생도 열심히 들어주지 않았던가? 문제도 내가 가르쳐 준 내용이 적지 않았다. 틀린 문제를 놓고 내가 가르치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배웠다는, 배운 것 같긴 하다는 대답을 듣긴 했다. 점수가 올라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늘 제자리걸음인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음 시험에는 좋은 성적이 나올 것이라는 막연한 소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재수생 학원 강사 10년이 지날 즈음,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었다. 모아 놓은 돈으로 보습학원을 차렸다. 원장이 된 것이다. 개원 첫 달부터 흑자를 내면서 즐겁고 신나게 학원을 경영해가고 있던 어느 날,
“원장님! 저는 이렇게 학원 열심히 다니는데 성적이 제자리걸음이잖아요. 그런데 우리 반 1등은 학원도 안 다니는데 왜 계속 1등을 하는 거예요?”
중학교 2학년 민지가 내 방에 들어와서는 정말로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유를 알고 싶은 간절함이 말과 표정에 가득했다.
“그럴 리가 있나? 그럴 수는 없는데…… 그 친구도 학원에 다닐 거야. 장난으로 한 말이지 않을까?”
그럴 리 없다는 나의 말을 떨떠름한 표정을 짓던 민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한 달 조금 지난 어느 날 민지는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지난번보다 더 진지하게 물었다.
“원장님! 진짜예요. 어제 시험에서도 지난번 말한 그 친구가 또 1등 했어요. 다시 물어보았는데 학원에 전혀 다니지 않고 혼자 집에서 공부한다고 했어요. 왜 학원도 안 다니는 그 친구는 성적이 잘 나오는데 이렇게 열심히 학원에 다니는 저는 왜 성적이 나오지 않는 거예요? 정말 궁금하고 화가 나 죽겠어요. 말씀 좀 해주세요. 원장님!”
난감했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너는 머리가 좋지 않잖아’라고 이야기할 수 없었고 ‘그 친구는 머리가 좋은가 보다’라고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잘 모르겠는데’가 최상의 대답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알량한 자존심은 그렇게 말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아! 그 친구 과외받는 것 아닐까? 개인 과외. 과외받으니까 성적이 잘 나오는 것일 거야.”
확신이 있어 한 말은 아니라 상황을 모면하려고 한 말이었지만 말을 하고 보니 이상하게도 그럴 거라는 확신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학생이 개인 과외를 받고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다음날, 그다음 날에 혹시 민지가 찾아오면 뭐라 답해줄까를 걱정했는데 고맙게도 민지는 찾아오지 않았고 나는 그 문제를 또 망각 속에 빠뜨려 버렸다. 중간고사를 끝낸 며칠 후, 민지는 또다시 나를 찾아왔다. 이번에도 그 1등 학생이 어김없이 1등을 하였고 자신은 17등으로 떨어졌다며 울먹였다. 과외받지 않는 것도 확인하였다고 했다. 집이 가난하여 과외받을 형편이 되지 못한다는 말을 덧붙이기까지 하였다.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울고 싶었고 어지러웠다. 할 말을 찾을 수 없는 슬픔이 자존심을 뭉개버렸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좋은 것 같구나’ ‘집중력이 뛰어난 것 같구나’ ‘너도 수업 시간에 집중력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은데’라는 말만 입가를 맴돌았다. 머뭇거리고 있는 민지에게 1주일 후에 다시 이야기하자며 돌려보낸 후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